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돼지법 오리법 닭법까지 만들텐가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4. 5. 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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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2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특유의 함박미소를 지으며 백악관 이스트룸으로 들어섰다.

엄연히 축산법이 있는데, 한우법, 한돈법, 닭법, 오리법이 줄줄이 나올 판이다.

옐런은 훗날 '환상적인 10년(The Fabulous Decade)'이라는 책에서 클린턴의 균형재정 정책은 미국의 사상 유례없는 경기 호황을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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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품목 과잉생산만 부추길
양곡법·농안법은 예산만 낭비
한우와 양돈 지원법까지 거론
농민 외에 소비자도 고려해야

1998년 2월 2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특유의 함박미소를 지으며 백악관 이스트룸으로 들어섰다. 그는 두툼한 매직펜을 들고 '1999회계연도 적자'라는 문구가 새겨진 검은 패널 바로 밑 하얀 바탕의 빈 공간에 '0'이라는 숫자를 크게 그려 넣었다. 미국이 30년 만에 재정적자에서 벗어나 균형재정을 이뤄냈음을 알리는 이벤트였다.

집권 6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초기엔 민주당 내부 반발이 거셌다. 1992년 1월 취임을 앞두고 불쑥 긴축재정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정적자를 줄여 균형재정을 만들어야 미국 경제도 정상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모들은 공화당에서나 주장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지만, 클린턴은 최우선 정책으로 밀어붙였다. 그동안 민주당은 재정지출 확대를, 공화당은 감세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던 관행을 깨버린 셈이다.

2024년 한국은 어떨까. 포장만 다를 뿐 여야 가리지 않고 돈잔치다. 머릿속에 '예산' 개념이 없고, 나랏돈을 효율적으로 쓰게 할 '인센티브 설계'라는 것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 개정안이다. 28일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농민은 쌀을 최대한 많이 생산할수록 이득이다. 팔리지 않고 남은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주고(양곡관리법), 가격이 기준치 아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을 정부가 보상해준다(농안법). 품질은 상관없다. 세상에 이런 보호 장치가 있을까 싶다.

농안법을 들여다보면 더 가관이다. 쌀뿐 아니라 다른 농산물 가격까지 다 보상해준다. 위원회를 만들어 548개 농산물 중에서 어떤 품목을 보상해줄지, 기준 가격은 얼마로 할지 정한다고 한다. 무슨 명목으로 마늘은 넣고 양파를 뺄지, 무슨 계산으로 기준 가격을 1000원, 5000원 매길지 궁금하다. 온갖 잡음은 불 보듯 뻔하다.

문제는 예산이다. 쌀 소비가 계속 줄어 남아도는 쌀 보관비로만 지금도 한 해 4000억원을 쓰고 있는데, 쌀 생산이 더 늘면 5000억원 이상으로 폭증한다. 창고업자가 살판나게 생겼다. 정부는 과잉 생산된 쌀을 매입하고 보관하는 비용만 한 해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차라리 쌀 생산을 줄이는 대가로 현금을 나눠주는 게 낫다. 보관 비용이라도 줄지 않겠나.

대다수 농민단체들도 반대다. 스마트농업을 비롯한 미래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망법(농업을 망칠 법안)'이라 부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우 농가를 위한 한우법을 정치권에서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양돈 업계가 들고일어섰다. 닭이나 오리를 키우는 농민들이 가만있을까. 엄연히 축산법이 있는데, 한우법, 한돈법, 닭법, 오리법이 줄줄이 나올 판이다. 농업회의소를 추진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상공회의소처럼 농민들을 위한 전국 조직을 만들자는 움직임이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 몰표를 약속받고 벌이는 일들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이 과정에서 비싼 농산물을 사 먹어야 하는 소비자는 또 온전히 뒷전인가.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은 안 보이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클린턴이 균형재정을 알리는 '0'을 그리는 옆에는 앨 고어 부통령과 재닛 옐런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이 서 있었다. 고어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잘 작동하는 정부를 만들자"는 목표로 만든 '국가성과검토단'이라는 조직을 이끌면서 힘을 보탰다. 옐런은 훗날 '환상적인 10년(The Fabulous Decade)'이라는 책에서 클린턴의 균형재정 정책은 미국의 사상 유례없는 경기 호황을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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