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어린이들은 행복한가?

경기일보 2024. 5.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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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前 고려대 연구교수

열 살짜리 한 소년이 있었다. 평소 아이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미술가가 어느 날 환등기를 선물했다. 환등기는 재밌고 신기한 놀잇감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년을 문학과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 아이는 자라나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고 국내 최초의 어린이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바로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이다. 그는 “짓밟히고 학대받고 쓸쓸하게 자라는 어린 혼을 구원하자”고 외치며 어린이의 인권에 대해 강조했다.

며칠 전 102회째 어린이날이 지나갔다. 100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들은 행복한가?

유엔아동권리선언에 따르면 ‘인류는 아동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로는 생존의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계 곳곳에서 아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자살 테러로 어린이들이 희생됐다. 지난달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치명상을 입은 엄마의 배 속에서 응급수술로 태어난 팔레스타인 아기가 나흘 만에 숨졌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고난의 행군 때보다 살기가 힘들다는 북한에서는 아이들이 영양결핍과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은 39분마다 한 명씩 자살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자살률 1위다. 아동·청소년 자살률 역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과도한 학업스트레스와 학교폭력, 부모의 폭력 및 방임 속에서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자살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의대 진학반을 별도로 만드는 등 한국의 사교육 과잉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75.5%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중 47%가 방과 후 사교육이 ‘지옥’이라고 느낀다. 창의성이나 개성을 발현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점수로 서열화된 대학입시라는 한방향만 보고 내달리는 등 떠밀리고 있는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OECD 최하위권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1931년 33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 방정환 선생의 마지막 유언은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였다. 마음과 정신이 아픈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방정환 선생은 ‘뛰노는 생명의 힘’을 강조했다. 아동권리 중 하나인 ‘문화 및 놀이권’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한다. 아이들은 볼이 빨개지고 숨이 찰 정도로 맘껏 뛰어놀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인공지능(AI), 로봇, 챗GPT, 드론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 세상에서 획일화되고 입시에 최적화된 시험기계로 전락한다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경쟁력이 저하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클릭 한 번이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정보와 지식을 검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바로 ‘창의성’이다. 그리고 창의성의 원천은 ‘깊은 사고력’과 ‘질문하는 힘’에서 나온다. 아이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나 체험 등을 통해 ‘상상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는 창의성과 다양성, 포용성, 그리고 협동심을 배울 수 있다. 끊임없이 성과를 향해 질주해야 하는 무한경쟁의 사회는 개인의 온전성을 파괴하고 피로도와 불행감을 높인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일상에 스며든 문화예술은 삶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과 건강하게 소통하며 충만한 존재로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는 나침반 기능을 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는 친구이자 좋은 놀이터가 돼주는 것, 이것이 어린이박물관의 존재 이유다. 주말이라도 아이의 손을 잡고 학원이 아닌 박물관으로 발걸음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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