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위급한 산모가 분만실 돌다 사망하는 일 터질 것”

조백건 기자 2024. 5. 16.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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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식 분만병의원협회장 인터뷰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장이 서울 장안동 린여성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장은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소수 의사들도 대부분 (비급여 항목이 꽤 있는) 난임 등을 하려고 하지, 분만을 하는 산과를 전공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산과 붕괴라고 규정하는 이유가 뭔가.

“아기 받을 의료진과 병원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여성 전문병원이자 한때 분만 수가 가장 많았던 서울의 제일병원도 3년 전 폐업했다. 산과 의사만 없는 게 아니다. 1952년부터 조산사(분만 전문 간호사)를 양성해오던 부산의 일신기독병원도 올해 분만을 중단하면서 조산사 배출이 끊겼다.”

-분만 병원 상황은.

“규모와 상관없이 아기를 받을 수 있는 분만 병원은 서울에도 44곳밖에 없다. 전국엔 400곳 정도다. 일본은 3000여 곳이다. 인구 등을 따진 국내 최소 분만 병원 수는 700곳 정도인데 이미 10년 전에 그 선이 무너졌다.”

그래픽=이철원

-외국과 비교해 분만 수가가 낮은가.

“우리나라 제왕절개 시술 한 건당 수가는 300만원 정도다. 미국 제왕절개 분만비(약 2200만원)의 15% 이하, 일본(약 700만원)의 절반 밑이다. 국내 분만 수가는 수십 년 전 거의 그대로다.”

-산과 관련 소송 상황은.

“최근 3년간 분만 사고에 대해 10억원이 넘는 배상 판결이 나오고 있다. 평생 분만해도 한 번 소송 걸리면 모든 걸 잃게 되니 산과를 더 기피한다. 더구나 산과는 다른 과에 비해 투입 비용도 월등히 많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어떤 비용을 말하나.

“산과 병원을 차리려면 최소 30억원이 든다. 다른 과는 5억원 안팎인 경우가 많다. 산과는 24시간 운영해야 해서 인건비도 많이 든다. 또 분만실, 신생아실, 수술실, 병실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개원을 하려 해도 병원 최소 면적이 500평(1652㎡)은 돼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소송 한 번이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저출산이 가장 근본 원인 아닌가.

“아니다. 저출산이 심각하지만 분명 산과를 하려는 의사는 있다. 이들이 산과 전공을 포기하게 만드는 소송·수가 문제가 더 근본적 원인이다. 그래서 출산 감소세 이상으로 분만 병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성명 발표와 회견은 왜 하려고 하나.

“지금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산모와 아기가 너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해관계가 다른 개원의와 대학교수들이 모이겠나. 이대로 몇 년 더 가면 국내 분만 병원은 100~200개만 남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 ‘도쿄 임신부 사망 사건’(2008년), 강원도 ‘인제 여군(女軍) 중위 사망 사건’(2013년) 같은 참사가 연이어 터질 수 있다.”

도쿄 임신부 사망 사건은 구토 증세를 보이던 도쿄의 한 임신부가 인근 병원 7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숨진 사건이다. 인제 여군 중위 사망 사건도 당시 산부인과가 없던 강원도 인제의 부대에 근무하던 이신애(임신 7개월) 중위가 임신성 고혈압으로 쓰러져 사망한 사건이다.

-의대 증원이 되면 나아지지 않나.

“의대 증원을 한다 해도 이들이 현장에 나올 때까진 10년 이상 걸린다. 당장 할 수 있는 대책부터 빨리 시행해야 한다.”

-어떤 걸 해야 하나.

“응급 질환에 대비한 ‘전문의 수술팀’을 주요 대형 병원별로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전문의로 구성된 뇌혈관 수술팀, 심혈관 수술팀, 응급 처치팀, 소아과 수술팀, 산과 수술팀 등을 당장 만들고 이들이 사용할 예비 병상을 비워놓게 해야 한다. 또 이런 응급 수술팀이 있는 병원이 어디인지를 바로 알 수 있는 인터넷 지도도 만들어야 한다.”

-의사들이 피부 미용으로 몰리는데.

“비급여가 많아 소득이 괜찮고, 위험 부담도 낮기 때문이다. 사람 살리는 바이털(생명) 의사들 입에서 ‘우리는 점 빼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말이 더는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전공의·전문의·전임의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을 ‘일반의’라고 한다. ‘전공의’는 의대 졸업 후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종합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한다. 레지던트를 거친 뒤 특정 분과에서 자격을 인정받으면 ‘전문의’가 된다. 이후 대형 병원에서 1~2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전임의’(펠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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