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기지촌 ‘성병관리소’ 철거론…아픈 역사 외면하나 [왜냐면]

한겨레 2024. 5.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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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 방치…‘국가유산기본법’ 시행 따라
‘기지촌 유산’ 역사문화적 보존가치 살펴야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이우연 기자

임성용 | 한국작가회의 양주지부·시인

경기 북부에 있는 의정부와 동두천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미군이 주둔한 지역이다. 미군이 평택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주한미군 2사단 사령부가 의정부에 있었고 동두천에는 대규모 미군기지가 자리잡았다. 특히 동두천은 도시 전체 면적의 40%가 넘는 땅을 미군이 점유했다. 동두천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지촌과 함께 살아왔다. 동두천의 역사가 곧 미군의 역사이기도 했다. 전국 40여 군데가 넘는 곳에 기지촌이 있었지만 가장 규모가 큰 동두천은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에 4000여 명에 달하는 기지촌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는 기지촌 여성들을 가리켜 이른바 ‘양공주’라고 불렀다. 기지촌 여성들은 성병에 걸리면 강제수용시설인 ‘성병관리소’에 구금당했다. 어린 나이의 소녀들과 우리의 처녀들이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나 다름없이 끌려온 경우가 많았고 강요된 성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소외되고 가난에 몰린 여성들을 기지촌에 모이게 한 배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매춘을 외화획득과 달러벌이 수단으로 삼고 ‘매춘의 정책적 장려’를 시행했다. 그러므로 미군 위안부 역할을 한 기지촌은 자연발생적인 일이라기보다 미군을 위한 정치사회적, 군사적 구조의 문제였다. 미군에게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해서 국가가 여성들의 성병 진료까지 책임지고 ‘기지촌 매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했다. 한마디로 매춘의 포주는 곧 한국 정부였다.

지난해 12월 동두천시는 ‘소요산 확대개발사업’ 계획에 따른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성병관리소가 있는 소요산 부지는 동두천시에서 이미 매입을 끝냈다. 올해 연말까지 개발조성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에 실시계획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의 보존을 주장했다. 동두천의 근현대사 관점에서 성병관리소 철거를 반대하고 역사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일관된 견해다. 하지만 동두천시에서는 ‘흉물’로 방치된 성병관리소를 그다지 성공 가능성도 없는 관광단지 조성이나 테마상권 개발의 걸림돌로 여기고 있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실시설계 이후 공사에 들어가면 성병관리소 건물을 철거할 예정”이라고 철거를 공식화했다. 이같은 철거계획은 동두천시와 담당 공무원의 무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5월17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이 바뀌고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기존의 ‘문화재보호법’을 대체하는 법령이다. 국가유산기본법에서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유산이 지역의 통합과 자긍심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지역 공동체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지정유산 또는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등록되지 아니한 국가유산 중 중요한 것을 시·도지정유산 또는 시·도등록유산 등으로 지정·등록하여 보호할 수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개발계획·개발사업이 국가유산 및 그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진단하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같은 국가유산기본법 규정에서 보듯,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은 지역의 사적 기념물로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다음 세대에게도 우리의 삶과 역사를 찾고 배우는 교육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어떤 유산이든 유무형의 모든 것은 지자체 단체장이나 행정가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시장의 의지대로, 개발론자들 입맛대로 철거한다면 그 잘못은 영영 돌이킬 수 없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동두천시는 동두천의 역사와 문화를 잇고 향유하는 공간으로 성병관리소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방적 철거는 역사에 저지르는 악행이다. 동두천시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성병관리소를 철거할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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