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의 물건만담] ‘스위스 시계’ 구한 이민자… 중요한 건 혈통인가 정신인가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2024. 5. 1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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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시계 산업
일러스트=이철원

올해 4월 스위스 앙시의 시계 공장에서 제롬을 만났다. 매년 제네바에서 고급 시계 박람회가 열린다. 제롬은 때맞춰 잡힌 시계 공장 견학 응대 담당자였다. 제롬은 위블로라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얼굴이 까만 아시아인이었지만 동양계 서양인에게 대뜸 출신을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제롬에게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둘 다 완벽한 최고의 안내자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스위스 시계 전통의 계승이기도 했다. 그 전통이란 이민자의 활약이다.

제롬이 일하는 위블로 역시 이민자가 발전시켰다. 위블로는 스위스 고급 시계 중 역사가 짧은 편이다. 이 역사 짧은 브랜드가 유명해진 결정적 계기는 위블로 전 CEO 장 클로드 비버다. 비버는 21세기 최고의 시계 마케터로 손꼽혀 비버의 마케팅이 경영대학원 사례로도 쓰였다. 위블로는 그의 마케팅 역량 덕에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비버 역시 위블로의 대성공에 힘입어 모그룹인 LVMH의 시계 부문 총괄까지 갔다. 그는 룩셈부르크계 이민자다.

장 클로드 비버 마케팅의 또 다른 대표 사례가 오메가다. 007은 1995년작 ‘골든 아이’부터 최신작 ‘노 타임 투 다이’까지 계속 오메가를 차고 나온다. ‘골든 아이’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이 찬 푸른색 다이얼 손목시계가 비버가 총괄한 오메가와 007의 계약 결과물이다. 그 시계가 엄청나게 많이 팔리며 오메가가 한번 더 유명해진다. 그 오메가를 재건한 사람 역시 이민자다. 니컬러스 하이에크, 스와치그룹의 창시자다. 그는 레바논계 이민자다.

이런 사실이 스위스 시계 산업을 흥미롭게 만든다. 스위스 시계는 초콜릿, 치즈, 정밀 기계, 금융 등과 함께 스위스를 대표하는 산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위스 시계 산업의 스타 플레이어 중에는 이민자가 많다. 스위스 시계 산업은 폐쇄성이 강한 동시에 인재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스위스 시계 공장 현장에 가 보면 비백인이나 여성 시계공도 많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길게 돌아보면 스위스 시계 자체가 이민자 산업이다. 시계공이라는 직군은 마을의 교회 종탑 시계를 손보는 설비 관리인 개념으로 출발했다. 시계공 중에는 프랑스의 개신교도인 위그노가 많았다. 1685년 프랑스 내 종교 자유를 용인하는 낭트 칙령이 폐지되어 위그노들은 마을을 떠나야 했다. 위그노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던 스위스로 들어와 제네바에서도 멀리 떨어진 유라 산맥 골짜기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스위스 시계 클러스터의 시초다. 주요 스위스 시계 공장들이 여전히 여기 있다.

평온해보이는 모습과 달리 스위스 시계 업계는 계속 위기였다. 그 위기를 구한 사람도 이민자였다. 1970년대 이후 스위스 시계 산업은 ‘쿼츠 혁명’의 직격타를 맞는다. 일본이 더 싸고 정확한 쿼츠 무브먼트 손목시계를 보급하며 스위스 시계 제조업은 전체 근로자의 70%가 해고될 정도로 궤멸한다. 이때 선진 경영 모델과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업계를 되살린 사람이 니컬러스 하이에크다. 스위스 시계가 가진 마케팅적 잠재력에 인생을 걸어 성공시킨 사람이 장 클로드 비버다.

이민자가 스위스 대표 산업을 지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남긴다. 국가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국가다움은 누가 지켜야 하나? 국가의 ‘혈통’을 가진 사람인가? 혈통의 정의는 무엇인가? 국가다움은 혈통의 문제인가 정신의 문제인가? 21세기는 이런 질문이 점차 복잡해지는 시대다. 이에 대해 수준 높은 합의가 이루어져야 가장 귀한 재화인 인재가 모인다. 인재의 근간인 출산이 줄어드는 현대 한국 역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왔다.

스위스는 이민이 어려운 나라라고 알려졌으나 자격이 증명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통 스위스 영주권 취득에 5년 정도 걸리는데, 어느 일본 시계 제조자는 능력을 인정받아 3개월 만에 영주권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해준 제롬과도 취재 막판엔 친해져서 사담을 나눴다. 그는 아버지 때 건너온 필리핀계 스위스인 2세라고 했다. 제네바의 맛있는 식당에 다니는 게 삶의 낙이고, 최근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스위스스러움’이 이어지는 풍경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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