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삶 그 자체가 된 그릇 이야기

서울문화사 2024. 5.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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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티크 그릇 컬렉터 김지연 작가가 3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 를 출간했다. 그릇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배웠다는 김지연 작가의 앤티크 그릇 예찬에 동참했다.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를 출간한 김지연 작가는 ‘살롱 드 화려’라는 티 클래스를 4년째 운영 중이다. 김지연 작가는 티 클래스 수강생들에게 늘 다른 찻잔에 차를 담아낸다. 클래스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그릇은 100년 이상 세월이 묻은 그릇으로, 차마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귀한 그릇들이지만 그의 손길은 자연스럽다.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는 10개국 35개 브랜드 앤티크 그릇의 종류와 패턴 등 기초 지식부터 역사까지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그는 블로그 <그릇 읽어주는 여자>를 운영하면서 혼자 그릇을 모으며 터득한 노하우를 꾸준히 업로드했다. 좋아하는 일을 성실히 해온 결과 블로그 누적 방문자 수가 140만 명이 넘는다.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에는 블로그를 통해 공개해온 이야기에 앤티크 그릇 관리법, 진품 구별법 등 조언을 더했다.

언제부터 그릇을 좋아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생일 선물을 사주겠다며 대형 문구점에 데려갔어요. 그때 학용품이나 액세서리가 아닌 컵 세트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친구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때부터 그릇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무용을 전공하며 해외 공연을 다닐 때도 친구들이 옷이나 가방을 살 때 혼자 앤티크 마켓을 다녔어요. 학생이라 돈이 없어 작은 사이즈의 앤티크 그릇을 사 모았죠. 졸업 후 결혼을 하고, 진짜 내 살림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릇과 사랑에 빠졌어요. 결혼 후 시댁에 갔는데 시어머니가 그릇을 좋아하는 분이셔서 집 안이 온통 그릇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너무 행복했죠. 저희 남편은 시어머니와 저만 보고 모든 여자가 그릇을 좋아하는 줄 알 정도예요.(웃음)

시어머니에게 처음 선물 받은 그릇 기억나요?

그럼요. 작업실에 고이 두고 있죠. 로얄알버트 올드 컨트리 로즈 시리즈예요. 결혼했을 때 어머님이 선물로 주셨죠. 화려한 그릇은 한식과는 안 어울려 티타임에만 사용해요. 30년도 더 전에 선물 받은 그릇인데 여전히 예뻐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처음 샀던 그릇은 앤티크는 아니었어요. 꽃무늬가 예쁜 일본 노리다케 그릇이었죠.

본격적으로 앤티크 그릇을 모은 시기는 언제인가요?

결혼한 지 10년 정도 지난 후에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할 일이 생겨 5년 정도 살다 왔어요. 그때 벼룩시장에 눈을 떴죠. 주말마다 예배가 끝나면 무조건 벼룩시장에 갔어요. 당시 IMF로 월세 내기도 빠듯했는데 조금씩 사 모았어요. 경제적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기 전까지는 늘 관심을 갖고 지켜봤어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제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그동안 못 모았던 그릇을 확 모으기 시작했죠. 거의 매일 집으로 택배가 와서 경비 아저씨가 뭐 하는 집이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소장만 한다는 점이 놀라워요.

전 예전부터 되팔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너무 좋아해 소장하고 싶은 욕심으로 모았죠. 몇 해 전에 한 잡지사에서 덕후들에 관한 기사를 쓴다며 연락이 왔어요. 그릇을 모으는 사람은 많은데 왜 저한테 연락했냐고 물으니 그릇을 모으면서 판매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SNS에서도 대놓고 그릇 안 판다고 말해요. 농담 삼아 “팔라고 하면 인연 끊겠다”는 말도 하죠.(웃음) 간곡하게 부탁하는 지인에게 한두 번 팔아봤는데, 결국 제가 더 비싼 돈을 주고 똑같은 그릇을 사고 있더라고요. 그 후론 후회할 일은 안 하죠.

그런 순수한 마음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맞아요. 수집의 목적 자체가 투자인 사람도 있거든요. 앤티크는 오늘보다 내일 비쌀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논리로만 접근했다면 제가 이렇게 많은 그릇을 사지도 않았을 거예요. 놔두면 팔릴 만한 그릇들만 모았겠죠. 저는 쓰기 위해 모았어요. 저희 남편이 가끔 컬러만 다른 독일 브랜드 린드너의 제품을 보고 똑같은데 왜 샀냐고 물어요. 그럼 저는 색깔이 다르다고 말하죠. 세상에 같은 앤티크 그릇은 없어요.

블로그 <그릇 읽어주는 여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남들 눈에는 같아 보이지만 다른 그릇을 사면서 생긴 안목의 차이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제가 안 본 그릇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제 글을 기다리더라고요. 다음에 또 무슨 그릇을 읽어줄지 궁금하다면서요. 처음에는 그릇을 기록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차츰 그릇을 더 사랑하게 된 원동력이 됐어요. 그릇을 더 사들일 수 있는 좋은 핑계도 됐죠.(웃음) 그릇을 읽어줘야 하니까요.

지인들이 티타임을 기다릴 것 같아요.

