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전하는 인간적 메시지…“천천히 가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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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으로 달리던 경주마 '투데이'에서 기수가 떨어진다.
기수는 경마용으로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시(C)-27'.
투데이의 끝없는 질주를 막기 위해 시-27은 스스로 낙마를 선택한다.
로봇 연구원을 꿈꾸는 고등학생 연재는 폐기 직전의 시-27을 데려와 콜리라는 이름과 함께 다리를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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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으로 달리던 경주마 ‘투데이’에서 기수가 떨어진다. 기수는 경마용으로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시(C)-27’. 2035년 한국에선 기수 휴머노이드의 등장으로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 경마가 인기다. 시-27에는 연구원의 실수로 학습용 휴머노이드 칩이 삽입됐다.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시-27은 언젠가부터 투데이가 달릴 때 더는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투데이의 끝없는 질주를 막기 위해 시-27은 스스로 낙마를 선택한다. 하반신이 부서진 시-27은 이제 폐기 처분을 기다린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씨제이토월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천개의 파랑’(26일까지)에선 뒤에 ‘콜리’라는 이름을 얻는 로봇이 주인공이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은 천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 삼아 국립예술단체 서울예술단이 초연을 올렸다.
앞서 국립극단도 같은 원작을 동명 연극으로 만들어 지난달 초연을 마쳤다. 콜리 역에 실제 로봇 배우를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이와 달리 뮤지컬에선 로봇과 말을 인형으로 구현했다. 키 160㎝의 로봇 인형에는 콜리 역을 맡은 배우와 인형사 2명이 달라붙어 연기한다. 말 인형에도 인형사 3명이 붙어 머리와 다리를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인형은 3디(D) 프린터로 제작했다. 김태형 연출가는 “뮤지컬에선 콜리가 노래해야 하기 때문에 인형과 사람의 조합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로봇이 중심에 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펼쳐진다. 로봇 연구원을 꿈꾸는 고등학생 연재는 폐기 직전의 시-27을 데려와 콜리라는 이름과 함께 다리를 만들어준다.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언니 은혜는 관절이 안 좋아져 안락사를 기다리는 투데이를 보며 안타까워한다. 남편 없이 홀로 식당을 운영하며 이들 자매를 키우는 엄마 보경은 과거에 매여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세 모녀의 삶에 들어온 콜리는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투데이의 안락사를 막고자 콜리는 마지막 경주를 준비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소외된 존재들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꿈을 미뤄야 했던 연재, 거리에 나서면 늘 어려움을 겪는 은혜, 한부모 가정을 힘겹게 꾸리는 보경,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다 타의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된 콜리와 투데이는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며 스스로를 구한다. 이유리 서울예술단장 겸 예술감독은 “국립예술단체로서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 만든 가족형 공연”이라고 말했다.
배우 대부분은 서울예술단원이다. 콜리 역은 단원 윤태호와 보이그룹 펜타곤의 진호가, 연재 역은 단원 서연정과 걸그룹 오마이걸의 효정이 번갈아 연기한다. 이미 뮤지컬 경력이 상당한 진호는 물론, 뮤지컬이 처음인 효정도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주요 인물 이외 배우들도 무용극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하고 아름다운 군무와 합창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경마장에서 배우들이 열광하는 군중도 됐다 질주하는 경주마도 됐다 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김 연출가는 “욕망과 경쟁에 집착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서울예술단의 장기인 군무를 활용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움직이는 엘이디(LED) 패널 영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은 미래적이고 디지털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점점 더 빠르고 첨단화되는 사회 속에서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인간적이고 아날로그적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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