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편견을 기록하다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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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 캠페이너로 활동하는 손자영씨(28)는 대학 시절 짧은 시나리오를 쓰는 교양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다른 학생이 과제로 제출한 시나리오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대표적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2〉에 등장하는 소시오패스 이자경처럼 범죄나 악당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한 축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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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 캠페이너로 활동하는 손자영씨(28)는 대학 시절 짧은 시나리오를 쓰는 교양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다른 학생이 과제로 제출한 시나리오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유독 ‘보육원 출신’ 캐릭터가 자주 발견됐다. 왜 이런 설정을 썼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단순했다. “그냥,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니까.”
드라마나 영화 속 캐릭터는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구현된다. 그래서 때때로 그 캐릭터들이 현실과 전혀 무관하게 반복되어 그려질 때가 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보육원에서 자란 손씨는 미디어가 그리는 ‘보육원 출신’이 클리셰가 되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TV 드라마 속 ‘가짜 고아’가 저지른 잘못은 진짜 고아인 내가 한 것처럼 느껴졌다.” 미디어는 현실 속 나의 삶을 실제와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 다뤘다. 그래서 미디어가 얼마나 ‘고아 캐릭터’를 남용하고 있는지, 미디어 속 ‘고아 캐릭터’가 어떤 한계를 갖는지 살펴보기 위해 직접 모니터링에 나섰다.
2020년부터 ‘고아’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드라마 40여 편을 분석했다. 이들 캐릭터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유형화가 가능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2〉에 등장하는 소시오패스 이자경처럼 범죄나 악당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한 축을 이뤘다. 그 반대편에는 〈내 딸 금사월〉의 주인공 금사월처럼 비현실적으로 밝고 명랑하거나 동정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가 있었다. 때로는 〈이태원 클라쓰〉 속 박새로이처럼 고아라는 설정이 복수심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모두 실제 ‘우리’와 달랐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불쌍하고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자꾸 우리를 이런 식으로 그리고 있어서 편견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손씨 자신도 몰랐던, 무의식 중에 만들었던 ‘나 자신에 대한 틀’을 깰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4월29일부터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 〈나 손자영 열여덟 어른〉은 ‘1+1 캠페인’이다. 펀딩에 참여해 책을 구매할 경우, 추가로 책 한 권을 미디어 종사자에게 보낸다. 손씨는 “결국에는 미디어 생산자에게 우리의 메시지가 닿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창작자들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설정을 사용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다양하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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