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억이 7억 된다" 달콤한 유혹…교수도 넋놓고 당했다

안정훈 2024. 5.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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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자신이 모은 돈과 주변 지인의 돈을 모아 투자했던 24세 여학생이 어린 나이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학생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일주일 뒤 뒤따라가셨고요." (투자 피해자 이모 씨)

피해자 대표 이 씨는 "나도 수억 원을 투자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지만, 몇 달 전 사망한 은재(가명)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공지능(AI)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해외선물과 나스닥에 ‘24시간 투자’를 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은 팝콘소프트의 대규모 사기 행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고,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를 벌인 정황만 밝혀지는 중이다. 업체 대표 중 한 명이 재판에 넘겨졌음에도 2·3차 피해가 이어져 문제라는 지적이다. 업체의 나머지 실세들이 새 회사를 만들어 같은 형태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어서다.

 "AI 자동매매로 연 600% 수익 보장"알고 보니 '폰지 사기'

15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이 모 팝콘소프트 대표를 지난 2월 검찰로 송치했다. 이 대표는 구속된 상태로 기소돼 지난 4월 24일 첫 재판을 치렀다. 수사당국은 이 대표 말고도 피해자들이 주범으로 지목한 안 모, 오 모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이 모 대표의 모습. 사진=독자 제공


이 씨는 팝콘소프트의 AI트레이딩 프로그램인 ‘더불라’를 통해 투자한다며 총 55명에게 43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팝콘소프트는 이 씨와 공범으로 추정되는 안 씨, 오 씨 등이 2022년 창업한 투자회사다. 모집책인 안 씨는 “인간은 AI를 결코 이길 수 없다”며 “이미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굴리는 AI트레이딩을 통해 선물지수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유혹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팝콘 측의 더불라에 접속하면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똑같은 화면이 제시됐다. AI를 통해 매도, 매수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팝콘소프트는 30일 투자에 116%, 90일 156%, 1년 후 617%라는 비현실적 수익률을 제시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HTS에서 잔고와 종목명, 거래량과 시세 등이 워낙 정교하게 나타나있다보니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팝콘소프트는 서울 역삼동과, 경기 성남시, 대구, 부산, 전남 순천 등 전국에 지사를 두고 세를 불렸다. 한동안 수익도 정상 지급됐다. 작년 6월부터는 정산이 멈췄고, 이후부터 고소·고발이 이어지며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한 피해자는 “팝콘소프트가 제시한 트레이딩 시스템, ‘정산을 받아 큰 돈을 손에 쥐었다’며 보여줬던 두둑한 계좌 모두 가짜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비대위가 집계한 피해자는 8000여명에 달하고, 파악된 피해액만 670억원 수준이다. 비대위 대표 이모 씨는 "현재 확보된 피해 계좌만 1만8000개 수준으로 전체 피해자 수와 피해 금액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독자 제공


이들의 사업구조는 전형적인 다단계금융사기(폰지사기) 구조였다. 팝콘소프트는 대표-본부장-팀장 등 직급을 나누고, 직급별로 수당의 차이를 두고 운영해왔다. 본지가 입수한 수익구조표에 따르면 1년 투자 기준 600% 수익을 기본 수익으로 제시 한 뒤 모집 인원이 많을수록 추가적인 수익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중앙대 동문·목회자 

피해자 상당수가 중앙대 동문이라는 점도 이번 사건의 특징이다. 간호대 동문회를 오랫동안 주도한 안 씨가 동문을 끌어들였고, 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동문을 끌어들여서다. 

유력 피의자인 안 씨가 중앙대 간호대 1기로 동문들을 투자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씨는 40년간 간호대 동창회를 주도한 인물로, 지난해까지 간호대학 동창회장으로 활동했다.

안 씨는 대학에 발전기금을 기부하고, 학부생들에게 커피와 도넛을 제공하는 행사를 열이며 동문들의 환심을 샀다. 이 외에도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는 등 활동을 진행하면서 '선한 이미지 쌓기'에 열중했다.

안씨가 강남에 위치한 사무실에 중앙대 동문을 모아 투자 설명회를 하고 있는 모습. 안 씨는 중앙대 간호학과 74학번 출신으로, 지난해까지 간호대학 동문회장을 역임했다. 팝콘소프트 투자자들 중엔 안 씨를 통해 투자하게 된 중앙대 동문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독자 제공


피해자 중에선 대학 교수와 대구의 대형교회 목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향력 있던 목사의 권유로 교인 상당수가 돈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인 교수는 최근 사망했는데, 사망 전 지인에게 “돈이 한 푼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으로 겨우 생활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팝콘에 당한 뒤 세상을 떠난 사람이 3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끊이지 않는 사기의 굴레전문가들 "사기꾼들은 고도의 지능범"

현재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팝콘소프트 사기 행각은 멈춘 상태다. 그러나 수사망에서 벗어난 임원들이 경기 용인시 등에 유사한 H업체, C업체를 차려 똑같은 사기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팝콘소프트가 돌려주지 않은 원금을 돌려줄 것이고, 수익도 내주겠다”며 현재 50억~60억원 가량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팝콘소프트의 임원들은 현재 투자자들의 투자금 일부인 1%를 투자자들에게 변제해 줬다고 한다. 팝콘소프트가 이처럼 변제를 한 이유는 피해 금액 일부 변제를 통해 향후 수사에서 사기를 칠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함이라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팝콘소프트는 투자자들이 투자한 원금의 1%를 지난해 말 변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비대위에 따르면 팝콘소프트는 임직원 등 일부 투자자에겐 투자 원금의 1%가 아닌 1000만원을 변제했다고 한다. 비대위 측은 "측근에겐 천만원 가량을 변제해주면서 자신들을 고소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사진=안정훈 기자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기범꾼들은 고도의 지능범들”이라며 “이자만이라도 지급하면 형사상 사기죄가 아니라 민사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빠져나가기 위해 일부 금액을 변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본지는 피해자들이 주범으로 지목한 안 씨, 오 씨에게 여러차례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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