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인자한 마애불상 위로 뜬 은하수

박상훈 기자 2024. 5.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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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오늘 하루만 공개되는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11일 새벽 경북 문경 희양산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위로 은하수가 뜨고 있다.

짙은 어둠속 랜턴 불빛에 빛나는 마애미륵여래좌상의 얼굴은 한낮에 본 모습과는 또 다르게 신비로워 보였다. 기자는 지난 10일 오후 경북 문경 희양산에 있는 봉암사의 마애미륵여래좌상을 촬영하러 갔다. 일몰 전부터 백운대 계곡 바위 위에 부처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은하수의 위치가 불상 위로 올라오는 새벽 3~4시까지 기다렸다. 한밤 중 산 속에 있었지만 인자한 마애불의 얼굴을 보면서 무섭지 않은 밤이었다.

봉암사는 의도적으로 전파를 차단하기에 휴대폰 사용이 불가능했고, 고요한 가운데 계곡의 물소리 바람 소리만 들려와 수행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 자신을 들여다 보기 보다는 어떻게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에 잘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불상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11일 새벽 봉암사를 지나 희양산 백운대에 자리한 마애미륵여래좌상 위로 은하수가 떴다. 평소에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기에 별과 함께 제대로 야간 촬영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최초 촬영이라 추측한 장면으로만 이번 취재를 기획했는데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이기에 광해(빛 공해)가 적어 별과 은하수를 관찰하기 좋은 조건일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보다 높은 산등성이에 은하수의 가장 큰 머리 부분이 가렸지만 선명한 꼬리 부분의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은 작고 큰 도시 불빛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 은하수를 제대로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촬영 장소 주변에 밝은 지역이 없고(가령 강원도 정선 소나무, 충북 제천 외솔봉이나 덕주산성, 경북 문경새재 등에서 단컷으로 직접 찍은 은하수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각(월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새벽 늦은 시간이다)에 달이 지고 없는 날짜에 맞추어 촬영을 한다면 은하수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사진에 분명하게 남길 수 있다. 이 모든 조건을 맞추어 새벽 시간에 아무도 없는 산속에 찾아가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치밀한 계획 없이는 일반인이 은하수를 보기는 힘들다. 이날 마애불에서 찍은 사진들도 은하수를 따로 찍어 레이어 합성하지 않았다. 물론 적도의(북극성 중심으로 도는 별의 움직임을 좇아 카메라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게 하는 카메라 장비)를 이용해서 수 분(分)의 장노출을 하면 은하수와 별을 흔들림 없이 더 길게 촬영할수 있어서 화질을 높일수 있다. 이런 경우 배경을 따로 찍어서 이어 붙여야 하지만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다기 보다는 좀더 선명한 별사진을 위해 디테일을 높이는 작업이다. 기자도 적도의를 자주 사용하지만 이 기사에는 적도의를 사용하지 않은 사진들만 게재했다.

마애미륵여래좌상은 높이가 539.6cm, 너비가 502.6cm로 머리 주변을 깊게 파서 광배 형상을 만들고, 위는 깊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얕은 부조(浮彫)로 처리됐다. 1663년 조선 현종때 제작되어 기록이 분명하고 고증이 가능한 몇 안되는 마애불이고 당대 불화와 연관성이 있는 창의적 표현 등 예술적 가치도 높아 지난 2021년 보물 제 2108호로 지정됐다. 둥글고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 부드러운 눈매, 단정히 다문 입 등이 자비롭고 인자한 인상을 풍긴다.

대한불교조계종 특별수도원 봉암사는 ‘봉쇄수도원’으로 유명하다. 봉암사는 청정도량으로서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 산문을 굳게 닫고 사찰에서부터 희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부지 일대를 막아 일반인의 접근을 엄격하게 통제해왔다. 오직 1년에 단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에 개방되어 많은 불자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평소 볼 수 없었던 봉암사 마애불과 은하수의 모습을 봉암사 주지 진범스님의 협조를 받아 촬영할 수 있었다. 무교인 기자도 그 온화한 자연과 부처의 얼굴에 오늘 하루 불교에 귀의하고 싶다. /박상훈 기자

11일 새벽 경북 문경 희양산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위로 은하수가 뜨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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