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하다 죽을 순 없다! 통쾌한 아줌마 수다에 “까르르”

이태훈 기자 2024. 5. 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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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창작 뮤지컬 ‘다시, 봄’
무대 위 7명의 중년 여배우들은 망가지는 것도 마다 않고 온몸을 내던져 춤추고 노래하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서울시뮤지컬단 창작 뮤지컬 ‘다시, 봄’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LG 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다시, 봄’의 객석은 화기애애하다. 20~30대 젊은 층 위주인 여타 뮤지컬과 달리 중년 여성끼리, 혹은 중년 여성과 가족이 함께 온 관객이 많다. 극장 분위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무대 위 노래와 극의 흐름에 따라 “어머, 어머!” “아이고, 저걸 어째?” 같은 추임새가 객석에서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15일 공연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관객 통계에 따르면, 이 뮤지컬은 여성 관객이 87.7%로 절대 다수. 40대 이상이 10명 중 7명꼴(68.5%)인데, 이 중 50대 이상은 38.9%에 달한다. 드라마 등으로 낯익은 예지원과 황석정 외엔 이렇다 할 스타도 없고, 실제 중년 여성 배우들이 출연하는데도 객석 점유율은 매회 매진에 가깝다. 뮤지컬의 부제는 ‘왁자지껄 수다 뮤지컬’. 유쾌하고 시원시원하다.

‘100세 시대’라는 요즘, 쉰 살 안팎의 여고 동창 일곱 명이 함께 떠난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오랜만에 가족 뒷바라지 걱정 없이 떠난 여행, 신나게 놀았는데 그만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지는 사고가 난다. 그리고 ‘(저승)사자’라는 인물이 찾아와 말한다. “여러분 중에 딱 한 명만 데려가러 왔어요. 명부가 비에 젖어서 이름을 알 수가 없네요. 살아온 반백 년 말고, 앞으로 반백 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얘기해주시면 누군지 가려내겠습니다.” 멍석 깔고 마이크를 쥐여주니 와글와글 ‘아줌마 수다’가 시작된다. 애틋하고 서글펐던 지난 시간들, 남은 인생 계획 이야기가 노래로 풀려나온다.

바로 곁에서 누구나 겪는 일상 밀착형 이야기의 친근함이 매력 포인트. 무대 위 여성 배우들이 앞뒤 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질러줄 때 느껴지는 묘하게 시원한 쾌감이 있다. “남편과 아이들 챙기다 어느새 반백 년, 이러다 묘비명에 ‘밥만 하다 죽었다’ 새길 참”이라고 하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다가 “나이 들어도 큰일이다. 무뎌지지 않고 외롭다”고 하면 객석 여기저기 공감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음악도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잘 짜 넣었다. 여행 와서도 세탁소 맡긴 아들 옷 챙기느라 티격태격할 땐 신나는 록 음악으로, 남편과 시댁에 얽힌 속 터지는 이야기는 블루스나 재즈로 분위기를 살린다. 갱년기 짜증에다, 직장 생활에서 그 나이대에 겪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털어 놓을 땐 헤비메탈로 몰아치다가, 비혼 독신 여성이 느낄 수 있는 불안과 외로움은 서정적인 가곡풍으로 풀어낸다. 일부러 과장된 몸짓의 슬랩스틱 코미디도 귀엽다.

마지막 노래가 흐를 즈음엔 객석 여기저기 훌쩍훌쩍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때론 길을 잃을 때도 있었지 /언젠 그럴 때 없었나 /그래도 잘 버티며 살았지 /인생이 내 뺨을 때려도 /오래된 와인 익어가듯 /우리 인생 깊어지네.’ 전석 5만원, 공연은 내달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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