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도솔천을 걷다…선운사와 도솔산

현경숙 2024. 5. 1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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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제일의 지장 신앙 '성지'
천마봉에서 내려다본 도솔산[사진/백승렬 기자]

(고창=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포크송으로 1970∼80년대를 풍미하며 천재 가수 소리를 들었던 송창식은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 '선운사'에서 사랑을 잃은 연인의 눈물을 가장 아름다울 때 꽃송이째 툭 떨어지는 동백꽃에 비유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 .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제주도, 남해안 등 남쪽 지방에서 동백이 질 즈음인 4월 초 전북 고창 선운사에는 동백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붉은 꽃이 짙푸른 숲을 수놓는 개화의 절정기에 땅바닥에는 '눈물처럼 후두둑 진' 동백꽃이 수북이 쌓인다. 4월 동백 축제를 앞둔 선운사에는 방문객이 붐볐다.

김훈은 에세이 '자전거 여행'에서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고 했다.

전성기에 지고마는 동백꽃을 두고 선인들은 '동백꽃은 세 번 핀다'며 그 애잔함을 달랬다. 한번은 나뭇가지에서, 또 한번은 땅 위에서, 마지막 한 번은 사람의 가슴 속에서라고.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사진/백승렬 기자]

선운사 동백이 늦게 피는 것은 이곳이 동백나무 자생의 북방한계선이기 때문이다. 선운사 동백림은 15세기에 산불에서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됐다.

동백군락은 1만6천500㎡ 규모로,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대웅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사찰 숲이라는 문화적 가치와 방화림 기능이 있는 이 동백림은 생물학적 보존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기상청은 이곳을 계절 관측지로 지정했다.

선운사는 숱한 시인, 묵객에게 예술적 서정을 불러일으켰다.

미당 서정주는 시 '선운사 동구'에서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라며 희미해진 옛 추억을 노래했다.

고창이 고향인 서정주는 근대불교교육의 선각자로 선운사 주지를 지낸 석전 박한영(1870∼1948) 스님의 제자였다.

송창식이 서정주 시 '푸르른 날'에 곡을 붙여 또다시 히트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두 사람은 교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 또한 애절하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꽃이 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도솔암 내원궁[사진/백승렬 기자]

선운사가 문학과 예술의 태자리가 된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석전 박한영 스님은 뛰어난 학승이자 3천여 수의 시를 남긴 시승이었다. 석전은 만해 한용운, 최남선, 변영만, 정인보, 오세창, 이동영, 이능화 등과 교류했다.

서정주를 비롯해 이광수, 신석정, 조지훈, 모윤숙, 김동리, 김달진, 김어수 등 근대문학의 토대를 닦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식민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제자들을 자식처럼 품었던 석전이 주석했던 선운사는 인문학의 숲과 같았다.

송기숙의 '녹두장군', 김용택의 '선운사 동백꽃'도 선운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석전은 일제 강점기 조선불교교정(현 종정),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 한성임시정부 13도 대표를 지냈던 석전은 불교 유신과 항일 운동을 벌였던 독립운동가였다.

성보박물관 격인 선운사 석전기념관에는 그의 친필 한시를 비롯해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꼽히는 고희동이 그린 석전 소영(작은 초상화), 최남선이 석전 회갑 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도솔암 내원궁 금동지장보살좌상[사진/백승렬 기자]

도솔천을 인 선운사와 도솔산

선운사를 품은 선운산(334.7m)은 과거에 도솔산이라고 불렸다. 선운사가 호남지역 대표 사찰이 될 정도로 유명해지면서 공식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지역 주민에겐 도솔산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불교에서 도솔천은 이상향이다.

따라서 도솔산은 이상향을 상징하며 선운사는 도솔천을 인 수행과 배움의 도량이 된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던 날, 구름은 선운사에서 쉬어 갈 듯 낮게 내려와 도솔산 어깨에 걸려 있었다. 고즈넉한 산사에 비나 눈이 내리면 정취가 더하는 법이다.

서해안에서 불어온 습기 머금은 바람이 도솔산을 넘으면서 많은 비와 눈을 뿌려 선운사의 연중 강수량은 많은 편이다. 도솔산의 기상은 고산준령 못지않게 장엄했다.

선운사 대웅보전[사진/백승렬 기자]

도솔산은 약 8천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성됐다. 화산재로 만들어진 응회암, 용암으로 만들어진 유문암이 형성한 수직 절벽과 바위 봉우리들이 웅장했다. 이 절경을 선조들은 '만 필의 말이 뛰어오르는 형상'이라고 표현했다.

