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의 배신’…대형 건설사 광주·전남서 잇단 ‘부실시공’ 논란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5. 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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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굴지 1군 건설사 시공 아파트 잇단 ‘부실시공·하자’ 구설수
무안 남악신도시 오룡 2지구 ‘부실시공’ 논란 아파트 현장 가보니...
‘역대급 하자’ 외벽 휘어지고 5만8000건 접수…“입주 무섭고 겁나”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광주·전남지역에서 국내 굴지 대형 건설사의 부실시공·하자 문제가 연이어 발생해 지역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지난달 말 사전점검을 진행한 전남 무안 오룡2지구 '현대힐스테이트 오룡'은 건물 외벽과 내부 벽면이 기울고 콘크리트 골조가 휘어져 '휜 스테이트'라는 조롱을 당했다. 앞서 2022년 1월에는 신축 중이던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나 철거 후 재시공이 이뤄지고 있다. 모두 국내 도급 순위 5위 이내의 1군 건설사들의 시공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여서 지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최근 부실시공과 하자 등 품질 논란에 휩싸인 전남 무안 남악신도시 '현대 힐스테이트오룡' 정문 ⓒ시사저널 정성환

"지방 건설사 보다 못한 시공"…입주자 예정자 분통 

지난 12일 오후 3시께 전남도청이 있는 무안군 오룡2지구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이달 말 입주를 앞두고 상가에 대한  전기, 통신 등 전문 건설업체들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 신축 아파트에서 건물 외벽이 휘어지고 수만 건의 하자가 발생해 해당 건설사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시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라는 사명보다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로 더 유명하다. '힐스테이트 오룡'은 남악신도시 개발사업(오룡지구) 내 공동주택 42블록, 45블록에 1단지와 2단지가 총 800여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전남 서부권 최초 힐스테이트 브랜드로 주목받았으나 사전 점검에서 품질 논란이 불거졌다.   

이날 일부 입주자 예정자들은 휴일을 맞아 신축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새집에 이사 간다는 이들의 부푼 마음은 입주를 코 앞에 두고 실망감으로 변했다. 아내와 함께 찾은 김현성(가명 31·목포시)씨는 "'똘똘한 브랜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한다는 기대감에 입주일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며 "입주 전에 품었던 설렘은 이제 시공사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바뀌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입주민은 "1군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라 믿고 망설임없이 분양받았다"며 "유명세만 이용해 홍보하고 지방중견·중소 건설사 보다 못한 시공이 이뤄졌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12일 오후 3시께 최근 부실시공과 하자 논란이 불거진 전남 무안군 남악신도시 오룡2지구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이달 말 입주를 앞두고 상가에 대한 전문 건설업체들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한 입주 예정자 부부가 무거운 표정으로 시공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 아파트는 최근 실시된 입주자 사전 점검에서 5만 여건의 하자가 접수됐다. 해당 단지 입주예정자들에 따르면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진행된 입주자 사전점검에서 외벽 골조가 휘어지고 슬라브가 내려앉거나, 실내 바닥과 벽 간 수직이 맞지 않는 등 크고 작은 하자가 약 5만8000건 발견됐다. 1세대 당 하자가 평균 150건에 달해 '역대급 하자 아파트'란 말이 나왔다. 

당시 사전점검에 참여했던 입주예정자 김아무개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아파트 복도 타일과 벽 라인의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고 화장실 벽 내부에는 타일 안에 자재 대신 깨진 타일로 채워졌다"며 "지하 주차장에는 누수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된 곳이 있는가 하면 고층아파트임에도 베란다 난관이 볼트로 고정돼 추락사고 발생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이어 "비오는 날 콘크리트 타설이 이뤄졌으며, 같은 시기에 착공한 건너편 J건설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골조공사를 수개월 먼저 끝냈다"며 부실공사 의혹도 제기했다.

휘어져 있는 전남 무안 남악신도시 오룡2지구 신축 아파트 외벽 모습 ⓒ독자 제공/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휜 스테이트' 조롱에…고개 숙인 현대엔지니어링 "깊은 사과"

