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의 한글화 이슈 부상에 유감 [최수문 기자의 트래블로그]

최수문기자 기자 2024. 5. 16.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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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동십자각 현재 모습. 원래 이어져 있던 경복궁 담장과 끊어져 섬처럼 돼 있다. 최수문 기자
경복궁 서십자각은 아예 없어지고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최수문 기자
[서울경제]

문화재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이 서울 경복궁의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다시 쓰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유 장관이 궁궐 이슈에 대해 공식적으로 내놓은 사실상 첫 정책안이다. 다만 현재 복잡다난한 궁궐의 복원과 활용 문제를 앞에 두고 이런 광화문 현판의 한글화가 가장 주요한 이슈인지는 의문이다.

경복궁 입장권을 받는 흥례문을 들어서면 한쪽 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안내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 안내판에는 두 개의 경복궁 도면이 있는 데 아래는 현재의 경복궁, 위는 조선 고종 때 경복궁 중건으로 완전했을 때의 경복궁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경복궁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이런 도면을 근거로 2045년까지 경복궁을 복원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2010년 끝난 1차 복원사업으로 원래의 25% 수준이 완료됐고 이에 더해 2045년까지 2차 복원사업으로 원래의 41%를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복궁의 과거와 현재를 알리는 안내판. 위쪽은 고종 시기 중건 직후 모습이고 아래는 현재 모습이다. 현재 복원된 건물은 대략 25% 수준이다. 최수문 기자

물론 이러한 복원 계획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매년 한두 건물을 짓고 있지만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공사비가 많이 들지만 예산과 인력을 늘 부족하다. 완공후 내부 활용없이 그냥 외관 구경만 하는 건물을 계속 지어야 하는지 당위성도 논란이다.

그래도 경복궁의 완전체는 필요하다. 이는 동아시아 전통사회 이미지 경쟁에서의 자존심과도 관련돼 있다. 예를 들어 경복궁을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쯔진청)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대략 ‘자금성은 크고 멋있다, 하지만 경복궁은 그러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궁궐이 자리잡은 규모를 보자. 자금성의 면적은 72만㎡, 경복궁은 43만㎡이다. 경복궁은 자금성의 60%나 된다. 즉 양국의 국토와 인구를 봤을때 경복궁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전통시기 북경성 둘레(내성 기준)는 23.3㎞, 한양도성은 18.6㎞다.)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모습. 건물로 빽빽하다. 최수문 기자

그렇지만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개 자금성이 경복궁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고 느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경복궁에 복원된 건물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자금성에는 크고 웅장한 건물들이 가득차 있다.

이외에 경복궁에는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 대형 주차장 등의 별도 용도 건물이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어 경복궁이라는 볼거리를 크게 줄이고 있다. 이들을 외부로 이전해야 경복궁이 완전해진다.

그나마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월대가 수년간의 노력 끝에 지난해 10월 완공됐다. 혹자는 월대를 덕분에 광화문이 완전한 모습을 찾았다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광화문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동·서십자각의 복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로를 넓힌다며 트윈트리타워 앞의 ‘동십자각’은 경복궁 궁장(담장)에서 잘려 섬처럼 남아 있고 정부서울청사 앞 ‘서십자각’은 아예 사라지고 흔적을 알리는 표지석 뿐이다. 모두 일제강점기 때의 만행인 데 이후 100년간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금 경복궁 광화문은 양팔이 잘린 불구(不具)의 모습이다. 동·서십자각이 없이는 광화문은 물론이고 경복궁도 완전하지 않다.

627돌 세종대왕 나신 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14일 오후 경복궁 수정전 앞 마당에서 '세종 이도 탄신 하례연'이 진행중이다. 수정전은 세종때 한글(훈민정음)을 연구하던 집현전이 있던 자리다. 연합뉴스

이러한 가운데 지난 5월 14일 광화문 현판의 한글화 논의 필요 주장이 터져 나왔다. 당일 유인촌 장관의 코멘트를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아까 한글학회장님과 많은 학자분들이 경복궁 정문의 광화문 (현판)이 왜 한글로 쓰이지 않았는지 짧은 시간이지만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당연히 한글로 쓰여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증을 거쳐 옛날 씌어졌던 현판을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다시 한번 (논의에) 불을 지펴 보겠습니다. 뭐가 됐든 ···” 이 언급은 물론 예고된 공식 축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당일 행사가 15일의 세종대왕 나신 날을 하루 앞둔 ‘세종 이도 탄신 하례연’이었듯이 한글(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을 기리는 행사였다. 이에 따라 한글 관련 단체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유 장관의 언급에는 그들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주요 참석자는 김주원 한글학회장, 이찬규 국어학회장, 김덕호 국어문화원연합회장, 김미형 공공언어학회장,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 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장소원 국립국어원장, 김영운 국립국악원장 등이다.

