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보다 더 의지돼요"… 노인 소외 막는 老老돌봄
함께 한글 배우고 밥도 먹어
서로 보듬으며 삶의 애환 달래
우울증 등 치료효과 60% 달해
건강한 노인이 병든 또래 케어
노인돌봄 사회적 대안 떠올라
"설명을 들어도 자꾸 까먹어요." "괜찮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70·80대 할머니 4명이 평소처럼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에 모였다. 이들은 이날 여름을 앞두고 세상에 하나뿐인 민화 부채를 만들었다.
60대인 노외옥 민화 작가가 이날 미술지도사로 나섰다. 노 작가가 "하늘이 꼭 파랗고 땅이 검지 않아요. 하얀색 꽃도 보라색 꽃도 있어요. 마음대로 칠하시면 돼요"라고 차분하게 설명하자 '호호' 하는 웃음소리가 복지관 강의실을 채웠다. 노 작가가 "색칠을 공부하는 게 왼쪽 뇌에 좋대요. 자꾸자꾸 해봐야 치매에 걸리지 않고 좋아요"라며 독려하자 저마다 진지하게 부채에 색을 채워 나갔다.
이들 할머니 4인방은 모임 이름도 있다. '한마음 모임'. 2022년 9월 결성 당시 '모두 성격이 다르지만, 마음은 한마음'이라는 취지로 모임명을 정했다. 4명의 공통점은 사별 후 혼자 산다는 것. 서로 돕고 위로하는 게 모임의 목적이다.
떨어져 사는 자녀들보다 자주 만나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들은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다. 모임을 주도한 차성순 할머니는 "아들이 둘인데 먹고살기 바빠서 잘 못 온다. 언니들이 더 좋다"고 말했다. 이순례 할머니는 "남편을 보내고 너무 힘들었는데, 한마음 모임이 큰 위로가 됐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 빼고 모두 만난다"고 설명했다.
한마음 모임 4인방은 작년부터 복지관에서 한글 교육도 꾸준히 받고 있다. 유인숙 할머니는 "모여서 배워도 또 금세 잊어버리지만, 작년에 한글을 배우고 나선 이름 석 자와 주소도 쓸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교육을 하는 정미현 강사도 60대 여성이다. 정씨는 과거 국어 교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을 가르치고 있다. 정씨는 1980년대 교편을 잡았었는데, 당시에는 출산하면 퇴직하는 분위기여서 한동안 주부로 살았다. 그는 "학교에서 오래 일하지 못한 아쉬움을 풀 수 있어 스스로 자긍심도 높아지고 연배가 비슷하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하셔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노인 부양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노노케어'가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가 지원하는 노노케어는 노인 일자리 사업(공익형·사회서비스형·민간형)의 일환으로 건강한 노인(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은 일자리를, 독거노인은 돌봄서비스를 제공받는 사업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작년에 발간한 '초고령사회 돌봄영역 노인 일자리 사업 고도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노노케어 수혜 전후 '외로움, 우울 등 마음 상태 개선' 효과가 60.3%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돌봄을 제공하는 노인에게는 보충적 소득 보전, 사회 참여 활동을 통한 건강 증진 효과를, 돌봄을 제공받는 노인에게는 동년배와의 교류로 소외감 감소 등 정서적 측면의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노노케어는 노인 복지이면서 동시에 일자리 정책이기도 하다. 돌봄이 필요한 아픈 노인이 증가하고 있지만, 일할 여력과 의지가 있는 노인 역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5월 통계청이 조사한 고령층 인구조사에서 고령층(55~79세) 인구 1548만1000명 중 경제활동인구는 932만1000명으로, 비경제활동인구 616만1000명보다 많았다.
지난해 정부 조사에 따르면 장래 근로를 희망하는 고령층 인구 중 계속 근로를 희망하는 연령은 평균 73세까지이며, 55~79세 중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1060만2000명으로 전체의 68.5%에 달했다.
윤희숙 서울복지재단 책임연구위원은 "10년 전 85세 노인과 현재 85세 노인은 욕구와 건강 상태가 다르다"며 "노노케어 서비스의 깊이와 종류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윤 책임연구위원은 "말벗 해주기, 안부 묻기 같은 단순한 서비스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본격 간병에도 노인 인력을 활용하고 그에 걸맞은 경제적 보상을 해주면 명실상부한 노인 일자리로 기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오균 기자 /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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