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검거 1년 새 12배, 구속률은 반토막…“피해자 보호 미흡”

최윤아 기자 2024. 5.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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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스토킹=범죄’ 인식 확산
채권추심·층간소음 분쟁도 ‘스토킹 신고’ 경향
“지배·통제욕 강한 가해자, 불구속 땐 추가 폭력”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022년 스토킹 피해 등을 호소하는 112신고가 전년보다 두배 가량 증가했으나, 스토킹한 혐의로 검거된 이들 가운데 구속된 비율은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젠더기반 폭력으로서 친밀 관계 폭력의 개념화와 대응 방안 모색’ 연구 과정에서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14일 보면, 112신고시스템에 접수된 스토킹 신고(질의·상담 등 포함)는 2022년 2만9559건으로 2021년 1만4505건보다 103% 늘었다. 2020년 4513건과 비교하면 3년 새 555.1%가량 급증한 수치다.

사건 현장 혹은 수사 결과, 피해자의 고소·고발에 따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2021년 10월 시행) 위반 혐의 등으로 검거된 이들은 2021~2022년 1년 새 818명에서 1만37명으로 12배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구속된 비율은 7.1%(58명)에서 3.7%(371명)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스토킹에 대한 112신고가 급증한 배경엔 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스토킹=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된 측면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스토킹을 경범죄로 규율했던 과거엔 신고해봤자 제대로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고 오히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커 신고하지 않았다면, 법 제정 이후 처벌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되면서 전보다 활발한 신고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스토킹 범죄는 ‘지속성’, ‘반복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더 적극적(반복적)으로 신고하는 피해자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초 대표적인 젠더폭력(생물학적·사회적 성별 불평등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 유형인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PV·Intimate Partner Violence)’을 규율하기 위해 스토킹처벌법이 도입됐으나 층간소음 분쟁이나 채무자에게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추심 과정에서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는 지속·반복적으로 행해지는 행위’ 역시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받는 사례가 늘면서 신고 건수도 증가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란 부소장은 “상담소에도 성적(젠더폭력적) 측면이 없는 스토킹 관련 상담이 종종 들어온다”며 “(상대방)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다양한 종류의 위협적인 연락을 사람들이 모두 ‘스토킹’으로 인식해 신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법 적용 대상이 그동안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던 괴롭힘까지 넓어지면서 각종 갈등 상황을 스토킹 피해라며 신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로 △증거인멸 △도망할 염려 등으로 피의자가 구속되는 사건 비중이 줄면서 구속률도 감소했을 거라는 추정도 나온다.

그러나 법원이 스토킹을 비롯한 친밀 관계 폭력을 저지른 피의자에 대한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 보호나 재범 위험성에 대한 고려가 미진한 게 현실이므로 구속률 감소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친밀 관계 폭력은 피해자가 신고를 꺼려 수사기관이 범죄를 포착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암수범죄다. 이런 사건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때 피해자 보호를 적극 고려하지 않으면, 범죄 처벌의 시작 단계인 피해 신고조차 기피하는 위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신고하면 안전하다, 국가가 나를 보호한다’는 믿음으로 어렵게 수사기관에 신고를 했을 때 구속, 처벌 등이 뒤따라주지 않으면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실망과 무력감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젠더폭력) 암수화를 심화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도 “피해자에 대한 지배·통제 욕구가 강한 친밀한 관계 폭력 가해자는 불구속이 떨어지면(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바로 피해자에게 추가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친밀 관계 폭력 가해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이사·퇴사를 반복하는 등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받기 때문에 낮은 구속률은 경계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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