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으로 본 세상] 3분의 1 파괴된 가자 지구...포화 속 난민촌, 삶은 계속된다

박근태 과학전문기자 2024. 5. 16.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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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나라스페이스 공동기획
이스라엘과 무장정파 하마스 간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달 4일 팔레스타인 소녀들이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난민 임시 천막 캠프 옆 모래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 /나라스페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7개월째 접어든 가운데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가자지구 3분의 1이 파괴됐다는 국내 위성서비스 기업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지상전 공격을 예고한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 피난민 숙소로 추정되는 텐트들이 대거 설치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스라엘군 공격에 따른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민간위성 서비스회사 나라스페이스는 16일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과 고해상도 광학위성 영상을 분석한 결과 가자지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20㎢에 이르는 지역이 이번 전쟁으로 파괴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발발 이후 가지지구 전 지역의 광범위한 피해 규모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분쟁은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양측 공방이 이어지면서 현재까지도 대규모 인명피해를 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이후 한 달 만에 가자지구에 2만5000t이상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유럽의 인권단체 유로메드모니터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한 핵폭탄의 파괴력을 훌쩍 넘는 가공할 양이라고 평가했다.

유엔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가 이달 8일 위성 영상을 분석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이후 주택과 학교, 사원을 포함해 가자지구 전체 구조물의 50% 이상이 파괴되고 36만채 주택이 파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마스 보건부는 가자지구 내 사망자가 개전 후 218일간 3만5034명, 지금까지 부상자도 7만875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 영상을 이용해 피해지 분석을 수행한 결과, 가자 지구에 구성된 난민 캠프 위치들이 피해지로 추정된다. 지난 4월 22일 기준으로 가자 지구의 전체 면적의 33%에 이르는 면적이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된다. 노란점은 건물 밀집도가 크게 떨어진 지역./ESA 나라스페이스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팀은 유럽우주국(ESA)이 운영하는 SAR위성인 센티널-1이 찍은 영상을 활용해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피해지역의 범위를 산출했다. SAR위성은 긴 파장의 전자파를 지상에 쏘아 되돌아오는 신호로 영상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디지털카메라처럼 지표면에 반사된 태양빛으로 영상을 만드는 전자광학(EO) 위성과 달리 수증기를 통과하는 긴 파장의 전자파를 쏘는 방식이라 구름이 짙게 낀 흐린 날씨에도 지표면을 훤히 내려다 본다. SAR위성은 최근 지표면이나 건물과 같은 인공구조물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피는 데 자주 활용된다.

센티널-1 위성이 찍은 영상을 보면 전쟁 발발 전인 2023년 9월 30일과 비교해 지난 4월 22일 포착된 가자 지구 전체의 건물 밀집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밀집도는 재난과 재해가 났을 때 피해 규모를 산출하는 주요한 지표로 쓰인다. 분석 결과 전쟁 발발 이후 건물 밀집도가 떨어진 지역은 가자 지구 전체 면적 361㎢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2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투로 건물이 파괴되면서 밀집도가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건물 밀집도가 떨어진 지역은 실제 공습으로 파괴된 뒤 난민촌이 형성된 지역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시작한 이후로 가자 지구의 피해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내 603개 수도시설 중 53%가 작년 10월 7일 이후 손상됐거나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폐수 처리장 6곳 중 4곳도 손상을 입거나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에서 주요 피해 지역이 가자 지구 북부와 중남부에 집중된 것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가자지구 전역의 건물 밀집도를 분석한 결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023년 9월 30일에 비해 2024년 4월 22일의 건물 밀집도는 전체적으로 줄어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 운명 엇갈린 가자 지구

어스페이퍼팀은 가자 지구 북쪽보다는 남쪽 라파 지역 인근 난민캠프를 중심으로 건물 밀집도가 높아진 점을 새롭게 확인했다. 라파는 가자 지구와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에 맞닿은 도시로 개전 이후 가자 지구 북쪽 피난민이 공습을 피해 몰려들었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유엔은 가자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전에는 인구 25만 명이던 라파에 몰려 있다고 밝혔다.

반면 가자 지구 북부에서는 건물 밀집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 공격이 집중되면서 사원과 아파트를 포함한 주요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 결과로 보인다. 북부 가자시티에 난민촌이 조성되면서 일부 지역에선 밀집도가 올라갔지만 북쪽 지역의 전체적인 밀집도는 떨어졌다.

