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술도 음미하며 천천히…기억에 남을 추억 만들죠"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4. 5. 1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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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있는 '파인 드링킹' 앞장…르챔버 바텐더 임재진·엄도환
변화하는 한국의 술문화
과거엔 취하기 위해 마셨다면
이젠 제대로 즐기자는 분위기
소중한 만남엔 절제 동반돼야
10주년 맞은 바 '르챔버'
젊은 사람들만 오는 곳 아닌
아빠가 아들이 성인 되었을때
위스키 한잔 나누는 곳 됐으면
서울 압구정에 있는 스피크이지 바 '르챔버'에서 임재진(오른쪽), 엄도환 바텐더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

술자리가 펼쳐졌으면, 취하도록 마시는 것이 덕목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술 한 잔도 품격 있게, 내 스타일에 맞게 마시는 '파인 드링킹(Fine drinking)'의 시대다.

'제대로 한잔'하는 것이 몸에도, 마음에도 부담이 적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술을 제대로 마시는 것일까? 비싼 술, 푸드 페어링, 예쁜 술잔까지 모두 갖춰야만 비로소 파인 드링킹의 최소 조건을 만족시키는 걸까?

'파인 드링킹'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해 서울 압구정에 있는 스피크이지 바 '르챔버'를 찾았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르챔버는 각각 2009년과 2010년 '디아지오 월드클래스 코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텐더인 임재진·엄도환 대표가 운영하는 바다. 두 바텐더의 뛰어난 실력과 스피크이지 바의 콘셉트를 반영한 공간 디자인까지 더해져 오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먼저, 두 바텐더는 파인 드링킹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들이 꼽은 키워드는 '기억'과 '절제'였다. 임 대표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웃으면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을 술자리가 파인 드링킹"이라고 정의했고, 엄 대표는 "절제된 행동이 동반돼야만 비로소 품격 있는 파인 드링킹"이라고 정의했는데 약간은 다르지만 어딘가 닮아 있는 답변이 인상 깊었다. '기억'할 수 있는 술자리를 위해서는 '절제'가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두 바텐더 모두 마시는 술의 가격이나 종류가 아니라 마시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두 대표는 한국의 술 문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아시아 톱50바에 8년 연속 선정돼 외국인 고객을 접하고, 해외 바텐더들과 끊임없이 소통해 온 르챔버 두 대표의 답변은 놀라웠다. 바 문화만 본다면, 어느 나라에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것처럼 매너, 스타일 등 다양한 방면으로 신경을 쓴 고객들이 바에서 여유롭게 대화하며, 칵테일의 맛과 향을 경험하는 것이 현재의 한국 바의 풍경이라는 것.

하지만 한국의 술 문화가 처음부터 현재의 모습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류 문화는 선진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엄 대표는 "예전에는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분위기였다면, 현재는 한 잔을 마셔도 제대로 즐기자는 분위기로 많이 변화했다"고 했다.

임 대표는 처음 바텐더 일을 시작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며 "반말은 기본이고, '불쇼'를 요구하는 등 바텐더라는 직업에 대한 하대가 일상이었다"며 "밤에 일하고 술 파는 사람이라고 부모님께서도 반대를 많이 하셨다"고 회상했다. 바텐더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어디를 가든 술이 가진 '알코올'이라는 측면에만 집중하는 것이 한국의 술 문화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인 드링킹을 기치로 내세운 르챔버가 등장하면서 이후 다양한 바가 생겨나고 주류에 대한 이해, 칵테일 메이킹, 그 외의 다양한 배경 지식과 드레스코드를 비롯한 호스피탈리티 등 수많은 바텐더의 노력과 함께 술 문화가 바를 중심으로 바뀌는 데 일조했다고 두 대표는 설명했다.

또한 "디아지오가 한국에서 개최하는 바텐더 경연 대회인 '월드클래스 코리아'가 바텐더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뛰어난 바 문화를 소비자들에게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월드클래스는 계속 전 세계에 드링킹 트렌드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월드클래스가 파인 드링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업계와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는 두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즐기는 방법에 대한 팁도 들어봤다. 엄 대표는 "위스키 페어링으로는 좋은 품질의 물과 견과류를 추천하고, 데킬라는 많은 이들에게 라임이 일반적이지만 오렌지도 좋은 선택"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답변을 내놨다.

임 대표의 추천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라이트한 느낌의 로랜드 위스키는 인절미가 들어간 팥빙수, 꽃과 셰리향이 감도는 하이랜드와 스페이사이드의 위스키들은 진한 맛에 식감이 좋은 육회, 바다향이 매력인 아일라와 스카이섬의 위스키는 해물파전, 굴전이 잘 어울린다"면서 "데킬라는 기름진 고등어회에 아귀 간을 살짝 올려서 먹었을 때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르챔버가 걸어온 10년 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해 임 대표는 "멋지게 드레스업한 노부부가 바를 찾아와 조니워커 블랙을 주문했을 때"라고 말했다. 이어 "노부부께서 '저희 같이 늙은 사람들이 와서 미안하다'고 하시기에 오히려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르챔버를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씀을 전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르챔버는 젊은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닌 부부가 기념일에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곳,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아빠가 위스키를 한잔 사주는 곳이 되는 등 많은 이에게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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