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빠 공세에 퇴출 된 막내 CEO

문상현 기자 2024. 5. 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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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실적을 낸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이 이사회에서 퇴출된다. 회사 최대주주인 장남과 장녀가 연합전선을 구축해 막내인 구 부회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른바 ‘남매의 난’이다.
4월17일 아워홈 비공개 주주총회에서 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아워홈 제공

9년 사이 네 번째다. 국내 2위 급식업체 아워홈 오너 일가 남매간 경영권 분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장남과 장녀가 손을 잡고 회사를 이끄는 막내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동안 아워홈 4남매는 크게 장남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과 막내 구지은 현 부회장을 두 축으로 대립해왔다. 이번엔 장남이 장녀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막내를 향한 공세에 성공했다.

4월17일 비공개로 개최된 아워홈 주주총회에서, 그간 회사의 수장이던 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회사 최대주주이자 아워홈 오너 일가 장남인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과 장녀 구미현씨가 막내 동생(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했다. 주총 결과에 따라 구지은 부회장은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6월3일 이사회에서 퇴출된다. 새 사내이사에는 장녀 구미현씨와 그의 남편 이영열 전 한양대 의대 교수가 선임됐다. 이 신규 사내이사 안건은 장녀 미현씨가 장남 본성씨의 제안에 따라 직접 주총에 올렸다. 결국 이번 아워홈 주총 결과는 ‘장남과 장녀가 회사에서 막내를 밀어냈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비상장사인 아워홈은 범LG가 기업이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구자학 회장이 2000년 LG그룹에서 분리해 설립했다. 회사 창립 당시 이미 70세를 넘어선 구자학 회장은 자녀들에게 일찌감치 지분을 나눠줬다.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율이 38.56%, 장녀 구미현씨가 19.28%, 차녀 구명진씨가 19.6%, 막내 구지은 부회장이 20.67%다.

장남의 지분율이 가장 높지만 과반은 넘지 못한다. 장녀와 차녀, 현재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막내의 지분율은 엇비슷하다. 한 명에게 힘이 쏠리지 않는 구조다. 구자학 회장은 자녀들의 우애를 기대하며 이렇게 지분을 나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반복되는 아워홈 남매간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워홈 경영 일선에 먼저 뛰어든 사람은 막내 구지은 부회장이었다. 그는 2004년 아워홈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2015년 2월 회사 부사장에 올랐다. 그가 임원에 오를 때까지 다른 남매들이 아워홈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만큼, 막내가 구자학 회장의 후계자로 통했다. 그러나 막내는 부사장에 오른 지 5개월 만에 직을 내려놓았다. 당시 그가 내부 경영진과 갈등을 빚었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임원들을 좌천시키거나 업무에서 배제했다는 등의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이 등장했다.

서울 마곡동에 위치한 아워홈 본사. ⓒ아워홈 제공

그동안 개인 사업을 해오던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은, 막내 구지은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이후인 2016년, 아워홈 최대주주 지위를 앞세워 회사 경영 전면에 나섰다. 당시 장녀 구미현씨가 오빠의 손을 들어주면서 장남과 장녀의 합산 지분율이 과반을 넘겼고 경영권 장악에 성공했다. 막내는 아워홈의 자회사이자 ‘사보텐’ ‘타코벨’ 등의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캘리스코 대표로 밀려났다. 첫 번째 아워홈 경영권 분쟁이었다.

아워홈, ‘LG 방계기업’에서 벗어나나

막내 구지은 부회장은 이후 지속적으로 아워홈 복귀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2020년,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의 ‘보복 운전’ 사건이 불거졌다. 장남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장녀와 차녀, 막내 등 자매들이 뭉쳤다. 2021년 1심 법원이 장남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당일, 세 자매는 장남의 대표이사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막내가 임시주주총회에서 다시 대표이사에 올랐다. 2차 경영권 분쟁이다.