1968년 내걸린 한글 광화문 현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라고 한다. 연합뉴스
2010년 내걸린 한자 광화문 현판. 연합뉴스
지난해 10월부터 현재 걸려 있는 광화문 현판. 서울경제DB

앞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년간 돌무더기로 버려져 있던 광화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68년 복원됐다. 다만 원래와 다른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에, 바라보는 방향도 달랐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한글 ‘광화문’ 세 글자가 적힌 현판을 내걸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광화문 재건축 계획이 나왔고 결국 2003년 기존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고 원래의 위치에 석축 위 목조 광화문을 세운 후 2010년 공개했다. 이때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門化光’이 적혔다.

남아 있는 사진 및 다른 건물과 색깔이 틀리다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되면서 이번에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로 지난해 10월 교체됐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판이다.

지난해 10월 15일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 다섯번째부터 유인촌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5일 새로운 현판 교체 행사 때는 유인촌 장관도 참석해 축사를 했었다. 그런데 겨우 7개월 만에 뒤집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20여년 간 논란이 됐다 ‘뭐가 됐든’ 정리된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유적·유물에 대한 정의도 문제다. 유적이나 유물은 현재 남아 있는 그대로의 보존이 원칙이다. 경복궁은 1395년 창건돼 약 200년간 사용되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일본군의 침입으로 불탔다. 이후 폐허 상태로 남아 있다가 19세기말 고종 때에야 복원(중건)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종 때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전과는 달랐던 모양으로, 그래서 ‘경복궁 중건’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고종은 이른바 아관파천 전인 1896년까지 경복궁을 사용했다. 결국 문화재로 봤을 때 경복궁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사용되던 때로 복원하겠다는 것이 이제까지 정부의 원칙이었다. 문화재청이 안내하고 있는 경복궁의 공식적인 복원 기준 시기는 “고종 시기 중건(1888년) 이후부터 궁궐로서 의미를 상실한 공원화(1907) 이전까지”다. 당시에 현판은 당연히 한자였다.

경북궁의 광화문과 월대 모습. 최수문 기자

한글 현판을 요구하는 이유들이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상징인 한글을 역시 상징인 광화문에 붙이자는 것이다. 최근 흥미로운 주장도 제기됐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데 한자 현판이 오해를 부른다는 것이다. ‘중국 아니냐’라는 식이란다.

물론 이것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북아시아 대부분에서는 한자를 사용했고 이것을 모르는 세계인은 없다. 만약 정부나 학계에서 광화문을 특별하게 대우 하고 싶으면 세계에서 유일한 ‘광화문 월대’를 부각 시키면 될 것이다. 어디 나라에나 있는 대문 현판이 아니고 말이다. 월대는 창덕궁 돈화문과 덕수궁 대한문에도 있는 한국 고유의 국가유산이다. 이런 형식의 월대는 중국이나 일본 등에는 없다.

창덕궁의 돈화문과 월대의 모습. 돈화문 월대는 조선 후기 만들어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최수문 기자

당시 유 장관은 경복궁 복원 방향성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의 언급은 이렇다. “아까 이 자리 들어오자마자 말씀하셨듯 ‘왜 궁궐(경복궁)을 고종 시대 궁궐로 복원하게 했느나’, ‘조선 500년 역사 가운데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던 세종 시대로 복원했으면 좋겠다’ 는 그 의견도 100% 동감합니다. 그 의견도 그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복궁은 복잡다난한 역사를 겪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화려했을 때를 기준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 다만 자료가 없는 것이 문제다. 임진왜란 전의 경복궁 기록은 실록 등에 나오는 언급 뿐이다. 도면도 없다. 조선 500여년 동안 경복궁은 부서졌다가 재건되기를 반복했다. 특정한 시기를 표준으로 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 장관의 언급 중에 ‘세종 시기가 태평성대였다’는 것도 논란을 키울 수 있다. ‘세종 시기가 태평성대가 아니었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세종 이도라는 지배계급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종 때 만들어진 것은 보존하고 연산군 때 건물은 보존하지 말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 경복궁이라는 국가유산은 극소수의 지배계급이 만들자 해서가 아닌 수많은 피지배계급, 백성들의 피땀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산으로서 보존의 가치가 있다.

지금 서울에는 5대 궁궐이 있는데 모두 일제강점기 훼손되기 전인 대한제국 시기의 상태로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복궁 또는 경복궁 내 특정 부문만 세종 시기로 복원한다면 다른 궁궐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여기에다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쓴다면 돈화문(창덕궁), 흥화문(창경궁), 대한문(덕수궁) 등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문제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지난 5월 10일 서울역 공항철도역 입구에 마련된 국가유산 디지털 홍보관 개관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오는 17일 ‘국가유산청’으로 체제를 바꾼다. 연합뉴스

현재 경복궁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오는 5월 17일 거듭난다. 새로운 국가유산청은 문화재(국가유산)에 대해 ‘규제’보다는 ‘서비스’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쉽게는 지난 5월 14일 문화체육관광부의 경복궁 수정전 앞 행사는 그냥 5월의 땡볕에서 진행됐다. 왜 그늘막이라도 치지 않을까 궁금했는 데 문화재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이의 설치가 불허됐다고 한다. 또 경복궁 등 궁궐 내에서는 야외에서도 음식물 섭취를 금지당하고 있다. 청결 때문이라고 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불편을 제기하는 이슈다.

최수문기자 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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