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장 5명 중 1명은 비위 또는 범죄···‘사각지대 속 외딴 섬’ 소방서
전국의 소방서장 5명 중 1명은 최근 5년 사이 범죄 또는 비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소방관 계급 중 가장 높은 비율로, 고위직 중에서도 유독 소방서장의 비위 비율이 높았다. 그 배경에는 일선 소방서에 대한 이원화된 관리·감독 체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장의 소방관들은 이런 체계가 일종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그 속에 방치된 소방서 내에선 기강과 지휘체계가 흔들린다고 말한다. 전쟁 상황과 유사한 재난 현장에서 일사불란한 진압 및 구조 작전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면 소방관의 안전은 물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장은 왕”
경향신문이 입수한 ‘소방공무원 범죄·비위 통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소방정 계급자가 범죄나 비위로 징계나 행정조치를 받은 건수는 75건이었다. 해당 기간 소방정 계급의 평균 현원이 356명인 것을 감안하면 ‘현원 대비 비위·범죄 발생 비율’이 21.1%에 달한다.
소방정은 일선 소방서장들의 계급이다. 즉 전국 소방서장 5명 중 1명이 최근 5년 사이 비위나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이는 모든 계급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소방정 이하 계급의 ‘현원 대비 비위·범죄 발생 비율’은 소방경이 14.1%, 소방령 12.4%, 소방위 10.7%, 소방장 8.9%, 소방교 10.4%, 소방사 10.1% 였다. 소방정보다 높은 소방준감 이상 계급의 경우 5.9%였다. 이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계급은 소방정뿐이었다.
이는 계급별, 기관별로 복잡하게 위임·재위임된 소방조직 특유의 인사권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청장이 임용·승진·전보·징계 등 모든 인사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보직은 지역소방본부장까지이다. 소방서장 이하 직급에 대한 인사권은 소방청장에게서 각 시도지사에게 위임돼 있다.
그러나 시도는 소방조직 내부의 사정이나 생리, 업무를 잘 모른다. 지역 재난 업무의 상당 부분을 지역 소방서에 기대는 지자체로서는 일선 서장에 대한 중징계가 부담이기도 하다. 한 119안전센터 관계자는 “지역 내에 소방서장보다 높은 사람은 본부장 한 명 뿐이라 소방직렬 중 서장에 대한 징계위원을 할만한 사람이 없다”며 “그래서 시도의 실국장들이 징계위원이 되는데, 소방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서장들과 척 지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
그는 “실제로 최근 택시 기사를 폭행한 지역 서장님에 대해 본부의 감사관실이 중징계 의견을 냈지만 징계위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갑질·폭행으로 중징계 의견이 나온 본부의 한 간부 역시 경징계만 받고 현재 지역 내 소방서장으로 근무 중”이라고 했다.
문제는 경징계의 경우 소방서장들에겐 실질적인 견제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역 내 한 명뿐인 본부장 자리 외에 서장은 승진을 할 자리가 없다. 다른 지역으로 전보될 일도 없다. 소방서장에 대한 전보권 역시 관할 시도에 있어서 관할 지역을 벗어나는 전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파면·해임·강등을 당하지만 않으면 징계를 받든 안 받든 지역 내 소방서 한 곳의 서장을 지내다 퇴임을 하는 건 똑같다. 서장들이 징계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다.
■소방-지자체 간 인사권 ‘핑퐁’···그 사이에선
이런 상황에서 서장들에겐 독점에 가까운 인사권이 주어져 있다. 소방서장 이하 직급에 대한 인사권은 관할 시도지사에게 위임돼 있지만, 이 중 일선 소방서의 소방위 이하 실무직 직원에 대한 인사와 징계 권한은 다시 해당 소방서장에게 재위임돼 있다. 시도가 일선 소방관들 모두의 인사나 평정을 직접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장은 서 내의 소방령(소방서 과장급)에 대한 승진 추천권, 소방경(소방서 계장급)에 대한 사내 전보권도 갖고 있다.
서 내 직원들에 대한 징계 역시 마찬가지다. 소방위 이하 계급의 징계양정은 소방서 내 징계위원회에서 결정되지만, 징계위에 징계 의결을 요구하는 요구권자는 서장이다. 즉 중징계 의결을 요구할지, 경징계 의결을 요구할지, 아니면 징계위를 열지 않고 행정조치(주의, 경고)로 끝낼지는 서장의 손에 달려있다. 한 소방서 중간 간부는 “소방서장은 사실상 소방서 내의 왕”이라고 했다.
소방청이나 지자체의 간섭 없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인사·징계 권한은 서장에겐 막중한 권한인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직원에 대한 중징계 결정에 따른 책임과 원망도 서장 혼자서 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친소관계에 따른 인사나 온정주의, 솜방망이 처벌의 소지가 생긴다. 실제 최근 5년간 비위나 범죄를 저지른 소방관 중 (주의·경고 등 행정조치가 아닌) 징계를 당한 경우는 29.3%에 불과했다. 70%가량이 징계위에 회부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중징계를 당한 경우는 9.2%로 10%에도 못 미쳤다.
현장의 소방관들은 이런 현실이 현장의 지휘체계까지 흔들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한 지역소방본부 내부 게시판이 항명 논란으로 들끓었다. ‘재발화 위험에 대비해 현장에서 철수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현장 지휘권자의 지시를 소속 팀원이 ‘지휘권 오남용’이라며 거부한 사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해당 지역 본부 관계자는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취지의 정당한 지시였음에도 무력화된 셈이라는 의견이 게시판 내에서 지배적이었다”며 “엄정한 신상필벌이 약화되다보니 이런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장 지휘권이 무너지면 소방관과 시민의 생명이 걸린 절체절명의 현장에서 일사불란한 작전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이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고인물엔 매너리즘이···”
소방서에 대한 이원화된 관리 구조는 사실 ‘지자체의 재난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서였다. 지자체는 지역 내 재난에 대한 ‘1차 대응기관’이다. 그래서 지역 경찰과 소방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실질적 지휘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2020년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될 당시, 지역 소방서에 대한 예산권과 인사권은 지자체에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지역 내 재난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라도 관리·감독 체계의 공백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을 해소할 대책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청은 지난해 말 서장에 대한 징계위원장을 시도지사가 아닌 소방본부장이 맡을 수 있도록 하고, 소방서 내의 징계 역시 사안이 중할 경우 본부 차원에서 징계위를 열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소방관들은 말한다. 한 소방관은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없고, 더 승진할 직위도 없는 소방서장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실적과 역량, 태도에 따라 전보나 승진은 물론 좌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지역 간 전보가 가능해져야만 재난이 많은 지역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서장이 다른 지역에 가서 이를 전파할 수도 있다”며 “전국적인 소방서비스의 상향 평준화를 위해서도 이 같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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