막내 구지은 부회장의 복귀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던 경영권 분쟁은 1년 만에 재점화됐다. 2022년 장남과 장녀가 공동 지분매각을 선언하고 나섰다. ‘돈’이 문제였다. 당시 회사 수장이던 구지은씨는 코로나19 사태로 2021년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내자, 실적 개선 등을 이유로 무배당 정책을 결정했다. 총 100억원대 배당금을 받지 못하게 된 장남(구본성)·장녀(구미현)는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장남은 장녀에게 사모펀드에 회사 지분을 매각해서 현금화하자고 제안했고, 장녀는 오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회사 지분매각을 위해서는 이사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했다. 장남과 장녀는 이에 따라 자신들의 지분을 합쳐 과반을 확보한 뒤 이사회 교체 시도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시도는 2021년 세 자매가 뭉칠 당시 맺은 의결권 통일 협약에 막혔다. 장남을 밀어내기 위해 세 자매가 2021년 주총에서 새로 선임된 이사들의 임기만료 전까지, 모든 안건에 대해 통일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협약의 골자다. 쉽게 말해 장녀가 2022년 마음이 바뀌었어도 장남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는 뜻이다. 3차 분쟁 당시 남매들은 이 협약이 유효한지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맡겼는데, 법원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위)은 4월25일 구지은 부회장의 빈자리를 채울 추가 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이번에 불거진 4차 경영권 분쟁도 장남·장녀 연합과 막내의 갈등 구도다. 분쟁의 배경 역시 배당금이다. 막내 구지은 부회장은 대표이사 재취임 이후 적자 상태의 아워홈 실적 정상화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배당을 대폭 축소했다. 경영정상화 명목이었다. 회사 실적이 개선되면서 배당 총액을 2023년 30억원에 이어 올해 60억원으로 올리기 시작했고, 여기에 장녀는 불만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막내의 배당 정책에 대한 장남과 장녀 측의 불만은 이미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그는 2023년 주총 당시 주주 제안을 통해 배당 총액으로 456억원을 요구했다. 주주 제안은 부결되고 장녀는 여기에 크게 반발했다. 장남 역시 지난해 배당금 3000억원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남과 장녀 연합으로 아워홈 이사들의 임기는 오는 6월 만료된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선임된 사내이사, 즉 장녀와 그의 배우자만 이사회에 남게 된다. 아워홈은 자본금 기준에 따라 이사회에 최소 3명의 이사를 둬야 한다.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은 4월25일 추가 신규 이사 선임 등을 위해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했다. 장녀 구미현씨는 그동안 회사 경영에 참여해오지 않았고, 그의 배우자도 경영 경험이 없다. 장남은 자신의 아들을 사내이사에, 본인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냈다.

장남과 장녀가 이사회를 장악하면 2022년 3차 경영권 분쟁 당시처럼 지분매각을 추진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워홈은 인수합병 시장에서 알짜 매물로 통한다. 2022년 당시에도 40여 곳이 인수를 검토했다. 현재 회사 기업가치는 2조원대로 추정된다. 이번 분쟁 끝에 매각이 현실화되면 아워홈은 창립 24년여 만에 ‘LG 방계기업’ 타이틀을 벗게 된다.

아워홈은 막내 구지은 부회장 체제에서 실적이 개선됐다. 창립 이래 적자를 낸 다음 해인 2022년 매출 1조8354억원, 영업이익 537억원을 냈고 2023년엔 매출 1조9834억원, 영업이익 942억원을 냈다. 순이익은 2022년보다 세 배 늘어난 707억원이다. 최근에는 해외 사업과 푸드테크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구 부회장이 재신임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경영권 매각이 추진되면 관련 사업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전망한다.

친가 LG와 외가 삼성의 영향?

아워홈은 주주총회 일주일 뒤인 4월23일 카카오헬스케어와 인공지능(AI) 관련 업무협약을 맺었다. 구지은 부회장은 다음 날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이사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아워홈과 카카오헬스케어의 결합은 시장에 큰 도약과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에서 퇴출이 확정됐는데도 경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구지은 부회장과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이사(오른쪽)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아워홈이 4월23일 밝혔다. ⓒ카카오헬스케어 제공

아워홈 노동조합도 구지은 부회장에게 힘을 싣고 있다. 노조는 4월23일 성명을 내고 “회사 성장을 위해 두 발로 뛰고 모범을 보여야 할 대주주 오너들이 사익을 도모하고자 지분매각을 매개로 손잡고 아워홈 경영과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경영에 무지한 구미현(장녀)-이영열(장녀의 배우자) 부부는 이사직 수용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구지은 부회장의 운신 폭은 넓지 않다. 장남이 소집 청구한 임시주총에 대비해, 늘 막내 손을 들어줬던 차녀 구명진씨가 가진 지분을 합쳐도(총 40.27%) 장남·장녀가 보유한 규모(총 57.84%)보다 적다. 네 번의 경영권 분쟁 과정의 ‘캐스팅보터’였던 장녀 구미현씨를 다시 설득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가 막내의 경영 방침에 반발해 장남과 손잡은 만큼 현재로서는 화해가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 오히려 구지은 부회장이 사모펀드와 손잡고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아워홈 관계자는 “최대주주 사이의 일이라 회사가 관여하거나 입장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워홈 경영권 분쟁의 본질에 대한 다른 시선도 있다. 아워홈은 삼성 일가와 LG 일가가 연결된 기업이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3남인 구자학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둘째 사위다. 이병철 창업주의 차녀 이숙희씨와 1957년 결혼했다. 아워홈 남매들은 삼성과 LG 가풍이 섞인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LG는 장자 승계가 원칙이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가족 간 갈등을 이 원칙으로 차단해왔다. 장자 외 자녀들은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 경영을 했다. GS리테일(전 LG유통)에서 분사한 아워홈뿐만 아니라 LS그룹, LIG그룹, LX그룹 등 ‘방계기업’들이 이렇게 탄생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장남 이맹희 CJ 명예회장 대신 막내 이건희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후 삼성은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을 비롯해 이미경 CJ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딸들에게도 경영 참여의 문을 열었다. 이 때문에 아워홈 오너 일가의 막내 구지은 부회장의 경영 참여에는 삼성 일가인 이모와 사촌 언니들의 영향이 컸고,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속적인 경영권 장악 시도는 친가인 LG가 장자 승계 원칙의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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