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폭력, 젠더 폭력 범위 넓히면 해결된다고?[의대생 사건 그후]⑥

김예원 기자 2024. 5.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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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교제 살인, 젠더 폭력 재정의하는 계기 돼야…해외 '포괄적 지원'
예산·인력 부족도 해결해야…피해자 전담 경찰관 고작 5명 늘어

[편집자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교제폭력 피의자는 1만 3939명에 달한다.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교제폭력 사건 특성상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가·피해자도 많을 것이다. 강남역 의대생 살인 사건이 연일 주목 받고 있지만, 교제폭력 대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뉴스1>은 '의대생 사건' 이후 개선해야 할 교제폭력 실태를 집중 보도한다. [편집자 주]

ⓒ News1 DB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최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의대생 살인 사건을 계기로 기존 스토킹과 가정폭력 등으로 구분됐던 기존 젠더 기반 폭력의 범주를 재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거, 혼외 출산 등 가족 구조의 변화로 새롭게 대두되는 파트너 간 범죄에 대한 전방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인력 부족 등 현행 피해자 지원책에 대한 미비점이 보완되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식 대안에 그칠 수 있다며 함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 교제 살인, 스토킹·가정폭력 등 기존 제도 망에 포함해야 16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지난 2일 서울 강남역 건물 옥상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의 목 주위에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의대 소속 20대 남성 최 모 씨(25)가 14일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지난 3월 경기 화성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집착을 이유로 헤어짐을 고했던 여자 친구를 흉기로 숨지게 한 김레아(26)도 오는 23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최근 연인 등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로부터 폭행, 살인 등 강력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자 이같은 교제 폭력을 가정폭력, 스토킹 범죄를 규정하는 현행법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친밀 관계 내 폭력에 대한 처벌 및 피해자 지원법을 신설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현행법상 최 모 씨, 김레아의 사례는 법적 사실혼 관계에 속하지 않는 연인 관계로, 가정폭력방지법 및 스토킹 처벌법 등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또한 이들은 가정 폭력 등 현행법에서 규정하는 젠더 폭력 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스토킹 신고 등이 접수된 이력도 없어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 명령 등도 불가능하다.

2023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젠더기반폭력으로서 친밀 관계 폭력의 개념화와 대응 방향 모색'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지원기관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친밀 관계 폭력은 과거 배우자, 연인 등 가정 폭력의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파트너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교제 살인의 가해자 범위를 확대하는 추세다. 영국의 경우 가정폭력의 정의를 전통적 의미의 가족 구성원이 아닌 과거 연인 관계 또는 결혼 의사가 있는 관계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배우자폭력방지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뿐만 아니라 생활 공간을 공유하는 교제 관계로까지 넓혀 규정하고 있다.

ⓒ News1 DB

◇ 교제 폭력 늘어나는데 상담소 예산 삭감· 보호 인력 증원 미비 다만 일각에선 피해자 지원 및 보호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부족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도 일선 현장에선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법적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만으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젠더 폭력 담당 인력 부족은 교제 살인 등 관련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늘 해결돼야 할 사안으로 꼽혔지만 증원은 지지부진하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국 시도경찰청별 피해자 전담 경찰관은 2023년 기준 328명으로 인당 평균 89.5건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는 5명이 증원된 333명이 전담 인력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피해자에게 적절한 보호 조치를 제공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숫자라는 지적이다.

올해부터 가정폭력 피해자 등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된 점도 교제 폭력 위험에 노출된 잠재적 피해자들 보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교제 폭력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법망이 없는 지금 가정폭력 상담소 등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 및 수사기관과의 연계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상담소 운영 예산은 2023년 116억 3700만원에서 올해 84억 4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가정폭력 피해자 치료 회복 및 의료비, 주거지원 운영 예산도 삭감됐다.

김효정 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술의 발달, 전통적 가족 개념의 해체 등으로 교제 폭력을 가정폭력과 구분지어 처리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게 현재 상황"이라면서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한 동등한 피해자 지원이라는 미래 지향적 방향을 잡되 예산 부족 등 구체적 사안을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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