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숙취차단제’는 알코올이 간에 가기 전에 분해해준다

곽노필 기자 2024. 5. 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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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유청 단백질에 철·포도당·금 혼합한 젤
생쥐실험서 5시간 뒤 혈중 알코올 절반
스위스 연구진, 상품화 겨냥 특허 신청
스위스 과학자들이 우유의 유청 단백질을 이용한 젤 형태의 숙취해소제를 개발했다. 픽사베이

술은 마실 땐 기분 좋지만 지나치게 마시면 다음날 두통 등의 숙취 후유증을 감수해야 한다. 시중에는 다양한 숙취해소제나 음료들이 나와 있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알약 하나로 이 짜증스런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연구진이 숙취를 ‘사후 해소’가 아닌 ‘사전 차단’할 수 있는 젤 형태의 알코올 분해 물질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이 젤은 치즈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유청 단백질 주성분인 베타-락토글로불린을 주된 재료로 삼고, 여기에 철분과 포도당, 금 입자를 섞은 것이다. 젤이 몸 속에 들어가면 효소처럼 작용해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 부산물 없이 곧바로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바꿔준다.

대부분의 알코올은 위와 장의 점막을 통해 혈류로 들어간다. 이번에 개발한 물질은 혈류로 들어가기 전에 알코올을 분해해주는 게 특징이다. 이에 따라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히드가 생겨나지 않는다. 알코올 분해 장소가 간이 아닌 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숙취 증상을 유발하고 간을 손상시키는 물질이다.

아세트알데히드 생성 없이 알코올 분해

연구진은 우선 유청 단백질을 몇시간 동안 삶아 길고 얇은 실 모양의 미세 단백질 구조(원섬유, fibril)를 만든 뒤, 소금과 물을 첨가해 젤을 만들었다. 젤의 장점은 소화가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촉매로 사용할 철 원자를 원섬유 표면에 고루 발랐다. 이로써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바꿀 수 있는 준비는 마친 셈이다.

그러나 사람의 장에서 이 반응을 일으키려면 약간의 과산화수소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포도당과 금 나노입자를 반응시켜 과산화수소를 얻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금은 소화가 되지 않는 금속 물질이기 때문에 장에서 오랫동안 과산화수소를 생성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렇게 해서 다단계 효소 반응을 통해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복합 젤이 만들어졌다.

젤 형태의 숙취해소제는 혈중 알코올 수치가 오르는 걸 효과적으로 막아준다. 취리히연방공대 제공

알코올이 간에 흡수되기 전 위·장에서 작동

이 젤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연구진은 생쥐를 대상으로 10일 동안 알코올을 투여하면서 이 숙취 해소 젤의 효과를 실험했다.

먼저 알코올을 1회 투여하고 30분이 지나서 젤을 먹인 결과, 생쥐의 혈중 알코올 수치가 40%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알코올 투여 후 5시간이 지나고서는 수치가 56%까지 떨어졌다.

연구진은 실험 기간 내내 젤의 효과는 안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알코올과 함께 젤을 매일 섭취한 생쥐는 간 손상도 적고 지방 대사와 혈액 지표도 좋아졌다. 또 비장(지라) 같은 다른 장기와 조직도 알코올 섭취로 인한 손상이 훨씬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품화를 목표로 이미 이 젤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 상태다. 실제 숙취 해소제로 시판하려면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지만 유청 단백질은 우유에서 추출한 것이므로 이 단계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개발된 알코올 분해제가 기존의 숙취해소제와 다른 점은 알코올 섭취로 인한 사후 증상보다 원인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에서 확실한 효과를 확인한 만큼, 사람들도 술을 마시기 전이나 마시는 중 이 젤을 복용하면 혈중 알코올 상승을 억제하고 숙취 증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젤은 알코올이 위장관에 있는 동안에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일단 알코올이 혈류로 넘어간 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사회적으로는 음주 자제를 권하는 분위기에 걸맞지 않아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진도 이 젤이 알코올 소비 자체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연구를 이끈 라파엘 메젠가 교수는 “이 젤은 알코올을 완전히 끊고 싶지도, 몸에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DOI: 10.1038/s41565-024-01657-7
Single-site iron-anchored amyloid hydrogels as catalytic platforms for alcohol detoxification.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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