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일요일…최루탄은 결혼식장을 집어삼켰다

이영주 기자 2024. 5.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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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결혼식이 잦은 휴일과 겹치면서 44년 전 5월 18일(일요일) 당시 광주 곳곳에서 열린 결혼식 관련 구술이 재조명받고 있다.

주6일제가 적용되던 당시 결혼식을 위해 광주를 찾은 하객이 5·18을 경험한 내용 등도 포함됐다.

금은방에서 일했던 김우곤(당시 28세)씨는 5월 18일 오전 10시께 가톨릭센터(현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뒤편 광주예식장으로 예물을 배달하던 중 계엄군의 대시민 유혈진압 현장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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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속 5·18 결혼식 구술
귀가 중 구타당한 하객, 계엄군에 부상 입은 신랑
"진상규명 이전의 중요 자료…후대 연구 계속돼야"
[광주=뉴시스]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무방비 상태의 시민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을 가하는 계엄군의 모습.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20.01.03 (제공=정태원씨)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결혼식이 잦은 휴일과 겹치면서 44년 전 5월 18일(일요일) 당시 광주 곳곳에서 열린 결혼식 관련 구술이 재조명받고 있다.

결혼식장을 가득 메운 최루탄 연기, 귀가하는 하객을 향한 계엄군의 무차별 구타, 결혼을 막 마친 신랑에 까지 이어진 폭행 등 축복이 가득했어야 할 날은 비극으로 얼룩졌다.

15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한국현대사회연구소(현사련)는 5·18 10주기를 맞은 지난 1990년 항쟁에 참여했던 광주시민들의 구술을 채록한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전집)을 발간했다.

전집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간된 현대사 구술집이자, 전두환 집권 종료 직후 용기를 낸 5·18 항쟁 참여·피해자 499명의 실명과 목소리를 담았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전집에는 일반 시민이 목격한 광주의 일상 속을 파고 든 국가폭력의 양상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주6일제가 적용되던 당시 결혼식을 위해 광주를 찾은 하객이 5·18을 경험한 내용 등도 포함됐다.

금은방에서 일했던 김우곤(당시 28세)씨는 5월 18일 오전 10시께 가톨릭센터(현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뒤편 광주예식장으로 예물을 배달하던 중 계엄군의 대시민 유혈진압 현장을 목격했다.

이미 금남로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고 40대로 추정된 남성이 피를 흘리고도 있었다. 가톨릭센터 건너편에는 학생들이 속옷 차림으로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고도 진술했다. 김씨는 해당 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린 신랑도 계엄군에 의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장선호(당시 23세)씨는 형의 결혼식장을 집어삼킨 최루탄 연기 냄새를 떠올렸다.

18일 아침 동구 학동 집에서 광주예식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충장로우체국 앞은 이미 최루탄 연기로 가득했고 진술했다. 아비규환 바깥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이 진행되자 최루탄 연기가 식장으로 새어 들어와 모두가 눈을 따가워했다고 돌이켰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1980년 5월 21일 전남 광산군 송정리역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청년들이 광장에서 타이어에 불을 붙이고 “계엄철폐 독재 타도!”, “김대중 석방”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계엄군의 폭력 진압에 휘말린 하객들도 있었다.

김정섭(당시 34)씨는 가톨릭센터 7층에서 열린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참여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계엄군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훗날 안면근육 마비를 앓게 됐다. 정양근(당시 23세)씨도 당시 대인동 시외버스 터미널 앞 제일예식장에서 하객으로 참여, 피로연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가던 중 계엄군을 만나 부상당했다.

가톨릭센터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여하고 돌아오던 중 북구 유동에서 계엄군에 의해 머리를 크게 다친 김재희(당시 25세)씨도 '영문 모를 구타'라고 분노했다.

학계는 전집에 대한 사후 연구가 진상규명과 별개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021년 5·18기록관에 '5월 18일 금남로 주변엔 결혼식이 있었다'를 기고한 박진우 5·18재단 사무처장은 "전집에는 피어린 항쟁의 참상이 여과 없이 들어있다. 진상규명 착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발간된 귀중한 자료"라며 "후대 많은 5·18 연구와 문학 작품의 소재와 자료가 된 만큼 학문적 정립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전집을 펴낸 현사련은 서울·전남의 뜻있는 학자들이 모여 1988년 5월 23일 출범, 5·18민주화운동과 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2일 1980년 5월 당시 촬영된 사진 3600여 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사진은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11시 사이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앞에 배치된 계엄군들과 실탄이 결합된 기관총이 설치된 장갑차의 모습. (사진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2022.06.22 photo@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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