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언어 장벽보다 불확실한 미래가 문제”…외국인 과학자 4人에게 한국 과학을 묻다
외국인 유치 적극적, 정착 지원은 미흡
연구 성과보다 한국어 능력으로 채용하는 풍토
영어 공용어는 반대…대신 영어 정보 제공 늘려야
과학기술계는 해외 인재 유치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본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이공계열 대학입학가능 인원은 2020년부터 이미 이공계열 입학정원을 밑돌고 있다. 올해는 이공계열 입학가능인원이 14만1000명으로 정원(19만2000명)보다 5만명이나 적다. 공급이 줄다 보니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 부조화도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해외 인재는 부족한 국내 이공계 인력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옵션 중 하나이다. 정부도 해외 우수인재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년 마다 발표하는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은 매년 해외 우수 연구자 유치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담았다.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과연 현장의 외국인 연구자들에게 통했을까. 조선비즈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과학자 4명을 모았다. 모두 조선비즈의 외국인 과학자 인터뷰 시리즈 ‘한국 과학에 반하다’에 소개한 과학자와 그 동료들로, 한국에서 연구자로 살고 있다.
브래들리 베이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융합기술연구단 책임연구원은 2011년 이후 13년째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마르타 곤살베스 성균관대 박사후연구원, 소피아 브리토 성균관대 박사후연구원은 포르투갈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이들은 한국의 화장품 산업에서 자신의 연구 경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중국 출신인 판 리 기초과학연구원(IBS) 의생명수학그룹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일본에서 연구 경력을 쌓고 지금은 한국에서 전산생물학자로 뇌와 심장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좌담은 홍아름 조선비즈 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안전하고 빨라…젊고 역동적인 에너지도 장점
홍아름 기자(이하 홍아름) :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있나. 각자 생각하는 한국의 매력은 무엇인가.”
소피아 브리토(이하 소피아) :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화장품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었다. 친구가 이미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 한국의 장점 중 하나는 매우 편리하고 많은 것들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마르타 곤살베스(이하 마르타) : “소피아보다 몇 달 먼저 한국에 왔다. 저도 화장품에 대해 조금 더 배우고 싶었고, 특히 재료과학과 물리학, 화학에 관심이 컸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을 때 과학에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5년 전에 우리가 하고 싶은 종류의 연구를 하기에 한국이 확실한 선택이었다.”
판 리 : “1년 전에 IBS 선임연구원으로 대전에 왔다. 한국의 매력 중 하나는 K팝이다. 하지만 1년을 지내면서 모든 활동이 효율적이고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도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한국은 밤에도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 큰 공연장에 가도 보안 검사를 받지 않을 만큼 안전했다. 중국이나 미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브래들리 베이커(이하 베이커) : “2010년 처음 면접을 볼 때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한국 사회의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젊은 나라고, 세계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강한 에너지가 있다. 이런 에너지와 열정이 13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다.”
소피아 : “쿠팡 로켓배송이나 24시간 편의점도 빼놓을 수 없다. 정말 편리하다. 이제는 이런 것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르타 : “유럽에 있을 때는 아시아나 한국의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의 역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게 됐다. K팝 외에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도 마찬가지다.”
홍아름 : “한국 과학이나 연구 환경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베이커 : “올해 2월에 미국 예일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인디애나대학도 방문했다. 그때마다 한국 학생들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들었다. 전 세계가 한국의 이공계 인재를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인력이 해외로 나가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의 인재 코어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피아 : “한국의 빠르고 효율적인 문화가 연구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포르투갈에서 석사 학위를 받을 때는 실제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다. 석사학위 논문을 위해 주문한 장비나 연구 재료를 받는 데 6개월이나 걸리기도 했다. 1년의 연구 기간 중에 실제로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절반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르타 : “성균관대는 장비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연구실에 없는 장비를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 대학의 모든 사람에게 연구 장비가 개방돼 있고, 예약과 사용도 어렵지 않다. 장비를 전담하는 전문인력이 있기 때문에 연구를 훨씬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이런 협업이 쉽지 않았다.”
홍아름 : “다들 장점만 얘기했다. 한국 사회의 단점은 무엇일까.”
베이커 : “연속성이 부족하다. KIST는 행정직원이 2~3년마다 바뀌고 다른 부서를 순환한다. 잘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이 오면 매번 새로 배워야 하고 다시 떠난다. 우리 부서는 지난 2년 동안 3번이나 재편됐는데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연속성이 부족하다고 연구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인 연구자의 입장에서 한국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13년이나 근무를 했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다.”
소피아 :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올해 한국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여파를 겪고 있다. 이런 예산 삭감은 외국인 연구자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일자리를 잃는다면 한국 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부모님 집에 가서 지낼 수가 없다. 우리는 비자를 받아서 한국에 머물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비자도 잃게 되는 것이다. 예산 삭감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매일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연구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됐다.”
마르타 : “맞는 말이다.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매일매일 우리가 한국에서 지내는 마지막 주나 마지막 달인 것처럼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하루의 절반을 보낸다. 한국에서든 한국 밖으로든 언제 이사를 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가 가장 큰 장벽…취업 지원 필요해
홍아름 : “언어 장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라는 점이 얼마나 불편한가.”
소피아 :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언어 장벽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연구 환경에서는 많은 것이 영어로 제공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인공지능(AI) 번역 도구가 있어서 문서를 번역하는데 도움은 되지만, 여전히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영어로 작성된 문서도 이해가 어려울 때도 있다.”