모두 그릇을 저처럼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차 마시자고 집에 불러보면 딱 알죠.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은 차가 담긴 것도 잊고 백 마크를 보려고 찻잔을 뒤집어보기도 해요. 반대로 그릇이 많아 정신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저는 차의 종류가 달라지면 다른 찻잔에 차를 내놓거든요. 근데 설거짓거리가 생긴다며 뭐라고 하는 친구도 많아요. 그럼 제 의지가 꺾이죠.

티 클래스는 그 마음을 이해하는 분들이 주로 모이겠어요.

물론이죠. 전부 저 같은 사람들만 와요. 티 클래스를 하면서 알게 된 인연들이 정말 소중해요. 수업이 끝났는데도 집에 안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웃음) 크루들과 함께 도자기와 차 문화를 접하기 위해 여행도 떠나요. 중국, 스리랑카, 유럽에 다녀왔죠. 최근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파리, 런던으로 2주간 여행을 다녀왔어요. 코스를 짜는 것부터 예약까지 모두 제가 다 해요. 힘들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즐거워요. 마음이 맞는 크루들과 여행하면 여행의 색깔이 달라져요. 차도 실컷 마시고, 그릇도 구경하고, 유명 도자기 공방에도 가보면 저변이 넓어지죠.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저만 혼자 따로 놀아요. 저는 앤티크 숍 특유의 냄새가 너무 좋은데 친구들은 싫어해요. 그러면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죠. 취향이 맞는 크루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그런 걱정이 없어서 편안해요.

100년이 넘는 그릇으로 티 클래스를 하고, 크루들과 함께 여행도 떠난다니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보통 6주 수업인데 그릇도 바꾸고 차도 바꾸면서 그릇과 차에 관련한 이야기를 함께 하다 보면 제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농담 삼아 설거지가 귀찮으면 이 일을 그만해야겠다는 말을 하는데 아직은 재밌기만 해요. 수강생들이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면 그것만큼 뿌듯한 게 없어요. 예쁜 찻잔에 정성 들여 우린 차를 담아내기만 해도 수강생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달라지는데 제가 부지런히 움직여야죠.

책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요?

이 책에는 그릇에 대한 정보와 제 이야기가 함께 담겼어요. 사실 그릇 정보는 백 마크만 봐도 알 수 있거든요. 백 마크를 사진으로 찍어 구글에 검색해보면 어느 정도 정보는 알 수 있죠. 그건 굳이 책으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와 대화하는 이들은 이 그릇을 어디서 샀는지, 어떻게 구했는지 등 그릇에 얽힌 스토리를 궁금해하거든요. 처음 앤티크 그릇을 살 때는 그릇의 가치를 잘 모르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기도 해요. 가장 큰 실수는 백 마크가 없는 걸 300년쯤 됐다며 파는 말에 넘어가는 거죠. 백 마크가 없는 그릇은 이름이 없는 것과 같아요. 저는 그런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고 싶고, 내가 어떻게 그릇을 모았는지,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릇에도 서사가 있잖아요. 언제 만들었는지, 누가 디자인했는지, 이 브랜드가 지금 없어진 이유는 무엇인지 등 그릇 하나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요.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봐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하죠.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독일 앤티크 그릇을 많이 다루고 있어 흥미로워요.

사실 저는 독일 그릇을 참 좋아해요. 영국 그릇은 입문하기 쉽지만, 독일 그릇은 언어의 장벽도 있어 입문이 쉽지 않죠.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없어진 회사도 굉장히 많아요. 독일 앤티크 그릇은 아주 유명한 마이센 외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제 취향은 투각이 있으면서 견고한 매력이 있는 독일 그릇이에요.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영국 브랜드는 정보가 많지만, 독일 브랜드는 그렇지 않아 제 도전 의식을 자극하죠. 공부할 재료가 많아질수록 희열도 커져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처럼 그릇,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계속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수강생들이 저한테 매일 영양제를 들고 와요. 제가 쓰러지면 자기들이 더 힘들다면서요. 건강관리를 잘하면서 그릇을 오래 사랑하고 싶어요. 아주 나중에는 더 많은 사람이 그릇을 직접 볼 수 있도록 그릇 박물관을 열고 싶어요. 이 아름답고 예쁜 그릇들을 저만 보기에는 아까우니까요.

TIP 알아두면 좋을 앤티크 그릇 용어

크랙 일종의 갈라진 틈을 말하며 ‘빙열’이라고도 한다. 그릇의 내외부에 모두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미 균열이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 사용 목적이라면 구입하지 말 것.

민트 컨디션 ‘민트급’이라고도 한다. 새것 같은 상태 또는 미사용 제품을 말한다.

깨칩 아주 작은 사이즈의 흠. 골드 라인에 깨칩이 있다면 그릇의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

지은이 김지연 출판사 몽스북

앤티크 입문자부터 고수까지 두루 활용할 수 있는 책. 유럽 최초의 도자기 ‘마이센’부터 ‘헤렌드’, ‘로얄코펜하겐’까지 그림보다 아름답고, 서양미술사보다 재밌는 앤티크 그릇 이야기를 담았다. 그릇의 기품이 그대로 묻어난 아름다운 사진도 놓치지 말 것.

에디터 : 류창희(프리랜서) | 사진 : 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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