코앞 러 영토에 적 수만명 있어도… 우크라, 서방무기 못쏜다?
러시아군, 1주일 새 서울 면적의 4분의1 점령
우크라 정부 “몽둥이 주고, 쓰지 못하게 하는 꼴” 호소
우크라이나가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미 의회가 지난 달 승인한 610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법에 따른 무기들은 우크라이나군에 인도되기까지 앞으로 수주~수개월이 걸리는 반면에, 우크라이나 동부ㆍ남부에서 전선을 형성한 러시아군은 지난 10일부터는 우크라이나 북동부에서 제2의 도시 하르키우를 노리며 새롭게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하르키우는 러시아와의 국경에서 겨우 30㎞ 떨어진,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다.
러시아는 수일 내에 우크라이나 북동부에서 5~8㎞ 너비의 국경 마을 10곳을 장악하며 162㎢의 면적을 새로 차지했다. 서울 면적의 4분의1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로선 침공 당한 이래 최악의 손실이었다.
또 러시아가 북동부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인구가 러시아(1억 4420만 명)의 4분의1 밖에 안 되는 우크라이나(3800만 명)는 1000㎞에 걸친 전선에 얇게 배치했던 병력을 다시 빼내 하르키우 쪽으로 옮기며, 고전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해외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14일 밤 긴급 방송을 통해 “상황은 어렵지만, 하르키우의 많은 시민과 전사들이 지역을 지켜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탓에, “우크라이나로선 앞으로 2개월이 최대 고비다” “미 공화당의 반대에 밀렸던 무기 공급 지연이 러시아에 결정적인 모멘텀을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소재)의 전쟁학 교수인 브래니슬라브 슬랜체브는 미 의회뉴스 전문 매체인 힐(Hill)에 “우크라이나로선 가장 약한 시기다. 러시아는 서방 무기 공급이 완료되는 늦여름쯤이면 전선이 다시 고착화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미친듯이 진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자국 내에 있는 한, 서방의 미사일ㆍ대포도 무용지물
우크라이나군이 특히 딱한 것은, 서방으로부터 받은 첨단 미사일, 대포로 바로 국경 건너편 러시아의 벨고로트 시에 집결한 러시아군을 전혀 공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은 자국산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직접 공격하는 것을 금지한다. 서방과 러시아 간 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군은 그동안 서방 무기로는 현재 러시아군이 점령한 동부 도네츠크주ㆍ루한스크 주와 크림반도에 있는 러시아 병력과 군 기지만 공격할 수 있었다. 정유시설ㆍ발전소ㆍ공군 비행장과 같이 러시아 영토 내에 있는 시설에 대한 공격은 오직 우크라이나의 자국산 드론으로만 가능했다.
이 탓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주에 2명의 의회(라다) 지도자를 워싱턴에 보내 미국산 무기의 ‘사용 금지’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야당 대표이자, 의회 무기ㆍ탄약 특위(特委) 위원장인 올렉산드라 우스티노바 의원은 미 매체 폴리티코에 “러시아군이 뻔히 1,2㎞ 밖에 주둔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그들은 우리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직접 공격할 수 없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고 말했다.
데이브 아라카미아 여당 의원도 “러시아군은 국경 근처에 3만 명 이상을 집결시키면서도, 미국의 전술미사일인 ATACMS(에이태큼스)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우리가 한 손으로만 싸울 수 있느냐”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 전선에선 ATACMS로 러시아군과 기지를 타격한다.
◇러시아, 우크라 드론 띄우지 못할 완충지대 구축
러시아가 하르키우 주변 마을 10곳을 점령하고 교량을 파괴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초기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전쟁 초기에 하르키우를 빼앗겼다가, 같은 해 9월 중순에 수복했었다.
우크라이나군 정보당국은 이미 수 주전부터 러시아군이 국경 지역에 5만~7만 명이 집결하는 것을 파악했지만, 우크라이나군 지역 사령관은 “국경지역은 요새화돼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지뢰밭 같은 저항도 없이 말 그대로 걸어서 진입했고, 우크라이나군 지역 사령관은 72시간 뒤 해임됐다.
러시아군의 하르키우 주변 공격의 의도에 대해선 ‘진짜 공격’이 아니라, 이 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이곳에서 계속 드론을 띄워 벨고로트 등 러시아의 국경지역 인프라 시설을 공격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반격하지 못하는 동안, 계속 러시아 국경에서 포탄과 미사일을 쏴서 하르키우 주변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고작 수만 명의 병력으로 제2의 도시를 점령하기는 힘들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14일 “러시아군은 계속 침공하기보다는 마을들을 파괴하고 병력을 집결시켜 우크라이나군이 이곳을 지키느라 남부ㆍ동부 전선에서 반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병력이 빠져나간 동부 전선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 또 러시아군이 계속 하르키우와 주변을 공격하면, 이곳에서 480㎞ 밖에 떨어지지 않은 수도 키이우도 개전(開戰)이래 처음으로 강력한 압박을 받게 된다.
◇미국 “제공된 무기는 공격 아닌 방어용”
‘러시아 영토 공격 금지’라는 서방의 무기 사용 정책이 사실상 우크라이나 북동부를 공격하는 러시아군에게는 ‘방패’가 되고 있지만, 익명을 요구한 바이든 행정부의 두 관리는 폴리티코에 “제공된 무기는 방어용이지, 러시아 영토에서 공격 작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 의회가 승인한 610억 달러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법에서 실제 무기는 257억 달러(약 34조 5872억 원)에 달한다(우리나라의 올해 국방예산은 59조 4244억원이다).
한편, 폴리티코는 “적잖은 미국 관리들이 푸틴이 새로 충원된 병력과 중국 등으로부터 받는 지원,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약화 등 여러 요소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점차 믿는다”고 전했다. 푸틴이 애초 원했던 ‘완전 점령’이라는 승리는 아니지만, 올해말쯤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14일 미국산 무기의 공급 지연, 최근 러시아가 미국산(産) 포ㆍ미사일을 재밍(jamming)하는 데서 보인 “놀랄 만큼 효과적인 기술적 혁신” 등으로 인해, “백악관은 푸틴이 한때 황량했던 전세를 뒤집기에 충분한 모멘텀을 얻은 것 아닌가 우려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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