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남녀의 다름을 아는 일

기자 2024. 5. 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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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잡이’ 인간의 진화적 본성은 걷는 쪽일까, 아니면 뛰는 쪽일까?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포유동물보다 훌륭한 냉장용 땀샘을 진화시킨 인간은 오래 걸을 수 있다. 과거 시험에 응시하고자 길을 나선 선비는 하루 100리를 걸었다고 한다. 약 40㎞다. 현대 인간은 많은 시간을 앉아 지낸다. 그러다 불현듯 한 치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러닝머신 위에서 쳇바퀴 돌 듯 뛰면서 땀을 흘리고 만족스러워한다.

야생에 사는 그 어떤 동물도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진 않는다. 우리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은 인간 역사의 최근 발명품일 수밖에 없다. 좌식 생활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운동하면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리 몸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기관인 근육을 주로 쓰는 운동을 하면 근육의 미토콘드리아 양이 늘어난다.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생산 공장이니 당연한 결과이다. 아마 산소를 들이켜는 폐의 용량도 커질 것이다. 근육에 공급할 혈액의 양도 늘어야 하므로 심장도 더 힘차게 뛰어야 한다. 운동은 이렇듯 신체 모든 기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미국 대학과 병원 공동 연구팀을 이끄는 스탠퍼드대 말레네 린드홀름은 암컷과 수컷 쥐를 8주 동안 트레드밀 위에서 운동시킨 후 19가지 조직에서 이뤄진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활성을 조사했다. 근육이나 심장에서의 변화는 예상한 대로였다. 우리 몸 가운데 자리한 간은 여러 조직에 포도당과 케톤, 지방산 등 영양소를 운반하는 대사의 핵심 장소다. 운동 시간이 길어질수록 간에서도 미토콘드리아 활성이 늘었다.

하지만 린드홀름은 예상치 못한 기관인 대장과 지방 그리고 부신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장에서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이 늘어난 일은 놀랍지만 정작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장내 세균과 관련되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지방과 부신의 동태는 성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8주 운동 후 피하지방 무게는 수컷 쥐에서만 줄었다. 반면 암컷의 지방 조직은 완고했다. 일반 포유동물뿐만 아니라 대형 영장류 동물들과 비교해도 인간은 지방을 상당히 많이 저장하는 편이고 여성은 더욱 그렇다. 생식이나 수유 활동하는 데 쓰도록 지방을 저장해온 인간 여성의 진화적 역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반대로 부신의 경우에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발현이 여성에서만 줄었다. 그건 또 무슨 뜻일까?

부신은 2㎝ 크기의 콩팥 위 조직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주도한다. 진화학자들이 투쟁-도피(fight-flight)라 이름한 이 스트레스 반응은 동물의 생존에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으슥한 산길에서 늑대만 한 개를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뇌에서 내려온 신호에 즉각 반응하여 부신은 호르몬을 내보낸다. 부신 겉쪽은 아드레날린을, 안쪽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어 혈액으로 내보낸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동자가 커지고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깨서 포도당을 만들 채비를 마쳐야 한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숲에서 살 때는 이런 반응이 꼭 필요했겠지만 지금은 그때만 한 긴박성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질문은 남는다. 왜 이런 반응은 암컷 쥐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났을까? 임신과 출산에 뒤따르는 스트레스의 크기가 암컷에게 과도한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지만 지레짐작할 일은 아니다.

이런 남녀의 성 차이는 운동뿐 아니라 약물 효능에서도 나타난다. 남성보다 지방 저장 비율이 높아 지방에 잘 녹는 약물은 여성의 몸에 더 오래 남는다. 졸피뎀 같은 수면제가 바로 그런 약물이다. 그러므로 같은 조건이라면 여성의 졸피뎀 투여량을 줄여야 한다. 자궁을 수축하는 약물 또는 임신한 여성의 입덧을 줄이는 약물은 특히 한쪽 성에게만 적용된다. 그러므로 동물 실험을 할 때는 수컷뿐만 아니라 암컷도 포함해야 하고 호르몬의 종류와 양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약물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 지금은 국내 시장에서 시판이 중단된 위장관 치료제 시사프라이드를 예로 들어보자. 심장이 수축한 다음 이완을 마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나타내는 QT 간격은 대개 여성에게서 더 길다. 그래서 시사프라이드처럼 QT 간격을 늘리는 약물은 여성의 심장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감기약이나 위장약처럼 처방 없이 얻을 수 있는 약물에 그런 부작용이 있다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녀는 다르다. 그 다름을 아는 일이 곧 과학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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