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누군데 3부작 다큐를?” ‘뒷것 김민기’ PD가 밝힌 뒷이야기

남지은 기자 2024. 5. 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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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 스페셜’ 이동원·고혜린 피디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프로그램 갈무리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저희가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선생님의 삶 자체가 감동이었고, 선생님의 지인들과 학전 기획실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저희는 퍼즐만 맞춘 것뿐이에요.”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지난 9일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SBS) 사옥에서 만난 ‘에스비에스 스페셜’ 이동원, 고혜린 피디(PD)도 ‘뒷것’을 자처했다.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4월21일~5월5일) 종영 뒤에도 깊은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노래 ‘아침이슬’을 만든 음악가이자 학전을 운영해 온 연출가로도 큰 존재였던 김민기의 또 다른 삶이 공개됐고, 그가 왜 그렇게 가수라는 정체성을 부인했는지, 왜 그토록 혹독한 삶을 살았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됐다.

“우리가 한 게 없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던 고혜린 피디(왼쪽)과 이동원 피디. 두 사람은 “뒷것으로 살아온 선생님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마음의 빚을 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사진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다른 프로그램의 제작발표회 때의 모습. 에스비에스 제공

‘아침이슬’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우리가 광장에서 목청껏‘아침이슬’을 부르면서부터였다. 김민기는 하루아침에 ‘불온 가수’가 됐다. 1집이 전부 금지곡이 되고 그의 삶도 묶였다. 다큐에 나온 친필노트에 “나의 대학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김민기는 썼다. 다큐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는 50대 중반의 한 배우는 “시대의 아픔을 보듬어준 고마운 곡이라는 생각만 했지, ‘아침이슬’로 김민기 선생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그에게 미안하고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인기 많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멈추고 그는 우리의 미래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학전 어린이 무대를 선보였다. 프로그램 갈무리

이동원 피디가 만난 김민기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빚졌다”고 했다. 이 피디는 그 의미가 궁금했는데, 김민기의 삶을 따라가면서 20대의 김민기를 마주하고서 이 피디도 어느새 빚진 기분이 들게 됐다고 한다. 김민기는 ‘아침이슬’로 권력에 찍히고도 공장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한 뒤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만들었고,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날 아이들을 위한 해송유아원 설립 자금 마련 콘서트도 강행했다. 앞에 나서서 투쟁하진 않았지만 조금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뒷것’으로서 힘을 보탰다. 이 피디는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그 많은 일을 한 게 20대 때였다.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마음을 먹었던 걸까…. 20대의 김민기한테 빚을 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사석에서도 노래하지 않았던 김민기가 ‘겨레의 노래’ 공연에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프로그램 갈무리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던 시대에 당연한 것을 되찾으려는 당연한 노력. 김민기가 한 모든 일은 그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이 피디에 따르면 김민기의 지인들은 제작진의 취재 요청에 “정말 김민기가 다큐 제작을 허락한 게 맞느냐”며 학전에 확인했을 정도였다. 김민기는 자신이 한 일을 드러내는 것을 철저히 거부해왔다. 유신 체제가 무너지고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차린 뒤 배우들과 계약서를 쓰고 출연료와 공연 수익을 나눴다는 사실도 연극계 밖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지난 3월31일 학전 간판을 내리던 날. 프로그램 갈무리

고혜린 피디는 “선생님의 지인들 100여명을 만났는데 모두 오랫동안 묻어뒀던 사연을 끝없이 쏟아내면서 이야기가 뻗어 나갔다”고 말했다. 김민기와 함께 농사를 짓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 공장에서 일하며 위로받은 사람들, 신정야학에서 꿈을 꾸게 된 사람 등을 고 피디는 그 덕에 마주할 수 있었다. 이 피디는 “선생님이 광산에서 광부로 살고, 김 양식장에서 일하고, 한살림 초대 사무국장이었던 사실 등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됐지만 못 담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했다. 사석에서도 자신의 노래를 부르지 않던 김민기가 ‘겨레의 노래’ 공연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는 귀한 영상과 1970년대 당시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친필노트 등 자료도 다큐에서 처음 공개됐다.

그는 1212 군사반란이 터진 날, 어린이들을 위한 해송유아원 건립 기금 마련 공연에 목숨 걸고 참가했다. 프로그램 갈무리

김민기의 삶은 특히 20~30대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20~30대들이 ‘몰랐던 어른의 등장’에 받은 충격은 크다.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민기가 누군데 3부작 다큐를 방영하냐”는 질문에 “(프로그램을 보니) 너무 훌륭하다”는 답글이 이어지고 있다. 30대인 고 피디는 “다큐를 만들면서 꿈꾸는 사람들을 존중·배려하고,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을 이끌어간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이 피디도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고 소속감이 느껴지는 공간이 요즘 시대에 없지 않나. 학전도 일터인데, 학교 같기도 하고 집 같기도 한 그런 공동체를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두가 꿈 꿀 기회를 얻기를 바라며 그가 동료들과 만든 신정야학. 프로그램 갈무리

김민기 다큐를 만들기로 한 것은, 학전이 폐관한다는 보도를 접한 뒤였다. 이 피디는 “학전이 폐관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민기를 존경하고 학전을 사랑하는 피디와 작가 몇몇이 ‘우리끼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모인 것이 이 다큐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다큐 제작 중이던 지난 3월15일 학전은 문을 닫고, 3월31일 간판도 내렸다. 학전은 사라졌지만 이 피디는 “‘학전 어린이 무대’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뭔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신정야학부터 해송유아원까지 “우리 모두의 미래는 어린이”라며 어린이가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위한 김민기의 노력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아침이슬’로 정권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공장 노동자들을 위래 만든 노래굿 ‘공장의 불빛’. 프로그램 갈무리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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