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부터 유재석까지, 본인 중심으로 사람 끌어당겨 판을 짜는 예능인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4. 5. 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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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세계’이고 나영석, 홍진경일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오늘날 예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 5월 7일 있었던 제60회 백상예술대상은 많은 화제 속에 마무리됐다. 특히 예능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대중들에겐 매년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예능씬을 종합하는 거의 유일한 장이다. 작품상을 받은 MBC <태세계2>, 각각 남녀 최우수예능인상을 수상한 나영석 PD와 홍진경에 대한 주목도 당연하지만, 한 해 동안 우리네 예능이 진일보하며 만든 최신 버전 예능 지형도를 확인하고, 예능의 지향점에 관한 논의의 장으로 다시 한번 관심을 모았다.

이런 가운데 오늘날 예능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가해야 할까. 플랫폼으로는 기존 방송의 영역을 넘어섰고, 제작의 관점에서도 기존의 문법은 통하지 않고 있으며, 장르는 플랫폼의 변화에 따라 다각화되고 있다. 예능은 TV 장르 중 가장 급변하고 있는 분야이며 외연 확장이 지속·변주되면서 재미의 요소를 웃음으로 한정할 것인지 등의 장르 정체성에 관한 논의, 대중성(보편적 콘텐트)에 대한 가치판단이 가장 첨예한 분야다. 하지만, MBC <무한도전>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우리 예능의 역사는 플랫폼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진정성'의 추구라는 큰 흐름 속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정성이란 화두는 쇼의 영역에서는 극한 상황의 극적인 서사를 담은 서바이벌, 음악예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고, 주류 TV예능 문법으로 굳건히 자리한 관찰예능은 콘텐츠를 위해 인생의 일부를 담보하고 공개하는 일반인들의 연애예능으로 발전해나갔다. 가장 정통적인 예능의 영역이었던 토크쇼와 리얼버라이어티의 캐릭터쇼는 웹예능으로 넘어가 극도의 정서적 친밀감을 매개로 하는 인터넷 라이브 방송의 문법 및 정서와 융화하고 있다.

이런 집요하고도 지속적인 진정성 추구가 가져온 변화상이 이어지면서 진정성은, 프로그램 내에서 발견하거나 느끼는 것을 넘어서 제작과 기획의 과정까지, 도전, 행보라는 서사로 콘텐츠가 됐다. 그 과정에서 진정성을 담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기존의 TV예능 작법은 용도 폐기 되거나 절판되면서, 신규 예능이 나오기 어려워지고 있다. 같은 이유로 웃음에 특화된 예능선수나 순수 코미디언들의 영역이 대폭 줄어들고, 그 자리에 신선하고 매력적인 인플루언서와 비연예인(일반인)들이 화수분처럼 채워지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제작진이 깔아놓은 판 위에 인지도 높은 스타들이 숟가락 하나 들고 멋지게 밥한 숟가락 떠먹는 시대가 끝났음을 말한다. 예능이 크리에이터의 영역으로 나아간 이상, 기존 제작 방식과 같아서는 새로운 예능 패러다임의 출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핑계고>에서 누차 언급하는 유재석의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고민과 그의 도전은 인간적 성찰이란 측면에서 조명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출연자들이 말 그대로 '연기'자에 머물 수 없는 기존 분업의 시대가 저문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수상의 영광을 나눈 기안84(<태세계>), 나영석, 홍진경을 비롯해 선정된 후보들은 예능의 신 지형도를 꽤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안84는 존재 자체가 출연한 모든 콘텐츠의 기획이자 콘텐츠다. 지난 2년간 기인을 넘어서 자기다움, 나답게 잘 살고 싶은 시대적 욕망을 표현하는 시대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나혼산>과 <태세계> 그리고 자신의 채널과 여러 여행 유튜버들과의 협업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캐릭터는 말 그대로 '나답게 살기'의 상징이다. 뿐만 아니라 마라톤으로 대표되는 성장서사는 예능의 진정성을 시대정신으로 끌어올린 사례라 할 수 있다.

