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사 대국화에 무기력한 윤석열 ‘가치 외교’

김창수 2024. 5. 16.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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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범국가에게 면죄부를 주는 회담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파트너로서 ‘세계 경찰’이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조 바이든 대통령이 4월10일 워싱턴에서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EPA

지난 4월10일 미·일 정상회담 결과, 미·중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일본 자위대가 드디어 날개를 달았다. 자위대는 이제 해외파병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 80주년을 한 해 앞둔 시점이다. 80년 동안 일본이 꿈꿔온 숙원이 이렇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조항 때문에 일본 헌법은 ‘평화헌법’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또 전쟁과 침략의 공포로부터 일본 국민들과 이웃 나라를 안심시킬 수 있었으며, 일본이 경제성장을 이루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전수방위 원칙을 채택했다. 전수방위란 일본이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물리칠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만 자위를 위해 최소한도에서 전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수방위 원칙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 해외파병은 불가능했다.

일본 극우세력은 1950년대부터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고 전수방위 원칙을 허물려고 했다. 2022년 12월, 기시다 정권은 적 기지 공격 능력을 ‘선제적 반격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공식 안보 정책으로 채택했다. 적의 영토를 선제 타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자위대 해외파병을 위한 시도도 멈추지 않았다. 1960년대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하고 자위대 파병 계획을 수립했다. 1965년 폭로된 미쓰야(三矢, 삼시) 연구이다. 당시 논란이 컸지만, 일본은 이 연구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대표적인 게 ‘미·일 공동작전계획’이다.

일본은 2018년부터 중국과 타이완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자위대가 전투에 참여하는 계획을 수립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한반도나 타이완에서 발생할 분쟁에 대비해 자위대 해외파병을 가능하도록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다. 핵심은 미국과 협력해 한국을 참여시킨다는 구상이다. 미쓰야(三矢) 연구는 일본 전국시대 무사가 ‘세 개의 화살은 부러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 미·일이 협력해서 한국을 참여시킨다는 의미에서 ‘세 개의 화살(미쓰야)’이라는 용어를 썼다. 미·일 동맹이 핵심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에서 한국은 미·일 동맹의 하위구조로 편입된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은 선제적 반격 능력이나 자위대 파병을 가능하게 하려고 평화헌법조차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헌법을 위반할 수 없기에 ‘해석 개헌’이라는 방식으로 헌법을 교묘하게 해석해왔다. 헌법을 지키지만 사실상 개헌과 같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다.

일본은 그동안 자신들의 침략 행위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자위대 해외파병은 일본 침략을 받았던 국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미국의 전략에 편승했고, 대내적으로 해석 헌법이라는 교묘한 반칙을 범해왔다.

한국, 미국, 일본은 지난해 워싱턴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세 차례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은 4월11일 제주도 인근에서 실시한 한·미·일 합동훈련 모습. ⓒAP Photo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은 자위대 해외파병이라는 숙원을 이루게 되었다. 일본은 미·중 갈등 구도에서 미국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중국이 떠오르자 미국은 유럽이나 중동으로부터 아시아로 외교안보의 중심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 정책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나 ‘재균형(Rebalancing)’이 핵심이었다.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때 추진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대중국 견제와 압박을 한층 더 분명히 한 정책이다.

‘2027 타이완 침공설’이 묶은 미·일

미·일 정상회담 이후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글로벌 차원에서 행동하는 동맹으로 거듭나기 위한 미·일 군사동맹 업그레이드에 합의했다”라고 강조했다. 미·일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과 일본은 글로벌 어젠다를 총망라해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방위 및 안보협력 강화, 우주에서 새로운 프런티어 개척, 기술혁신 추진, 경제 안보 강화, 기후변화 대책 가속화, 글로벌 외교 및 개발 협력 등 매우 광범위하다. 양국 정상은 미·일 동맹이 1951년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된 뒤 유례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기시다 총리는 일본이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로서 ‘세계 경찰’이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자위대가 글로벌 경찰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발을 들이밀기로 합의한 지역만 보더라도 북한, 중국과 타이완, 남중국해 등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른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토와 파트너십 구축, 유엔 안보리 개혁에 협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반대하는 결속, 하마스 테러 비난과 가자에서의 즉각적인 휴전, 이스라엘의 안전이 보장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으로 두 국가 해법 모색, 중남미 개발 지원과 아이티·베네수엘라에 대한 정책 조정, 아프리카 국가들의 성장 지원 등을 합의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역할을 미국이 보장했다. 그뿐 아니라 우주개발도 미·일의 협력 범위에 포함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일본의 역할을 위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일본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합류시켜 안보리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하지만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은 과거의 주변국 침략에 완전한 면죄부를 준다. 유엔 자체가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일본은 과거사를 충분히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그런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는 것은 유엔헌장과 유엔 출범의 정신과도 모순된다.

