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의 허상[영웅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

강현석 기자 2024. 5.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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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정신’ 사명감에 감수하는 위험
대원들의 ‘안전’은 챙겨주지 않는다
제77기 신임 소방공무원들이 2023년 12월28일 경기 용인의 경기도소방학교에서 열린 임용식에서 정모(正帽)를 날리며 자축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지난해 12월28일 경기 용인의 경기도소방학교에서 제77기 신임 소방공무원 427명의 임용식이 열렸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은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해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소방관의 모토라고 한다”면서 “마지막에 나오시더라도 여러분 자신의 안전과 건강도 함께 잘 지켜 주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늦게 나온다)은 한국 소방관들의 대표적인 구호로 꼽힌다. 소방청 공식 구호는 아니지만 곳곳에서 쓰인다. 남화영 소방청장도 지난달 17일 한 언론과 인터뷰하며 “소방관의 사명은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이라고 했다.

이 구호는 소방관의 희생을 강조한다. 소방청도 이 구호의 위험성을 안다. 소방청은 2023년 김제 주택 화재 순직사고 보고서에서 안전 의식을 높이는 문구 대신 희생을 당연시하는 내용이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소방관의 정신 관련 문구(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가 멋있고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고, 현장 안전활동 관련 실용적인 표어 및 개념이 부족하다”고 썼다.

안전 중시 문구보다 더 앞세워
무모한 행동 이어지며 위험천만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은 무모한 구조에 뛰어들게 만드는 구호이기도 하다. 구조대상이 없는데도 소방관들이 건물에 진입했다가 순직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2022년 1월5월 오후 11시 46분쯤 경기 평택의 대형 물류창고 신축공사장에서 불이 났다. 현장대응단은 이튿날 오전 6시 32분 초진을 선언했다.

오전 9시 7분쯤 갑자기 재확산한 불길에 내부 인명검색을 하던 송탄구조대 구조 3팀 5명이 고립됐다. 2명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3명이 숨졌다. 이 팀은 이미 이날 오전 0시 25분과 1시 37분, 3시 36분, 5시 9분까지 밤을 새워가며 4차례나 건물에 진입하거나 철수하기를 반복했다.

소방청 조사 보고서를 보면 당시 현장 지휘부는 화재 초기 “대피 도중 5층에서 작업자 3명을 목격했다”는 진술 이후 내부 수색을 지시했다. 사람은 없었다. 보고서에는 “현재까지 작업자 총 5명이고 다 대피했다고 현장 관리자에게 확인(무전, 0시 27분)”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오전 0시 27분 작업자들이 모두 대피했다는 사실을 지휘부에 파악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 수색 지시는 멈추지 않았다. 이날 오전 0시 25분부터 오전 8시까지 진행된 내부 수색은 총 19차례에 달했지만 구조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원 보호 우선’ 미국 체계와 대조
“냉정한 판단 내릴 매뉴얼 필요”

비슷한 사고는 2021년 6월에도 있었다. 경기 이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불이 나 내부 인명검색을 하던 광주소방서 소속 구조대장이 순직했다. 구조대는 지하층에서 연기가 계속 분출되는 상황에서 구조할 사람이 없는데도 내부로 진입했다. 같은 해 6월 울산시의 한 상가건물 화재에서도 내부 검색을 하던 소방관이 순직했는데 역시 구조할 사람은 없었다.

미국 소방지휘시스템은 소방관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 기준을 3단계로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한다. 1단계는 ‘우리는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2단계는 ‘우리는 구할 수 있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위험을 조금 감수할 것이다’고 규정한다.

마지막 3단계는 ‘우리는 이미 잃어버린 생명 또는 재산을 위해서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이다. 구할 수 없는 생명과 재산 때문에 위험 상황에서 소방관의 목숨을 담보로 걸지 않겠다는 취지의 다짐이다.

강웅일 호남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구조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소방관들이 진입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무모한 행동’이 자주 발생한다”라면서 “실제 구조대상이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판단하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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