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존재들의 이야기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5. 15. 18: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청각장애가 있는 멤버들이 뭉친 아이돌 그룹 빅오션. 지난달 20일 ‘쇼 음악중심’으로 데뷔해 화제를 모았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유지민 | 서울 문정고 2학년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동경하는 대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개중에서도 예술은 인기 있는 분야다.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배우를, 미술 작품을 좋아한다면 화가를,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운동선수를 장래 희망으로 꼽는다. 평생 아이돌을 좋아하고 그들의 공연을 멀리서 가까이에서 수천번 보며 여러번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공연하는 가수는 한국에 없다시피 드물다. 여태껏 장애인이 아티스트가 되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생각조차 고정관념임을 깨달았다. 올해 4월 데뷔한 3인조 남자 아이돌 빅오션이 그 계기가 되었다.

빅오션의 멤버 김지석, 박현진, 이찬연은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그들의 데뷔곡 ‘빛’은 동명의 에이치오티(HOT)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멤버들의 목소리를 녹음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했다. 또한, 기존 ‘빛’의 안무도 수어를 이용한 동작을 넣어 빅오션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바다같이 무한한 잠재력으로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포부처럼, 그들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평생 아이돌을 동경했지만, 휠체어를 탄 아이돌은 아무도 없어 차선책으로 공연 스태프를 꿈꿨다.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중학교 1학년, 교내 방송부에 들어갔다. 지극히 비장애인 중심적인 인프라와 시스템 속에서 끝없이 좌절을 맛봤다. 휠체어를 탄 내게 주어진 일은 매우 한정적이었고, 다른 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방송부를 나오고 공연에 대한 미련을 접어버렸다. ‘작은 학교 행사에서도 이렇게 제약이 많은데, 수십배 더 큰 상업 공연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빅오션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겪은 과정은 내 경험과 매우 달랐다. 그들은 스마트 워치에서 울리는 진동으로 박자를 맞추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곡을 완성했다. 멤버들의 노력과 기술이 합쳐지니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빅오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5년 전 방송부에서 고군분투했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장애인 부원의 기준에 들어맞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했던 14살의 지민에게 전하고 싶다. 네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실패는 너의 탓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일들이 줄어드는 세상이 점점 오고 있기에 그곳에서 좌절하지 말라고.

장애인은 대중문화 소비자로서도 오랫동안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진행된 엔시티(NCT) 재현의 팬 미팅을 관람한 청각장애인 팬은 소속사 쪽에서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아 사비로 수어통역사를 고용했다. 나 역시 두달 전 어느 음악방송 녹화에 갔을 때 휠체어를 탔다는 까닭만으로 맨 뒷자리로 밀려나 무대를 관람했다. 그러나 장애인 관객들이 지치지 않고 항의하고 목소리를 내는 까닭이 있다. 불과 몇년 전, 대부분의 공연엔 제대로 된 휠체어석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공연마다 휠체어석이 없어 몇번이고 항의했던 일이 생생하다. 없던 휠체어석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끝내 휠체어석이 생기지 않아 경호원에게 안겨 일반 좌석까지 이동한 적도 있다.

그러나 장애인 관객들은 지치지 않고 지속해서 항의했다. 차츰 문제가 불거지고 비장애인 관객들도 함께 목소리를 내주었다. 그 결과, 현재 거의 모든 공연에서 휠체어석을 마련하고 별도 예매를 진행한다. 장애인도 문화를 향유하고, 생산에 참여한다는 것을 끝없이 드러내면 느리더라도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

빅오션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케이팝계의 장애인 가시화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룹의 흥망성쇠를 떠나 이러한 시도가 계속 이어져야만 장애인이 비주류 집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음악과 공연을 사랑하고,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두 입장의 한계를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예술계에 종사하는 장애인이 ‘특별하지 않은’ 날이 오길 바란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