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도 따른다" 오월열사 앞 항쟁정신 계승의지 뜨겁다

변재훈 기자 2024. 5. 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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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4주년 사흘 전 공휴일에도 민주묘지 참배 열기
강원 중학생들 체험학습…"불의 맞선 역사 이어갈 것"
"비극 내몬 전두환 용서 안돼" 유족들 응어리 토해내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사흘 앞둔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춘천 가정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2024.05.15. 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 기억프로젝트'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을 사흘 앞둔 15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오월영령의 넋과 뜻을 기리려는 추모 열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이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불의한 신군부의 권력 찬탈에 항거하다 장엄하게 산화한 오월영령들을 기리려는 참배 행렬이 물결을 이뤘다.

법정 공휴일인데도 참배객들은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열사의 묘역을 찾아 헌화하거나 묵념했다.

묘비 곁에 놓인 영정 사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묘비 뒤에 쓰여진 글귀를 유심히 살펴보는 참배객들도 눈에 띄었다.

묘역 곳곳에는 민주묘지관리소와 5·18기념재단 소속 문화해설사들이 단체 참배객들을 맞았다. 이들은 항쟁 배경과 경과, 열사의 사연, 최근까지의 진상 규명 과정 등에 대해 자세히 전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오월의 막내' 전재수 군,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가 된 문재학 열사의 묘지 앞에 선 참배객들은 해설에 귀를 기울이며 44년 전 아픈 민주주의 역사를 피부로 느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사흘 앞둔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한 어린이가 행방불명자 묘에 헌화하고 있다. 2024.05.15. wisdom21@newsis.com


특히 강원 춘천 춘천 가정중학교 2학년 전교생 36명은 항쟁사를 되짚어 보는 체험학습 '5·18 기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민주묘지를 찾았다. 전날부터 광주를 찾은 학생들은 오는 17일까지 주요 사적지를 직접 둘러보고 항쟁사를 공부한다.

지난 3월부터 5·18 항쟁을 배워온 학생들은 사뭇 엄숙한 표정으로 항쟁사 해설을 경청하고 열사 앞에 참배했다. 해설사에게 '최근에 찾은 행방불명자 유해는 어떻게 검증했나요' 등을 질문하기도 했다.

이번 체험학습을 마친 뒤에는 소식지를 만들어 같은 학교 1·3학년 학생들에게 항쟁의 의의와 정신적 유산을 널리 알린다.

체험학습에 참가한 강지환(14)군은 "5·18에 대해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많이 접해왔지만 이렇게 5·18항쟁의 주역들을 만나니 피부로 더욱 와닿는다. 항쟁이 우리 삶과 굉장히 가까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며 "저희 미래 후손을 위해 싸운 열사들께 더욱 감사하다. (항쟁 당시와) 비슷한 불의가 생기면 우리도 나서야 겠다는 힘을 주는 스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사흘 앞둔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춘천 가정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윤상원 열사의 삶에 대한 해설을 경청하고 있다. 2024.05.15. 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사흘 앞둔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한 일가족이 열사의 묘를 둘러보며 대화하고 있다. 2024.05.15. wisdom21@newsis.com


아버지와 함께 열사 묘를 살피던 이산(14)군도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령을 통해 독재하려던 시도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세상을 뜬 열사들의 삶을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서도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군은 추모 리본에 '피로 물든 역사'라고 적기도 했다.

묘지 곳곳에서는 맺힌 응어리를 조용히 토해내는 유족들도 있었다.

항쟁 당시 16세로 계엄군 총탄에 숨을 거둔 고 안종필 열사의 어머니 이정님(88) 여사는 뙤약볕에도 아들의 묘소 앞에 주저 앉아 한참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 여사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사진을 봤을 때 심정은 말로 다…말로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었지. 그리운 아들이 한 번은 꿈에 나와 책가방을 들고 나가면서 '나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도 했다. 보고싶은 아들은 이제 더이상 꿈에도 나오지 않더라"고 소회를 털어놨다.

시위를 나가는 아들을 더 만류하지 못했던 상황을 이야기할 때에는 눈시울을 붉히며 "엄마가 미안하다"라고만 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사흘 앞둔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내 고 윤승봉 열사의 묘소에서 동생 윤연숙씨가 참배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2024.05.15. wisdom21@newsis.com


고 윤승봉 열사의 여동생 윤연숙(70)씨는 오빠의 묘 앞 제단에 조촐한 안줏거리와 함께 소주를 올리며 비통함을 삼켰다.

윤씨는 생전 술을 즐겨 마셨던 오빠를 기리며 매년 묘소에 주인 없는 술상을 차리고 있다. 잔에 따라놓은 소주를 묘소 주변에 붓던 윤씨는 "여기 묻혀 계신 열사 가족 중 5·18 이후 화목했던 가정이 있었을까요. 단언컨데 한 가정도 없었을 겁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땅에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여기 묻힌 열사들 한 명 한 명이 피워보지도 못하고 원통하게 죽었다. 죄 지은 전두환은 죽어서도 묻히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이 많은 가정을 파탄 내고 비극으로 몰아넣은 죄는 죽어서도 씻을 수 없다"고 분노했다.

민주묘지 입구 주변에는 참배객들이 손글씨로 쓴 추모 리본이 나부꼈다. 리본에는 '5·18 희망의 등불', '나아가는 자유의 봄', '민주의 함성 5·18 희망 오늘 이어받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끝없는 행보' 등 항쟁 정신 계승을 다짐하는 글귀가 담겼다.

올해 들어 1월부터 4월까지 5·18민주묘지 참배객은 3만 9523명이다. 5월 1일부터 열흘간 방문객 수는 1만 953명으로 평소 월 평균 9800명보다 늘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사흘 앞둔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고 안종필 열사의 어머니 이정님 여사가 눈물 짓고 있다. 2024.05.15. wisdom21@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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