가자지구 북부에 위치한 도심지역 ‘가자’에서는 사원을 포함한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며 난민 캠프가 조성됐지만 건물 밀집도가 내려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SA 나라스페이스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북쪽 지역에서는 난민 캠프가 조성되면서 건물 밀집도가 북부와 다르게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ESA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팀은 “가자지구 북부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몰리면서 텐트나 새로운 주거공간이 형성되면서 건물 밀집도가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의 민간위성기업 플래닛랩스가 운영하는 전자광학 위성인 스카이샛이 전쟁 전인 지난해 8월20일과 지난 4월25일 각각 촬영한 영상을 보면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 라파 인근의 건물과 도로 곳곳에선 난민 텐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대규모 난민촌이 조성됐다. 12월 초부터 불과 한 달 동안 이집트 국경 근처에 새로운 텐트가 세워진 면적은 약 3.5㎢에 이른다. 이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장 약 500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라파 북서부 지역의 접근 가능한 미개발 지역 거의 모든 부분이 이재민을 위한 피난처로 바뀌면서 건물 밀집도가 올라갔다.

현재 라파 난민 캠프의 피란민들은 길거리와 학교 건물,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유엔긴급대피소는 피난민이 몰리면서 수용 능력을 훨씬 초과했고 수용 인원 과밀이 심각한 보건 문제로 떠올랐다.

이스라엘은 이달 들어 가자 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탱크를 진입시키며 압박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 측은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후 보루 라파를 공격해 하마스를 궤멸하겠다는 계획이다.

라파 난민 캠프가 자리한 곳에서 피란민들은 길거리와 학교 건물을 포함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불과 1년도 안되는 사이 건물과 도로 사이를 메꾸는 난민 텐트들이 우후죽순 늘어나 대규모 텐트촌이 조성되면서 라파 지역의 건물 밀집도가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플래닛랩스

이번 전쟁은 최근 20년 새 피해가 가장 컸던 ‘11일 전쟁’ 때와 피해 양상이 다르다. 11일 전쟁은 2021년 5월11일 이슬람 금식일 라마단을 맞아 팔레스타인인들이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했다가 이스라엘 경찰에 강제퇴거를 당하면서 전면 충돌로 확대된 분쟁이다. 11일간 교전이 이어지며 가자 지구에서 최소 250명, 이스라엘에서 13명이 숨졌다.

센티널-1 위성이 11일 전쟁이 끝난 직후인 2021년 5월25일 찍은 영상을 보면 이스라엘군 공습과 포격으로 당시 라파의 건물이 파괴되면서 건물 밀집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 4월 22일 같은 위성이 촬영한 영상에서는 피해가 주로 가자 지구 북부의 가자시티를 중심으로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군이 이번 전쟁에서 북부와 중부를 중심으로 공습과 공격을 감행했다는 뜻이다.

과거 전투와 현재의 위성 영상 분석 결과를 비교했을 때, 과거 전투 당시 가자 지구 남부 지역(라파)에 대한 건물 밀집도가 낮은 모습을 보였다./나라스페이스

◇ 도시 모니터링에 사용되는 SAR

SAR는 도시 모니터링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SAR는 센서에서 장파장의 신호를 쏘아 산란된 신호를 모아 영상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지표면의 거칠기와 물체 모양, 지표면의 유전율(매질이 저장하는 전하량)을 반영한 영상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강과 호수 같은 물은 유전율이 높고 표면이 매끄러운 영역은 영상에서 어둡게 표시된다. 반면 도심 지역 밀집한 건물의 경우 영상에선 밝은 영역으로 표시된다.

특히 SAR영상을 활용한 건물 밀집도 분석은 재난과 재해, 전쟁 지역에서 피해 규모를 산출하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된다. 어스페이퍼팀이 분석에 사용한 ‘스페클 다이버전스(Speckle Divergence)’는 수직한 건물처럼 이중산란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차이를 구분하는 기술이다. 스페클은 여러 대상에서 반사된 신호 간섭에서 발생하는 무작위 잡음인데 대상 분류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전쟁과 재난 현장에서는 초고해상도 항공사진, SAR를 포함한 위성 영상을 사용하는 원격탐사 기술이 피해 평가를 검증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세계은행이 아이티 지진 재해에 대해 실시한 피해 평가에서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피해를 정밀하게 탐지하고 피해 규모를 신속하게 평가하는 데 활용됐다.

어스페이퍼팀은 “SAR 영상은 시간과 기상 상태에 제한을 받지 않아 분쟁 지역에서 시시각각 전시상황에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며 “장기화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한다면 종전이 된 이후 피해 지역에 대한 신속한 대응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 https://ep.naraspace.com/

수년 전만 해도 하루 한번 같은 장소를 찍기 어려웠지만 저가 발사체가 늘어나고 소형위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 감시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방 분야는 물론 재해와 재난 감시, 손해 사정, 산업 동향 분석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위성 영상이 활용되고 있다. 국내 위성 서비스 기업 나라스페이스와 조선비즈는 우주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우주경제 시대를 앞두고 인공위성 영상 데이터와 국방과 산업,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해 분석하는 ‘위성으로 본 세상’과 ‘위성으로 보는 경제’라는 ‘스페이스 저널리즘’ 시리즈를 매주 공개하고 있다.

나라스페이스 조선비즈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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