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왜 징계했나, 자료 내놔라”...9년째 골병 앓는 교사들

서정원 기자(jungwon.seo@mk.co.kr) 2024. 5. 15.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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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징계 불만 고교 중퇴생
9년째 보복성 정보공개 청구
전국 초교 6000곳 대상으로
“임원선거 정보 달라” 청구도
국민 알권리 위해 마련한 제도
오히려 악성민원 무기로 활용
교총 “교육부가 강력 대응을”
지난 2023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재발방지 대책 교사 의견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수도권의 한 시도교육청은 9년째 한 민원인의 ‘정보공개청구 폭탄’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 학교를 중퇴한 고교생 A씨가 징계에 앙심을 품고 학교와 교육청에 보복성 정보공개 요청을 해오고 있는 것. 당시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지침, 학생 징벌 가이드라인 등을 요청하고 있다. 해당 정보가 없어 부존재 답변을 해도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왜 주지 않느냐”며 폭언도 했다고 한다. A씨의 정보공개청구는 작년엔 약 30건이 들어왔고, 올 상반기만 해도 벌써 10여 건에 달한다. 국민신문고 민원까지 합치면 정보공개 요청 건수는 누적 100건이 넘는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작된 정보공개청구 제도가 학교와 교육청을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의 ‘무기’로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개 기관에 무차별 청구를 하거나, 법령에 따라 비공개·부존재 등 답변을 했는데도 지속해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하며 교육현장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권 침해·업무 방해로 간주하고 교육당국이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공개청구는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기타 공공기관 등이 보유한 정보를 국민이 청구하면 공개하는 제도다. 공공기관은 청구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공개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 10일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또 공개한다면 공개를 결정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공개해야 한다. 촉박한 시한과 무분별한 청구로 실무자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학교폭력 또는 생활지도와 관련해 학부모의 과도한 정보공개청구가 늘고 있다”며 “현장에선 이를 처리하느라 교육에 전념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고 전했다.

지난 1일엔 서울에 거주하는 80대 B씨가 전국 6000여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전교 임원선거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제기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B씨는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이 무고와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한 학부모 C씨의 모친으로 알려졌다. 앞서 C씨의 자녀는 지난해 2월 초등학교 전교 부회장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규정 위반으로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에 C씨는 29회에 걸쳐 학교와 교육지원청을 대상으로 300여건의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학교 측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한 바 있다.

일부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4월엔 울산 고교생 D씨가 울산 지역 20여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무분별하게 청구해 물의를 빚었다. 연수 교사 명단과 내용, 시험 감독 교사 명단, 수행평가 내용, 교직원 일체의 정보, 업무분장표 등을 달라고 했다. 지역지 인터뷰에서 D씨는 “선생님들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했다.

교권보호 조치 강화로 악성민원인들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이들 사이에선 정보공개청구가 합법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앙갚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슷한 민원 제도인 국민신문고 대비 정보공개청구는 민원인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한다. 국민신문고는 한 번에 한 곳에만 민원을 넣을 수 있지만, 정보공개청구는 수천 개 기관에 한꺼번에 제기할 수 있다. 반복 민원에 대해서 자체 종결처리할 수 있는 기준 또한 국민신문고보다 정보공개청구가 더 엄격하다. 직원보호도 정보공개청구 쪽이 취약하다. 일부 기관에선 정보공개청구를 민원으로 분류하지 않고 ‘별도 업무’로 처리한다. 이 경우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행정안전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한 입법 보완을 추진 중이다.

교육계는 정보공개청구 요건과 범위를 엄격히 정비하고, 교사와 학교에 대한 보호방안,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처벌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도한 민원은 교권침해로 간주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나서서 적극 고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춘 교총 교권강화국장은 “한 개인의 무차별적인 정보공개청구에 얼마나 많은 학교가 불필요한 업무가중을 겪고, 학생 교육에 차질이 빚어질지 우려스럽다”며 “교육부와 교육청이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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