지난해 11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했다. ⓒAP Photo

미·일 정상회담으로 일본이 군사 대국이 되어 세계를 무대로 자위대의 깃발을 휘날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양국은 이를 위한 필수 여건도 갖추겠다는 게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핵심이다. 그 필수 여건이란 미·일 정상이 합의문에 밝힌 ‘안전보장 협력 강화’ 조항 중 ‘평시와 유사시에 자위대와 미군의 상호 운용성 강화’를 말한다. 이를 위해 두 나라가 각각 ‘지휘통제의 틀을 향상’하기로 했다. 이 조항은 어려운 단어를 복잡하게 열거하고 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주일 미군의 지휘 구조를 업그레이드하고 자위대는 통합사령부를 만들어 자위대와 미군 협력(상호운용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주일 미군의 지휘 구조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은 3성 장군인 주일 미군 사령관을 4성 장군으로 격상시킨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주일 미군 사령관은 하와이에 있는 4성 장군인 인도·태평양 사령관 지휘를 받았다. 주일 미군 사령관이 4성 장군으로 격상되면 인도·태평양 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주일 미군을 통합적으로 지휘해 일본 자위대와 연합작전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동시에 자위대도 육해공 자위대를 통합 지휘하는 사령부를 만들면, 주일 미군과 자위대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통합작전을 벌일 수 있다. 주일 미군과 자위대가 한미 연합사령부와 같은 통합사령부를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리라 보인다.

한편 미군과 자위대가 ‘평시와 유사시’에 협력을 강화한다는 대목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2015년 개정한 미·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유사시’란 일본의 안전에 대한 위협뿐만 아니라 우주 및 사이버공간에서 무력 공격, 일본 이외 국가에 대한 무력 공격과 일본에 대한 대규모 재해 등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미국이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 때문이다. 4월23일 존 아퀼리노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중국의 위협을 강조했다. 그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 군에 2027년 타이완 침공을 실행할 준비를 진행하도록 지시했다”라고 밝혔다. 중국이 2027년 타이완을 침공한다는 타이완 위기설은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대표적인 중국 위협론 가운데 하나다. 본질적으로는 중국 부상과 이에 따른 미·중의 경쟁과 갈등이지만, 2027년 타이완 침공설은 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편승해 일본은 자위대 해외파병이라는 숙원을 풀려고 한다.

4월17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뿐만 아니라 나토와 인도·태평양 4개 파트너 국가의 협력 강화도 언급했다. 이미 한·미·일은 군사동맹 차원으로 3국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한·미·일은 지난해 워싱턴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인근에서 세 차례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오는 7월 미국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 때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릴 전망이다.

나토 정상회담과 함께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한·미·일 3국이 군사동맹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입증한다. 지난해 워싱턴 한·미·일 정상회담 때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매년 정상회담 개최를 약속했다. 사실상 3국은 ‘군사 신동맹’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유럽 군사동맹인 나토와의 군사협력도 본격 논의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이런 움직임은 한반도를 향한 영토 야심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날개를 달아준다. 한반도가 글로벌 차원의 진영 대결 구도에 끼어들게 된다.

윤석열식 ‘흑백 외교’가 놓치고 있는 것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국익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미·일 정상회담으로 경제적 실익을 많이 챙겼다. 가령 미국과 청정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에 일본이 최초로 참여하기로 했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에서 일본 못지않은 능력을 갖춘 한국으로서는 타격이다.

1951년 2차 세계대전 강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이 동시에 체결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논의하던 초기, 미국은 한국을 조약 체결 당사자로 인정했다. 중국에 공산혁명이 일어난 뒤 입장이 바뀌었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을 공산권에 맞설 전초기지로 삼았다. 당시 요시다 일본 총리는 이 상황을 이용해 전범국가에 지나치게 관대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맺었다. 나아가 양국은 미·일 안보조약까지 체결했다. 요시다 총리의 로비로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서명국 자격을 얻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후유증으로 아직도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 야욕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이 조약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가치 외교’라고 포장하며 추진하는 이념 대결의 ‘흑백 외교’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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