이 같은 사실이 언론과 온라인상에서 급격히 확산되자, 지자체와 시공사 대표까지 나섰다. 부실시공과 하자 논란이 확산하자 전남도는 지난 9일 해당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 대해 긴급 공동주택 품질점검에 나섰다. 이날 품질점검단은 아파트 구석구석을 살피며 부실시공 여부를 조사하는 등 시공실태 전반을 점검했으며, 점검 결과를 인허가권자인 무안군에 통보했다. 전남도 품질점검단의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무안군은 시공사에서 부실시공 부분을 보수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확인한 후 사용검사를 승인하게 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10일 하자 관련 홍현성 대표이사 명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공식 사과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당사가 시공한 아파트 단지 품질과 관련해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책임을 통감하고 입주예정자분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품질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입장 발표 직전 무안 시공 현장을 찾은 홍 대표는 "걱정을 끼쳐드려 사과드린다"며 철저한 품질 관리를 약속했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15일 입주예정자협의회와 하자 처리 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준공 및 입주는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가 이뤄진 것은 경영진이 현장에 상주하며 강력한 해결의지를 보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부 입주민 예정자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미숙(여·48)씨는 "하자 보수 신청 건이 5만 건을 넘는 아파트에서 무섭고 겁이 나서 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김씨의 말이다. "설령 하자보수가 온전히 이뤄져서 입주한다하더라도 영 개운치 않을 것 같다. 사는 동안 내내 불쾌한 감정이 쌓일 것이고, 지진 등 작은 흔들림에도 불안에 떨 것 같다. 또 부실시공 의혹이 전국 뉴스에 소개됐으니 이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수요도 적을 것이라 집값 하락도 예상된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메이저 브랜드의 신뢰 추락은 이뿐만 아니다. 지난 2022년 1월 신축 중이던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의 201동 39층부터 23층까지 16개 층이 순차적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근로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콘크리트 타설 시 피트층(설비와 배관이 지나가는 층) 하부 동바리(가설 지지대)를 조기 해체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제시됐지만 불법 재하도급과 계약비리 등 이윤을 좇던 기업이 자아낸 전형적인 인재로 드러났다.

2021년 6월에는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철거 중이던 지상 5층 건물이 붕괴했다. 운행 중이던 시내버스 위로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다단계 재하도급, 안전 관리 소홀, 감리자 부재 등이 사고 원인으로 판명 났다. 시공사는 모두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참사 2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안전한 사회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지난 2022년 1월 11일 오후 3시께 무너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201동 모습 ⓒ시사저널

소비자 반격인가…브랜드 아파트의 '끝없는 추락'

이처럼 광주·전남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부실시공 논란으로 국내 굴지 건설사에 대한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그 여파가 분양시장에도 미치는 모습이다. 시공능력과 브랜드 가치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1군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저조한 분양률로 고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를  두고 지역 부동산 업계에선 대형 건설사이기에 더욱 믿음을 갖고 분양 신청했던 소비자들이 건물 붕괴, 불량 자재 사용 등 잇단 구설수에 실망해 돌아선 일종의 '소비자 반격'으로 보고 있다. 

지역 생활정보지 등에 따르면 GS건설이 광주에 짓고 있는 '상무센트럴 자이'(Xi)'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 보다 수천만원 싼 값에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최근 광주에서 분양이 끝난 아파트 단지에서 최대 5000만원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물건이 나오는 등 브랜드 가치가 추락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상무센트럴자이는 옛 호남대 쌍촌캠퍼스 부지에, 총 906세대를 짓는 아파트다. 지난해 6월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해 진행된 청약만 하더라도 84㎡A 타입이 39.5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는 결과를 기록했다. 하지만 청약 결과와는 달리 이후 분양 상황을 썩 좋지 않았다. 평당(3.3㎡) 3000만원이라는 역대 최고 수준의 전체 분양 논란이 이어지면서 결국 최종 분양률은 80%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분양했다하면 완판했던 과거의 명성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부동산경기 침체와 함께 '자이' 브랜드에 대한 불신이 분양 실패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GS건설은 품질 논란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브랜드 가치 하락에 시달렸다. 해당 건설사의 브랜드는 수도권에서 순살(철근 누락) 아파트 입살에 올랐다. 상무센트럴자이가 청약을 시작한 지난해 6월에 두 달 앞선 4월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발생했고, 6월에는 개포자이 지하주차장 침수가 발생했다. 이어 올해 4월 방배그랑자이에서 중국산 위조 유리 사용이 확인됐다.

업계에선 자이 아파트 뿐만 아니라 메이저 건설사들이 시공하고 있는 일부 아파트도 겉으로 드러난 청약률에 비해 실제 분양률은 저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광주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지역 아파트 분양시장 소비자들은 지역 중견·중소 건설사들에 비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공능력과 브랜드 가치에 대한 신뢰 때문에 1군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업체의 부실시공·하자 문제가 연이어 터지면서 메이저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급격히 식고 있는 상황이다. 유명세만 믿고 지방 주거시장 소비자들을 깔보다간 큰 코 다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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