다소 이른 감도 있지만 나영석 PD는 지난 1년간 예능이란 장르에 가장 큰 충격을 주고 변화를 이끈 인물이다. 콘텐츠 차원을 넘어 예능 제작 차원에서 새로운 미래를 보여줬다. 제작진과 출연자의 역할과 경계를 가장 전위적으로 해체하면서, 엄청난 반향과 성과를 거뒀다. 무엇보다 십 수 년 간 성공만을 거두고 있는 스타PD가 공개적으로 인터넷방송을 배워 유튜버로 활약하는 것도 대단한데, 유튜브 제작 방식으로 TV예능을 만들고(<콩콩팥팥>), 제작사를 하나의 흥미로운 시트콤처럼 그려내며 연예인에 의존하지 않고도 재미를 뽑아내는 예능 크리에이터 집단이란 브랜딩까지 성공했다.

데뷔 30년차의 홍진경은 유재석의 평가 그대로 그 자체가 장르다. 꾸준한 방송활동을 구가하면서 <핑계고> 등에서 트렌디한 활약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여성 예능인이 메인이 되어 캐릭터쇼(<홍김동전>), 스튜디오 관찰예능(<솔로지옥>), 유튜브(<공부왕찐천재>)를 섭렵한 최초의 인물이다. 특히 <홍김동전>의 경우, 여성예능이 아닌데, 여성 MC가 메인이 되어 캐릭터쇼를 이끈 특별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 경험 이후 자신의 채널을 선후배들을 모으는 장으로 활용하면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궤를 같이 하는 변화상은 다른 후보들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다. 유재석은 <핑계고>를 통해 국민MC를 넘어서 콘텐트를 기획 총괄하는 쇼러너로 본격적으로 나서 큰 성공을 거뒀다. 탁재훈도 독보적 코미디 스타일과 신규진, 김예원 등 필승 사단을 새롭게 꾸려 자신만의 왕국을 다시금 재건했다. 침착맨은 예능의 한 가지 미래다. 진정성의 흐름은 유튜브를 넘어 스트리밍 시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마중물이라 할 수 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활동하던 예능인들에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방식에 영감을 주면서, 토크쇼의 진정성, 정서적 친밀감 등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아쉬운 인물이 이수지다. 전통적인 의미의 코미디 연기자로서 궁극의 역량을 수년째 발휘하고 있지만 과거와 달라진 관점이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 끗의 아쉬움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가치 있는 예능을 평가하는 기준은 첫째, 기존에 없던 트렌드, 패러다임을 이끌어냈는가(<핑계고>,<나는 솔로>), 둘째, 기존 포맷이나 장르를 뛰어넘는 신선함과 파장을 만들었는가(<태세계>,<더 커뮤니티>), 셋째, 독보적 세계관을 구축해 발휘하는 영향력(<최강야구>)이 강력한가 정도로 갖고 있다. 위의 기준과 그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의 경우를 종합해 봐도 출연자가 누구인가보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누구의 작품, 누구의 기획인지가 예능에서도 보다 중요해졌다. 후보는 아니지만, 받아 든 지표 이상으로 기대와 찬사를 받는 JTBC <연애남매>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방송업계의 표현에 따르자면 '쇼러너'의 역할과 위상, 웹예능의 언어를 빌리자면 간판으로 내건 크리에이터의 존재감, NBA의 최신 용어를 빌리자면 본인 중심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판을 짤 수 있는 '그래비티'가 예능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백상예술대상이 보여준 예능의 변화상은 이런 흐름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날 예능을 즐기고 평가하는 데 있어 어떤 포맷, 어디 플랫폼이냐를 떠나 사람(출연자)과 기대(시청자)를 모을 수 있는 크리에이터의 존재감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인 시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MBC, KBS,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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