마르타 : “언어 장벽이 연구실에서 외국인들을 쓸모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정부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 연구실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한국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외국인 연구자는 도울 방법이 많지 않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사용해야 하는 어휘는 외국인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베이커 : “언어장벽에 대한 이야기에 완전히 동의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안정성이다. 한국은 외국인 연구자를 채용하려는 장기적인 계획이 없는 것 같다. 외국인을 데려오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여기에 오래 머물게 하는 데에는 명확한 계획이 없다. 예산 삭감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제 연구 예산은 올해 45%가 줄었다. 지금 전 세계가 한국 학생들을 원한다. 그런데 이런 학생과 연구자가 갑자기 큰 급여 삭감을 겪는다면, 미국이나 유럽,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기회가 있는데 굳이 한국에 남으려고 할까.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 출산율도 낮은데, 젊은이들이 떠나도록 만드는 게 문제라고 본다.”
판 리 : “중국은 모든 연구비 지원 신청이 영어로 가능하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도 더 많은 외국인 연구자를 중국에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연구자가 학위를 취득하면 정부는 그들이 일자리를 찾고 영주권자가 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이 이런 통로를 만들지 않는 건 외국인 연구자라는 자원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홍아름 : “안정감의 부족에 대해 다른 참석자들도 동의하나.”
마르타 : “한국의 대학에서는 많은 외국인 학생들을 이미 찾을 수 있다. 외국인 연구자를 유치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이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느냐다. 더 많은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하기 전에 이들의 미래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그대로 떠나지만, 우리처럼 한국에 남아서 삶을 구축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위한 장기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미래에 한국에 올 사람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다.”
홍아름 :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 건가.”
마르타 : “나는 한국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데, 유리천장이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외국인 연구자를 채용한다는 기업들이 있지만, 실제로 알아보면 국적만 외국인 한국인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채용 과정도 한국어로 진행된다. 해당 분야에 필요한 연구 역량보다도 한국어 시험 결과를 중요하게 보는 것도 같다. 우리의 능력이나 경력보다도 한국어 능력을 먼저 본다는 생각이 든다.”
소피아 :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 나라가 나를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마르타 : “많은 대기업이 학교를 찾아와 취업박람회를 열지만 부스마다 가서 물어봐도 우리는 외국인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연구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옵션이 많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때로는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기분도 든다.”
베이커 : “예전에 삼성이 외국인을 위한 연구비 지원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본 적이 있다. 알아보니 외국인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해외에 있는 한국인을 위한 지원 제도였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를 위해 어떤 지원 제도가 있는지,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한국에 온 지 13년이 됐지만 여전히 나는 아는 게 없다.”
마르타 : “많은 지원과 기회가 해외에서 한국에 처음 오고 싶어하는 연구자들에게 집중되는 것 같다. 정작 한국에 있는 외국인 연구자에게는 사용할 수 있는 정보나 자금이 많지 않다.”
베이커 : “한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해외에 있는 외국인 연구자보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서 적응하고 있는 외국인 연구자를 지원하는 게 성공 가능성도 더 클 것이다.
◇영어 공식 언어는 한국에서 쉽지 않아…언어 이전에 문화의 문제
홍아름 :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판 리 : “모든 한국인에게 영어를 공식적으로 쓰자고 말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국제적인 연구소 한두 곳에서 공식 언어를 영어로 쓰는 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작은 규모일지라도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 대학원(OIST)은 영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 작은 연구소지만 공식 언어가 영어인 덕분에 모두가 장벽 없이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OIST는 학생의 80%를 국제 학생으로 모집한다. 일본 정부가 투자하지만 자국 학생은 20%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건 정책결정권자들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소피아 : “영어가 주요 언어였으면 좋겠지만, 많은 한국인에게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연구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지만,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한국인에게 영어로 말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마르타 : “대학에서의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됐기 때문에 무척 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대학과 연구기관을 영어 기반으로 전환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영어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영어를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외국인 학생이나 연구자를 위해 연구비나 보조금에 대한 정보를 보다 영어로 많이 제공해주면 좋겠다. 대부분의 웹사이트에 영어 버전이 있지만, 한국어 홈페이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의 양이 다르고, 심지어 잘못된 정보가 기재된 경우도 많다.”
판 리 : “영어가 과학의 공식 언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건 연구기관 입장에서도 이점이 있다. 하지만 영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는 건 단순히 언어를 넘어서는 문제다. 언어는 특정한 사고방식이나 문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영어를 쓴다는 건 국제적인 기준과 공동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
베이커 : “한국의 연구기관이 영어를 공식 언어로 써야 하느냐는 질문이라면 나는 반대다. 이곳은 한국이다. 과학은 어렵고, 한국인 과학자가 영어로 특정 개념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주저없이 한국어를 사용해야 한다. 영어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에게도 모국어가 아니다. 미국에는 ‘영어 우선, 영어만’이라는 정책이 있지만, 이런 정책이 한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제한이 있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이다.”
홍아름 : “한국행을 고민하는 외국인 동료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혹은 한국 정부를 향한 조언이 있다면.”
베이커 : “유럽이나 미국에서 잘 정착한 연구자를 한국에 데려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배우자 문제다. 연구자가 배우자를 데려오는데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할 일까지 없다면 매우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내 밑에 있는 일본인 박사후연구원은 배우자가 한국어를 빨리 배웠는데도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는데 어려움이 컸다. 외국인 과학자는 한국인보다 훨씬 빨리 유리천장에 부딪힌다.”
소피아 : “두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우선 한국의 근무 시간이 유럽보다 훨씬 길 수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오후 6시면 연구소의 모두가 퇴근했지만, 한국의 대학원에서는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일이 드물다. 이게 한국의 문화이고, 이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또 하나는 주택 문제다. 한국은 집을 얻을 때 내야 하는 보증금이 매우 높은 편이고, 이건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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