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담론 바꾸겠다는 윤 정부에 전 통일부 장관 "바꿀 필요 없어"

이재호 기자 2024. 5. 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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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임동원 전 장관, 통일연구원 주최 토론회서 남북 관계 개선 주문

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통일담론 형성을 위해 각계 각층의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전직 통일부 장관은 통일담론의 변동은 불필요하다며 그보다는 현재 북한과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4일 통일연구원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년 평가 및 통일담론 발전방향'을 주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대토론회에 김대중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강인덕(23대) 전 장관과 임동원 (25, 27대) 전 장관이 참석해 통일방안 및 담론에 대한 조언 및 의견을 나눴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사회를 맡은 토론회에서 임동원 전 장관은 지난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현재로서는 이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통일방안 아니냐는 생각을 모두 갖고 있다"고 답했다.

임 전 장관은 "우리 민족의 염원은 통일이다. 통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무력통일, 전쟁통일,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생각"이라며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면 갑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단계적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은 달성해야 할 목표인 동시에 긴 과정이다. 이를 통해 변화하고 창조하면서 통일로 나가자는 것이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기 때문에 35년 간 7개 정권이 교체됐지만 유지됐다"며 "도중에 어떤 정부에선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정 또는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전했다.

임 전 장관은 "남북관계는 가다서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가장 부합하는 통일방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해당 방안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임 전 장관은 "남북 고위급 회담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대로 남북연합에 들어가 교류‧협력하면 통일을 지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남북연합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며 "그전에 남북이 화해하고 교류‧협력하고 상호신뢰해야 연합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교훈으로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연합에서 완전통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화해협력단계를 거쳐 남북연합에 들어간다는 3단계로 통일방안을 보강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고 김영삼 정부가 이를 채택했다"며 "이 방안은 여러 역경과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인덕 전 장관은 "1990년대 들어오면서 소련이 무너지고 탈냉전이 되는 상황 속에 1994년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나왔다. (1970년 7.4 공동성명 이후) 20여 년 동안 우리가 얻은 경험, 교훈이 하나로 집대성 한 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 전 장관은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원칙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이 원칙에서 만들어진 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라며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상이 국민이 원하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30년 지나도 살아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세상에 나온지 30년이 넘어가면서 적실성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임 전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 목표, 이익에 충실해야지 북한이 한 때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해서 우리가 동조해서 우리 입장을 바꾸는 건 마땅치 않다"며 "통일정책은 장기적이다. 대북정책은 가변적이지만 통일방안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서독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꾸준히 동방정책, 즉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을 통해 평화공존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동독주민의 의식 변화를 노렸다"며 "1년에 평균 20년 간 30억 달러 경제지원을 했고 700~800만 동서독사람이 오가며 이산가족이 만나고 상대 지역에 정착했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독사람이 바깥세상을 알게 되고 의식이 변화하면서 통일의 추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강 전 장관 역시 "통일에 대한 기본철학, 목표 등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나온 그대로,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제4조에 기초해야 한다"고 밝혔다.

▲ 14일 통일연구원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년 평가 및 통일담론 발전방향'을 주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두 전직 장관은 통일방안이나 통일담론을 변화시킬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응하는 정책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전 장관은 "현시점에서 중요한 건 어떤 대북정책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을 설득해 태도 변화를 유도하든가 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서 소극적 평화를 유지하면서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등이 있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당면한 남북관계가 대단히 어렵다. 이런 가운데 남한 내 통일에 관한 의견이 분열돼 있다면 북쪽에는 오히려 강력한 군사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북한) 핵문제를 우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 4대강국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지금까지 유지한 나름대로의 전쟁억제 노력을 계속 강화하면서 북측과 관계 개선 위한 접근을 시도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조언했다.

강 전 장관은 북한이 핵 사용을 법제화하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두고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특히 제가 걱정하는 것은 평화의 문제인데, 우리 정책 우선순위가 바뀔 수밖에 없다. 남북평화를 어떻게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깨진 남북관계를 어떻게 복원할지에 대한 과정을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철학, 원칙 이런 건 변화가 없어도 되지만 상황이 너무나 바뀌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우리가 유지해야 할 통일원칙은 바꿀 필요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된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너무 바뀌었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하는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실상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냐는 질문에 강 전 장관은 "한마디로 체제 경쟁의 패배, 다시 말하면 남북관계에서 비록 핵을 갖고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것 같지만 3대 세습 체제가 가진 모순과 북한주민으로부터 일어나는 거부감 등이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남한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지만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통제를 위해 최근 더욱더 남북관계를 경색화하고 있는데, 인도주의적 접근을 포함해 현실에 맞게 북쪽의 문을 열고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방안을 모색해보자"라고 주문했다.

강 전 장관은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국제사회와 연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도적 지원을 하고 싶어도 (북한이) 우리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제사회와 협력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나 (살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남북관계 변화의 틈을 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강 전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바라고 있다. 그게 돼야만 러시아, 중국 관계가 더 벌어지고 북방 삼각관계에서 변화가 와야 우리가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강 전 장관은 "통일문제, 통일방안에 집착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로 가는 과정을 구체화시킬까를 중심에 두고 주변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에 대한 우리의 대북정책 인식을 완화시키고 북쪽도 우리에 대한 정책을 완화시키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임 전 장관은 "문제는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인데, 이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속 유지하면서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것밖에 별 도리가 없다"며 지난 2018년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왔던 싱가포르 선언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당시 합의 핵심이 △70년 간 유지한 적대관계 해소 및 관계 정상화 △정전 체제를 평화체제로 변화 △완전한 비핵화 실현 등이고 이 세가지를 같이 추진한다는 것이었다며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미국은 대통령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데 다음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핵문제 해결하고 관계 개선 한다고 하면 남북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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