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륜 30년, 팬들 기억에 남아 있는 명승부 5선 [경륜]

김재범 2024. 5. 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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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잠실 경륜장 시절의 경륜 경주 모습
1994년 10월 개막한 한국 경륜은 1기 112명을 시작으로 28기까지 1187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트랙을 달렸다. 초기 잠실 경륜장과 현재 광명스피돔에서 진행한 경주가 무려 6만 회에 육박한다. 경륜경정총괄본부 관계자를 비롯해 경륜 전문가, 경륜 선수, 고객들의 의견을 모아 ‘한국 경륜 30년, 역대 최고의 명승부 5선’을 정리했다.
사진=잠실 경륜장 시절의 경륜 경주 모습.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경주, 1998년 경륜 올스타전

1994년 말 개막한 경륜은 1995년 3월부터 본격적인 경주를 진행했다. 이때 경륜 2기로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직행한 김보현(은퇴), 원창용(은퇴), 정성기(2기, B3, 일산)는 단숨에 잠실 경륜장을 점령했다. 당시 지역 최강은 창원팀이었고, 경륜의 1인자는 ‘국가대표, 중앙대, 기아자동차 실업팀’ 출신 선수들이었다. 이런 판도는 2008년 조호성이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3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이 기간 그 아성을 잠시 깬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경륜 4기 엄인영(은퇴)이다. 엄인영은 2년 늦게 입문했는데 그는 1998년 마지막 경주인 경륜 올스타전에서 기존 강자들과 정면대결을 벌였다. 당시 경륜을 대표하는 간판급 선수들이 총출전하고 개인전 못지않게 팀전 양상까지 더해져 흥미를 높였다. 특히 당대 최고의 맞수이자 가장 인기를 끌었던 엄인영, 원창용의 첫 맞대결이자 선행 대 젖히기에 이은 막판 추입까지 역전이 거듭 벌어지면서 경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발산한 경주로 꼽힌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경주를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경주”로 평가하고 있다.
사진=2004년 혜성과 같이 등장한 경륜 황제 조호성(2008년 은퇴)
●조호성과 홍석한의 첫 맞대결, 2004년 11월 28일 결승 14경주

2004년 벨로드롬에 등장한 조호성은 11월 마지막 경주에서 경륜 1위 홍석한(8기, A2, 인천)과 만났다. 홍석한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스프린터에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유사한 경륜 종목에도 최적화된 선수였다. 명성에 걸맞게 2002년과 2003년 그랑프리 2연패, 성적 1위, 상금 1위를 독식하고 있었다.

두 선수의 대결은 연말 그랑프리 못지않게 큰 화제를 모았다. 우승은 조호성의 차지였다. 신인 조호성이 홍석한을 상대로 심지어 선행으로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조호성은 홈스트레치부터 선두로 나서며 적절하게 완급조절을 했고, 나머지 선수들을 견제용으로 활용해 시종일관 홍석한을 괴롭히면서 승리를 했다.

이 경기로 인해 두 선수의 위상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이후 엄청난 인지도를 얻은 조호성은 경주마다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했고, 그랑프리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사진=김민철(8기, a1, 광주). 경륜 최강자 조호성의 천적으로 맞대결에서 두번이나 우승했다.
●조호성을 무너뜨린 김민철, 2007년 대상 결승

홍석한을 무너뜨린 조호성은 그랑프리 3연패를 비롯해 연승 기록 등 경륜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경륜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런데 이런 조호성에게 뜻밖에 천적이 나타났다. 당시 특선에서 준강자 정도로 평가받던 8기 김민철이다.

이날 대상경주에서 조호성을 만난 김민철은 같은 팀 정점식(6기, 은퇴)과 송경방(13기, A3, 동광주)의 뒤를 따르며 거리를 크게 벌리는 ‘차간 두기’ 전술을 시도했고, 뒤따르던 조호성의 속력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완급조절로 타이밍을 빼앗아 막판 추입에 성공했다.

첫 맞대결의 1승은 이변 또는 운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후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김민철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경륜 최강자 조호성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유일한 선수였다. 특히나 대상 경륜이나 조호성이 연승 중일 때마다 그의 발목을 잡아 더 큰 인상을 남겼다.
사진=이명현(16기, s3, 북광주). 조호성 은퇴 이후 뚜렷한 강자가 없이 혼란스럽던 경륜을 평정한 주인공으로 어떠한 상화에서도 침착하게 경주를 전개하기로 유명했다.
●경륜 춘추전국시대 평정한 이명현, 2012년 대상 경륜 결승

조호성이 2008년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돌연 은퇴를 선언한 이후 경륜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힘 좋은 신예들이 등장하면서 다른 강자 홍석한도 노쇠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도권 황태자로 꼽히는 이국동(15기, A1, 신사)이 그랑프리를 우승하며 지역 최강인 수도권의 명맥을 이어가나 싶었지만 이전 선배들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역 패권이 수도권과 경상권으로 양분화되었지만, 두 지역 모두 화력이 예전 같지 못했다.

이런 대혼란을 평정한 선수가 바로 이명현이다. 그가 특별했던 점은 큰 경기이거나 편성이 불리해도 당황하는 모습 없이 침착하게 경기를 진행해 우승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경기가 2012년 스포츠서울배 대상 결승이다. 경주 초반 이명현을 최순영(13기, A2, 양주), 이욱동(15기, A1, 신사), 김영섭(8기, S1, 서울 개인), 김현경(11기, S3, 대전 도안)이 마지막 반 바퀴 남은 시점까지 가두었지만 마지막 4코너에서 장기인 ‘이단 젖히기’로 우승을 했다.

이 경기를 통해 이명현은 진정한 경륜 일인자로 등극했다. 유독 큰 경기에 강했던 이명현은 대상 경주 7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사진=정종진(20기, ss, 김포). 그랑프리 5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경륜 최강자로 우뚝 선 그는 2015년 이사장배 대상 결승을 통해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랑프리 5회 우승 정종진 화려한 등장, 2015년 이사장배 대상 결승

정종진(20기, SS, 김포)은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어렵게 사이클에 입문했다. 아마추어 시절 노력형 선수였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선수였다. 경륜 입문 전 생활고로 옷가게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경륜훈련원 재수 등 온갖 시련이 있었다.

이런 정종진이 그랑프리 5회 우승의 기록을 세운 대형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은 드라마틱했다. 정종진이라는 강자의 화려하게 등장한 경주가 2015년 이사장배 대상 경륜(네티즌배) 결승이다.

이 경주에서 정종진은 혼자서 박용범(18기, S1, 김해B), 박병하(13기, S1, 창원 상남), 이현구(16기, S2, 경남 개인), 이명현(16기, S3, 북광주)을 상대했다. 모두 역대 그랑프리 우승 경험이 있는 강자들이었다. 1대1로 상대해도 우승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무려 4명이나 만난 것 자체가 압박감이 상당해 정종진의 우승을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정종진은 대열 후방에 자리 잡은 후 2코너에서 폭발적인 속력으로 이 네 명을 모두 제치고 우승했다. 이 경기를 통해 정종진의 위상이 크게 바뀌었고, 소속팀 김포팀을 최고의 지역팀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편, 경륜경정총괄본부는 ‘경륜 30년 최고의 명승부 5선’ 영상을 6월부터 장내 방송 및 경륜경정총괄본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스포츠동아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김재범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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