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아시아 외환위기론의 실체

권성희 기자 2024. 5. 1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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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 (부산=뉴스1) 윤일지 기자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아시아 경제를 뒤흔드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늦어지며 달러 강세가 지속되자 아시아 국가의 통화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의 통화 가치 하락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할 수 있는 2가지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첫째는 19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유사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엔저가 장기화하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주변국들의 경쟁적 통화 가치 절하, 즉 환율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윌리엄 페섹은 지난 4월30일 배런스에 기고한 글에서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지난 4월24일 예상과 달리 금리 인상을 단행한데 대해 "달러 강세로 아시아에 1997년과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최근 사례"라고 지적했다.

루피아 가치가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이었던 2020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자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페리 와르지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금리 인상을 결정한데 대해 "루피아 환율을 안정시키고 악화하고 있는 글로벌 리스크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링깃 가치도 지난달 말 1998년 말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말레이시아 부총리를 지냈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직접 나서 링깃 환율이 "통제되고 있다"며 외환시장을 달래야 했다.

페섹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가 현재와 같은 미국의 긴축 정책에 따른 달러 강세의 후폭풍으로 촉발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994년 2월부터 1995년 2월까지 1년간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2배 인상했다.

이에 따라 달러 가치가 오르자 달러 고정환율제(페그제)를 채택하던 태국 등 아시아 국가의 통화 가치도 덩달아 상승했다. 이들 국가는 통화 가치 급등으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무역적자가 확대되자 통화 가치를 평가 절하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결과 증시가 급락하고 외국 자본이 유출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지난 9일 달러 강세로 아시아 통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이머징마켓 전체에서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금융 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다만 달러 강세로 인한 아시아 국가의 통화 가치 하락이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낮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와 달리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크게 늘었고 금융 부문에 대한 감독은 강화됐으며 경제와 시장의 탄력성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전쟁은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로 우려를 사고 있다.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면 중국이 일본 수출품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고 이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경쟁적으로 통화 가치를 절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13일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유로화, 엔화와 더불어 위안화에 대한 환율 개입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로 인한 환율전쟁 가능성을 우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환율전쟁이 심화하면 결국 이시아 각국의 주식과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본이 빠져나가 외환위기와 비슷한 사태가 촉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향해 지속적으로 내려가면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달러 강세 기조가 완화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나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는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국부터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의 매력은 점점 더 많은 글로벌 자본을 빨아 들이고 있는 달러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페섹의 경고는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 펀더멘털과 중국이나 일본, 한국에 비해 경쟁력 있는 인구구조, 기업의 혁신 속도 등을 감안할 때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큰 폭으로 인하하지 않는 한 달러 강세 기조가 쉽사리 꺾이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기 때문이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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