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이런 날도”…‘못난이’가 사랑받는 시대가 왔다 [푸드360]

2024. 5. 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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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개사과·꼬마참외·제각각 채소
긍정적 네이밍 늘고 물량 확보 노력
B급 농산물의 고물가 속 달라진 위상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서 판매 중인 상생채소를 소비자가 바라보고 있다. [롯데마트 제공]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요? 호호, 최근 저의 인기를 보고 그리 말씀하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못난이라고, 평균과 다르다고 외면받았던 날들은 이제 안녕입니다. 대신 ‘작아서 귀엽다’고들 하세요. 절 보는 눈빛도 달라졌다고요.”

비정형과 혹은 저품위 상품이라는 본명을 가진 못난이 농산물의 요즘 속마음은 아마도 이럴 겁니다.

예전엔 상품으로도 인정받지 못해 농장 한편에 쓸쓸히 버려지듯 놓였던 이 친구들, 요즘 전국 바이어들 사이에선 그야말로 ‘스타’입니다. 못생겨도 괜찮거든요. 아니 예쁘지 않아야 환영받는 세상이 왔거든요.

홈플러스의 맛난이 사과. [홈플러스 제공]

정말이냐고요? 홈플러스가 지난달 판매한 ‘맛난이 사과’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0% 매출이 올랐어요. 모양이 예쁘지 않고 미세한 상처가 있는 사과들이었죠. 편의점에서도 이런 인기는 같아요. GS25에서는 흠집이 있는 ‘흠사과’를 선보였어요. 올해 1월부터 5월 초 매출은 일반 사과 매출보다 70% 높았습니다.

세븐일레븐이 일반 상품 판매를 하고 남은 자투리 바나나 송이들로 모아서 파는 ‘갓성비 바나나’는 올 들어 1월부터 4월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배 가량 성장했답니다.

달라진 위상은 이름에서 발견됩니다. ‘못난이 ○○’ 라 불렸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보조개 사과·반전 참외(이마트)처럼 긍정적인 어감의 상품명이 눈에 띕니다. 사실 ‘반전참외’가 나온 건 6년 전인데요. 지금만큼 인기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하네요. GS25에서는 ‘꼬마참외’, ‘착한사과’가 팔리고 있죠.

제각각 농산물(마켓컬리), 맛난이 농산물(홈플러스)처럼 ‘못나서 더 매력적’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들도 고물가 국면에서 생겼습니다. 덕분에 소비자와 마트, 농가가 웃게 됐다는 의미로 상생채소(롯데마트), 실속채소(이랜드킴스클럽)로 불리기도 하죠.

마켓컬리에서 판매 중인 ‘제각각 채소’ 브랜드 상품. [마켓컬리 제공]

과일 MD들은 ‘이름 짓기’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지만, 영양과 맛에 문제가 없는 농산물들이 사랑을 받는 것에 만족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대형마트 MD는 “기존에 사용됐던 못난이, B급 등의 상품명이 어감에 좋지 않아 순화적인 표현 또는 직관적인 이름을 늘 고민한다”면서 “이런 농산물 판매가 늘어나는 것에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사과, 금참외 등 평년 대비 2배 넘게 뛴 과일 가격에 소비자들은 오히려 B급 농산물로 모이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와 이커머스업체, 편의점까지 앞다투어 ‘B급 농산물’ 판매에 발 벗고 나섭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인 ‘가격’이 기존 상품 대비 20~30%, 최대 반값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기후변화와 공급 불안정 등으로 가격 인상 폭이 높을수록 아무래도 더 높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이마트의 ‘반전 참외’ [이마트 제공]

단순히 가격만이 인기 비결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어요.

전문가인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상 기후를 직접 겪은 소비자들이 윤리적 소비에 관심이 커지면서 겉모양 때문에 폐기됐던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고물가 속 못난이 농산물 구입은 구매 효율이 높은 선택 행위이면서 개선된 이름들이 동시에 가치 있는 소비를 한다는 개인의 만족도까지 높여 기꺼이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소비자 행위를 분석했어요.

이런 추세에 아예 못난이 농산물 물량을 정해 놓은 곳도 있어요. 이마트는 외관에 흠이 있는 참외를 모은 ‘반전 참외’를 전체 물량의 20% 정도로 배분해 운영 중입니다. 새벽배송 업체인 마켓컬리는 지난해 6월 투박한 채소류만 모은 ‘제각각’이라는 브랜드까지 만들었어요. 제각각 브랜드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건 청상추래요. 4월에는 입점 첫 달인 9월 대비 판매량이 7배 가까이 늘었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조금 작거나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식당으로 납품되던 B급 농산물들이 대형마트의 물가안정 노력으로 의미 있는 이름을 얻으며 주목받고 있다”며 “맛과 품질은 동일하면서도 가격은 낮아 고객들에게 가격 경쟁력이 있고, 농가에는 소득 증대 효과를 가져와 A급보다 사랑받는 ‘특 B급’ 상품이 되는 셈”이라고 전했습니다.

예전이면 들어오지도 못했을 이들은 마트에서도 소비자들을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A급 명당’ 자리에 놓인답니다. 투박하고 작고 모자라서 선택을 받는 세상이 왔어요. 이제는 “못 생긴 게 스펙”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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