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데장관, 와인장관 그리고 ‘피지워터 수석’ [뉴스룸에서]

이순혁 기자 2024. 5.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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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민정수석에 임명한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소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순혁 | 기획부국장

“대한민국 검사 출신 관료이다. 2008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로 명성을 떨쳤다.”

지난주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이 대통령실 민정수석에 임명됐다기에 이름을 포털에서 검색해봤다. 나무위키에 뜬 첫 설명 구절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한때 법조 출입 기자로서 ‘김주현’이란 이름에서 한명숙 전 총리 뇌물 의혹 사건을 가장 먼저 떠올리긴 했지만, 명성이라….

엠비(MB) 정부 시절 서슬 퍼렇던 검찰은 정권 관련 사안에 무척이나 열심이었다.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사건, 미네르바 사건, 피디수첩(광우병)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사건 등등. 그중에서도 한명숙 사건은 검찰 내부에서 여러 불만과 뒷말을 낳았다. 너무 무능하게 진행돼 검찰 망신을 불러왔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나 ‘검사 윤석열’의 찐동료들이랄 수 있는 특수통들의 한숨과 분노가 컸다.

그 배경에는 인사 문제가 있었다. 대검 중수부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경력이 전무한 검사(그쪽 전문용어로 ‘시골특수’)가 지역(TK)과 정권을 배경으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내려오더니, 수사를 잘 모르는 기획통 3차장과 함께 사고(무죄)를 쳤다는 것이었다. 일반 회사로 비유하자면, 지방 소매상을 상대하던 영업책임자가 본사 마케팅팀장으로, 인사부장이 마케팅본부장으로 발탁되더니 그해 장사를 죄다 말아먹은 셈이었다. 당시 마케팅본부장으로 발탁돼 ‘명성을 떨친’ 인사부장, 즉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바로 김 수석이다.(직후 특수통들로 전열을 재정비한 검찰은 한명숙 2차 사건 수사에 나섰고,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다.)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김 수석의 검찰 시절 이력을 풀어놓는 이유는, “또 검사냐”는 말로는 김 수석 발탁의 맥락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검사 때 전국 검찰청 수사 상황을 보고받아 취합해 장관에 보고하는 검찰2과(형사기획과)에 근무하며 법무부 생활을 시작한 김 수석은 검찰 인사·예산·조직을 관장하는 검찰과장과 검찰국장을 거친 ‘성골 중의 성골’ 검찰 인사행정관료다. 범죄혐의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라는 검사 업무가 아니라, 검찰 수사 상황을 장관에게 보고한 뒤 윗선 의중을 수사에 반영하거나, 인사권·예산권으로 검찰조직을 통제하고 주무르는 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검찰 2인자 자리까지 올랐단 얘기다.

실제 박근혜 정부 초기 정권의 역린과도 같았던 국정원·국방부 댓글 사건 수사 때 법무부 검찰국장으로서 수사 방해·외압 의혹 당사자로 지목됐고(윤석열 수사팀장이 징계위원회에 김 국장 참여는 부당하다며 기피신청을 냈다), 2014년 세월호 수사 때도 청와대와 황교안 장관 의중을 받들어 해경 123정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도록(혐의가 인정되면 정부 책임이 인정되기에) 광주지검 수사팀 등을 강하게 압박했다. 김 수석 취임 일주일도 안 돼 윤석열 라인이면서도 ‘윤가근 한가원’(윤석열과는 친하지만 한동훈과는 먼) 스타일로 검찰 수뇌부를 교체한 인사가 난 걸 우연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10년 전 수사 외압과 인사 불이익의 피해자였던 윤 대통령이 당시 가해자였던 김 수석을 발탁한 심정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총선 대패로 집권 3년차에 레임덕 얘기가 나오는데, 뭐로 정부 기강을 세우고 나라를 통치해나가겠는가. 문제는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행태다. ‘직언하기보다는 윗분 뜻을 잘 받드는 스타일’의 김 수석을 발탁하며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해서”(7일 브리핑)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소리 아닌가.

민심 얘기가 나오니, 한때 법무부에 돌던 김 수석 관련 민심 이야기도 떠오른다. 김 수석은 법무부 차관 시절 사무실 생수통의 생수 대신 ‘피지워터’만 마셨다고 한다. 남태평양 외딴 섬나라 피지의 비티레부섬 야카라계곡 지하 1200m에서 밀어 올려진 천연 화산암반수 상자가 정부과천청사 앞으로 배달돼 오면, 청사까지 들고 오는 건 직원들의 몫이었다. 출장 때도 피지워터는 필수 준비물이었다니, 직원들 민심이 어땠을까. 몇년 전 ‘비데 장관과 와인 장관’이란 칼럼에서 전전 정권과 전 정권의 인사 문제와 고위직들의 행태를 얘기한 바 있는데, 이젠 ‘피지워터 수석’이 그 뒤를 잇나 보다.(참고로 ‘비데 장관’께서도 현 정부에 다시 발탁돼 중책을 맡고 있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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