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죽어 떠나는 방식
어릴 적 고향 마을에는 상사(喪事)가 잦았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 의료마저 끔찍이도 부실한 결과였다. 그 시절 언젠가 동네 어른 한 분이 돌아가시려 한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그 집으로 몰려갔다. 상갓집만 생기면 또르르 구경 가곤 하던 나도 함께였다. 마을의 장로(長老)가 죽어가는 사람의 콧구멍 앞에 솜을 놓고 움직임을 살폈다. 솜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자 숨이 멎었다는 판정을 내렸다. 사잣밥(使者밥)이 차려지고, 장로는 지붕으로 올라가 평소 입던 사자(死者)의 옷을 흔들며 구천(九天)을 향해 ‘고(皐) 아무개 복(復)! 복! 복!’ 세 번 외치는 초혼(招魂) 의식을 행했다. 몸에서 빠져나간 혼을 되돌리려는 외침이지만, 사자가 살아날 리는 없었다. 그 시각부터 여인네들의 구슬픈 곡소리와 넋두리가 쏟아지면서 복잡한 장례 절차들은 진행되었다.
십수년 전 고향 아주머니의 병문안차 들른 지역 의료원. 보호자도 없이 온몸에 주사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누워 계셨다. 얼음장 같은 손, 눈은 감은 채였다. 그런 ‘의미 없는’ 상태로 몇 달을 지낸 육신에 삶의 끝자락을 삼키고 있는 사신(死神)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다음 날 사망 선고를 받았고, 고향에 매장되셨다.
가정 의례 준칙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래전 고향 마을에서 목격하던 죽음과 장례식은 이미 사라졌다. 이제 시골 사람들도 대개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고 영안실에서 이승을 떠난다. 나는 시끌벅적하던 상갓집 풍경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다.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까. 깨끗하고 조용하며 담담한 분위기의 빈소가 생경하기만 하다. 무거운 상복으로 갈아입었을 뿐 평온한 모습의 상주와 상제들을 슬픈 표정으로 대하기도 어색하다. 온라인 부고장에 적힌 상주의 계좌번호 또한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의 메시지로 읽혀,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주춤거려지기 일쑤다.
시대는 바뀌었다. 철학이나 가치관, 풍속은 변화의 물결 속에 원래 모습을 유지할 수 없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 삶의 양식이 새로워졌는데, ‘죽어 떠나는 방식’인들 옛것에 얽매여 고집스레 붙잡을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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