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복' 터진 말레이시아…인텔 "첨단패키징 20兆 투자"

김우섭/황정수 2024. 5. 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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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실리콘밸리'로 부상한 말레이
'거대한 공사장' 페낭
마이크론·인피니언 등 글로벌 기업 공장 건설
< 말레이 성장의 상징…세계 2위 마천루 ‘메르데카118’ > 말레이시아가 ‘동남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금액이 2년 새 6배로 늘면서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의 ‘스카이 라인’도 매년 달라지고 있다. 올해 1월 완공된 메르데카118 빌딩은 세계에서 두 번째(679m)로 높은 마천루다. /AFP연합뉴스


말레이시아 북서부에 있는 페낭은 ‘동남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해상 교역로인 말라카 해협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각국의 첨단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앞다퉈 페낭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페낭주(州)의 외국인직접투자(FDI) 금액은 2022년 163억링깃(4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720억링깃(20조8000억원)으로 네 배 이상 늘었다. 이곳에선 인텔이 반도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중국의 바이톤이 전기차 제조시설을 건설 중인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다. AK 총 인텔 말레이시아 총괄부사장은 지난 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32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말레이시아를 인텔의 핵심 생산 거점 중 하나로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마이크론 둥지 틀어…동남아 실리콘밸리로 떠올라

인텔이 말레이시아 페낭 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3차원 첨단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페낭=김우섭 기자


페낭의 바얀레파스 산업단지 내 자유무역지대에 건설 중인 인텔의 3차원(3D) 반도체 패키징 공장은 첨단 산업을 향한 말레이시아의 야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텔은 이곳에 70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투입해 EMIB(여러 개의 칩을 하나의 패키지 내에서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기술) 등 고급 패키징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 후공정 팩토리를 짓고 있다. 말레이시아 최대인 6만5961㎡ 규모 클린룸(반도체 생산을 위한 청정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미국에 깔고 있는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라인에서 생산된 칩은 페낭으로 옮겨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쓰이는 첨단 반도체로 완성된다.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빅3’ 중 하나인 미국의 마이크론도 페낭에 둥지를 틀고 있다. 지난해 두 번째 조립·테스트 공장을 지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도 말레이시아에 31억달러(약 4조원)를 투자해 생산시설을 확보했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회사인 램리서치도 페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독일의 인피니언은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제조·패키지 공장을 이곳에 지었다. 네덜란드 ASML의 주요 공급사인 뉴웨이즈 역시 올초 말레이시아 클랑에 신규 생산시설을 마련했다.

반도체산업의 주변부에서 ‘공급망 핵심’으로 부상

말레이시아는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1970년대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됐다. 인텔은 1972년 말레이시아에 반도체 조립·패키징·테스트(APT) 공장을 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도체 후공정은 단순 조립에 가까워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지역에 자리잡았다.

40년가량 반도체산업의 주변부에 불과했던 말레이시아는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여러 개의 칩을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칩렛’ 등 패키징 공정이 첨단 반도체의 성능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해지고 있다”며 “말레이시아는 이 분야에서 전후방 산업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는 데다 영어가 가능한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몰리면서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세계 6위 반도체 수출국에 올랐다. 매년 미국이 수입하는 반도체의 20%가 말레이시아에서 생산된다. 한국, 대만, 일본보다 높다. 후공정 분야에선 전 세계에서 13%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기업도 말레이시아 진출…16개→55개 급증

인텔이 말레이시아 페낭 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3차원 첨단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페낭=김우섭 기자

반도체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중국이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외에 또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말레이시아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말레이시아가 미국도 중국도 아닌 ‘제3세계’의 맹주 역할을 해왔다는 것도 이곳만의 장점이다.

중국 기업들까지 앞다퉈 말레이시아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메이드 인 말레이시아’ 제품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의 회피처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시작되기 전인 2018년 페낭에 16개였던 중국 기업은 현재 55개로 급증했다. 화웨이의 전 계열사인 엑스퓨전은 현지 업체인 네이션게이트와 제휴해 그래픽처리장치 서버 공장을 마련하고 있고, 반도체 기업인 펑스 역시 페낭주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이 같은 이점을 활용해 말레이시아 정부는 한국과 대만을 뛰어넘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자프룰 아지즈 말레이시아 투자무역산업부 장관은 올 1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는 칩 제조 공정의 프런트엔드(웨이퍼 제조 및 노광·식각 등 선공정)에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1월엔 국가 반도체 전략 태스크포스를 신설했다.

페낭=김우섭 기자/황정수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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