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 역차별’ 논란…딜레마 빠진 ‘동일인’ 지정 제도
공정위 “시행령 개정에도 신설 ‘예외조건’ 부합해”
“규제 감시망 피해간다” 지적 속 존치 여부 수면 위로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국내 최대 이커머스 기업 쿠팡의 김범석 의장이 올해에도 동일인(기업집단 총수) 지정에서 제외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시행령 개정으로 신설된 예외조건에 김 의장이 부합한다는 이유로 4년 연속 동일인 지정을 피한 것이다. 총수 친족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감시망이 옅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동일인 지정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는 형국이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공시의무 등 각종 규제와 감시를 받는 '2024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명단을 발표했다. 하이브·파라다이스·영원 등 7개 그룹이 대기업 집단에 신규로 지정된 가운데 공정위는 올해에도 쿠팡의 동일인(총수)을 ㈜쿠팡으로 지정했다. 2021년 쿠팡을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한 이후 4년 연속 법인을 동일인으로 본 것이다.
공정위는 동일인을 중심으로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집단의 범위를 확정한다. 특히 동일인이 법인이 아닌 자연인인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의 사익 편취 조항이 적용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경우에는 흔히 재벌 총수라 불리는 자연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쿠팡은 예외였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미국 국적이라서다. 현행법으로 외국인을 처벌할 경우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도 반대 의견을 표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동일인 즉 총수로 지정되면 공정위에 각종 자료를 제출해야 할 의무를 진다. 만약 허위 자료 제출 등 해당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검찰 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밖에 다양한 공시의무와 본인이나 친족회사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적용이 된다. 하지만 법인이 동일인일 경우 공정위의 감시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불공정거래 감시망에 벗어난 쿠팡에 대해 특혜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이를 의식해 공정위도 제도 손질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지난해 6월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쿠팡 같은 경우 (김범석이) 최다출자자, 지배적 영향력, 내외부 대표 인식 기준에 의하면 김범석 자연인이 동일인으로 볼 만한 실체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후 내·외국인을 포괄한 동일인 지정 기준 제도 개선에 착수했고 관련 시행령 개정에도 나섰다.
면죄부 논란 속 폐기 주장엔 선 그은 공정위
하지만 바뀐 시행령에 붙은 예외조건이 '김범석 동일인'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시행령이 정한 예외 조건은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기업집단의 범위가 동일하고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으며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는 경우 등이다.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이유에 대해 공정위는 "김 의장의 동생 내외가 쿠팡Inc 소속으로 국내 쿠팡㈜에 파견근무하고 있는 사실은 확인된다"면서도 "이사회 참여나 투자 활동, 임원 선임 등 경영 참여 사실은 없는 것으로 소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쿠팡㈜와 김 의장은 시행령상 예외 요건을 인지하고 있고 친족의 국내 계열회사 임원 미재직과 경영 미참여 사실, 위반 시 동일인 변경 및 제재 가능성에 대해서 명확히 확인하고 서명을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 의장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 속에 동일인 지정 제도 자체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최근 '기업의 지배구조 자율성 확보를 위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 규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현행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는 과거 창업주 개인이 순환출자형 또는 피라미드형 기업집단 형태로 운영하며 경영권을 승계했던 폐해를 억제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도입 등 최근 경향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사실상 제도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동일인 지정이 총수 일가의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견제하고 부당 내부 거래를 감시한다는 측면에 존치 주장도 여전하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총수 일가에 의한 과도한 또는 편법적인 지배력 보조나 강화, 그리고 부당 내부 거래 등을 근절하기 위해서 제도가 존재한다"면서 "그런 이슈가 계속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대규모 기업집단 그리고 동일인 제도를 지금 당장 폐기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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