도솔산 기상을 느낄 수 있는 등산로는 여럿 있었다. 선운사 산내 암자 중 '기도발'이 세기로 이름난 도솔암에서 출발하면 용문굴∼낙조대∼천마봉(284m)을 거쳐 도솔암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짧은 등산로가 있다.

1시간쯤 걸린 것 같다. 천마봉 바위에 걸터앉으니 발아래 암자와 주변 바위 봉우리들이 아찔한 파노라마를 형성했다. "산과 물을 즐기는 버릇은 어쩌지 못했다"고 회고할 만큼 석전은 틈만 나면 자연에 파묻혔다.

그에게 자연은 오래된 경전과 같았다. 천마봉에 오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해동 제일의 지장 신앙 '성지'

불교에서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모든 중생,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선운사는 지장보살 신앙의 성지로 꼽힌다. 여러 전각에서 지장보살 상을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상호는 본찰 지장보궁의 금동지장보살좌상,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이다.

국내 최대 크기 송악[사진/백승렬 기자]

지장보궁의 지장보살상은 일제 강점기에 도난당했는데 2년 만인 1938년에 선운사에 반환됐다. 일본으로 밀반출됐던 불상은 소장자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 "나는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보내달라"라고 했다고 한다.

소장자는 가세가 기울고 병들자 불상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했는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마지막 소장자가 고창경찰서에 신고하고 반환했다. 반환 당시 사진이 남아 있다.

도솔암 지장보살상은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을 반영했다. 우아하고 세련된 조각 예술로 인해 당대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참당암 지장보살상은 희귀한 석조이다. 금동, 나무로 만든 지장보살상은 여럿 전하지만 돌로 만들어져 온전하게 전해지는 지장보살상은 거의 없어 불교조각 연구 자료로 가치가 높다.

세 부처상은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백제의 검단 스님이 577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선운사에는 대웅보전, 만세루, 소조비로자나 삼불좌상, 참당암 대웅전, 도솔암 마애불 등이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다포식 건물인 본찰 대웅보전은 굳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건축미를 풍긴다. 만세루는 국내 사찰 누각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참당암은 누구나 참회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다. 참당암 대웅전은 선운사 암자 중 가장 오래됐다.

장사송[사진/백승렬 기자]

도솔암 마애불은 높이 15.7m, 무릎 너비 약 8.5m이다. 마애불 복장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있었는데 이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이 망한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건국 500년 되던 1892년 동학 접주 손화중이 이 기록을 꺼내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당시 농민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선운사에는 천연기념물이 셋이다. 600살 나이의 반송인 장사송, 국내에서 가장 큰 송악이 동백림과 더불어 천연기념물이다. 송악은 두릅나뭇과의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주변 물체에 달라붙으면서 위로 자란다.

선운사 송악은 높이 15m, 줄기 둘레 0.8m로, 수백 년 수령으로 추정된다.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은 화산재로 만들어졌는데 화산재가 식으며 생긴 절리가 장관이었다.

진흥굴[사진/백승렬 기자]

2030의 '버킷리스트' 템플스테이

사찰에 머물며 불교문화를 체험하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템플스테이는 한국의 대표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외국인도 즐겨 참여하며 20대, 30대 젊은 층에서 '버킷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템플스테이가 활발한 사찰이 선운사이다.

어린이를 포함한 외국인 가족, 직장 등에서 단체로 온 참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선운사는 여름에는 넓게 펼쳐진 녹차밭이, 가을에는 붉은 꽃무릇과 선운천 수면에 비친 고운 단풍이, 겨울에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으로 덮인 설경이 유숙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절집 뒤에는 제법 큰 저수지인 도솔제가 있다. 잔잔한 물결 위에 어리는 도솔산 그림자를 반쯤 감은 눈으로 바라보면 자기 내면도 수면에 비칠 것만 같다.

도솔제를 바라보며 하는 명상[사진/백승렬 기자]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에는 도솔제 걷기 명상, 모래 만다라, 차밭 둘레길 걷기 명상, 차담 등이 있다.

본찰에서 출발해 도솔제나 도솔암으로 다녀오는 1시간∼1시간 30분 코스, 선운사∼마애불∼용문굴∼낙조대∼천마봉∼선운사의 2시간 30분 코스, 선운사∼석상암∼마이재∼참당암∼소리재∼용문굴∼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의 5시간 코스는 추천 포행 경로이다.

구름 걸린 선운사에서 잠깐이라도 쉬며 오롯이 자연을 느끼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한 여행이 된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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