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용 새 역사 쓴 ‘일무’ 귀환…50세 무용수들 “무대 오르려 체력 관리·연습 매진”

이강은 2024. 5. 15.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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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 ‘일무’, 5월 16∼19일 세종문화회관…전통과 현대 아우르는 ‘칼군무’ 장관
2023년 7월 미국 뉴욕 관객 사로잡은 ‘링컨센터’ 버전 선보여
서울시무용단 창단해에 태어난 입단 동기 김경애·최주희·홍연지에게도 각별한 작품
춤·무대 향한 애정과 열정으로 부상·아픔 견디며 무대 올라…서로에게 버팀목 돼
“뉴욕 관객들 감동 우리 관객들도 느낄 수 있도록 최선 다해 준비”
지난해 7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 H. 코크시어터. 미국 공연 예술의 ‘심장’으로 불리는 링컨센터가 처음 마련한 ‘한국 예술 주간(Korean Arts Week)’에 서울시무용단의 ‘일무(佾舞)’가 세 차례 공연됐다. 당시 선보인 17개 프로그램 중 ‘일무’는 유일하게 유료였지만 사흘 내내 전석(1802석) 매진을 기록했다. 한국 무용의 새 역사를 쓴 ‘일무’는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제례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지난해 7월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 H. 코크시어터에 가득 찬 관객들이 ‘일무’를 감상하고 있는 모습. 세종문화회관 제공
남녀 무용수 50명이 세련되고 웅장한 무대를 배경으로 역동적인 ‘칼군무’ 등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이 하나 된 에너지를 발산하자 공연장은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70분가량 공연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현지 평단과 예술가, 관객 모두 호평 일색이었다. 

디자이너 정구호(연출)와 안무가 정혜진(전 서울시무용단장)·김성훈·김재덕이 손잡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2022년과 이듬해 좀더 다듬어 올린 재연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무’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뉴욕 관객들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이는 창작진의 구상을 무대에서 오롯이 구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피땀을 흘린 무용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갑내기 세 친구인 김경애·최주희(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전수자)·홍연지(〃39호 처용무 이수자)도 그들 중 하나다. 공교롭게 1974년 창단돼 올해 50돌을 맞은 서울시무용단과 나이가 같다. 1997년 입단 동기로 지금까지 창작춤과 무용극 등 50여편의 작품에 출연한 세 사람에게도 ‘일무’ 뉴욕 공연은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일무’ 뉴욕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링컨센터 버전 재공연(16∼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앞두고 지난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셋은 “선배들 없이 우리가 최고참 무용수였던 첫 해외 공연이라 책임감이 컸고 공연 전 부상자도 나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공연 내용도 관객 반응도 너무 좋으니까 벅찼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공연 사흘 전 도착해 시차적응도 안 된 데다 연습 도중 일부 무용수 부상으로 동선을 다시 짜는 등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홍연지는 “힘들어하던 무용수들이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에너지를 다 뿜어냈다”며 웃었다. 최주희는 “(한국에서도 경험 못한) 기립박수를 받으니 만감이 교차했고, 이 나이에 이런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한국과 달리 공연장 무대 장치를 수동으로 작동시키는 현지 설비팀 관계자들이 처음에 무시하는 투로 대해 애를 먹기도 했단다. 김경애는 “각 장면에 맞게 장치들이 제대로 변환되도록 요청할 때마다 ‘대충하지, 한국 무용단이 얼마나 대단한 걸 한다고’ 식의 눈치를 주며 홀대하던 사람들이 ‘일무’ 리허설을 보곤 대우가 확 달라졌다”면서 “자기들이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더 해줄 게 없느냐’며 적극 나섰다”고 전했다. 
서울시무용단 무용수 홍연지(왼쪽부터), 김경애, 최주희가 ‘일무’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일무’는 무용수들이 흐트러짐 없는 오와 열을 유지하면서도 시시각각 동선을 달리하며 격렬한 춤사위를 칼 같이 맞아떨어지도록 해야 하는 장면이 많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상당해 20∼30대 젊은 무용수에게도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면서 완벽하게 해내기가 쉽지 않은 고난도 작품이다. 연습량이 기존 작품들보다 몇 배나 많은 이유다. 세 무용수는 40대 후반에 만난 이 작품에 어떻게 임했을까.
“(많게는 25살 차이가 나는) 젊은 친구들과 거의 힘겨루기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거기서 지면 안 되잖아요. (무대에 오르려면) 살아남아야 하니까. 꾸준히 필라테스나 헬스, 유산소 운동 등으로 체력 관리를 하면서 연습에 매진했죠. 결국 (체력적 열세 등)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답은 연습밖에 없어요.”(홍연지·최주희)
서울시무용단 홍연지 단원. 이제원 선임기자
서울시무용단 최주희 단원. 이제원 선임기자
“‘일무’는 젊은 에너지와 노련함이 어우러져야 완성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젊은 후배와 나이 든 선배들이 합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세대 차이를 넘어 후배들과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용수 간에 대화가 안 되면 춤으로도 대화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선후배 모두가 마음을 열고 다른 의견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합니다.”(김경애)
서울시무용단 김경애 부수석. 이제원 선임기자
입단 당시 동기 12명(여성 10명, 남성 2명) 중 9명이 결혼과 임신 등 개인 사정으로 떠나고 셋만 남은 지도 오래다. 춤에 대한 애정과 무대를 향한 열정으로 부상을 당해도 아픈 통증에도 참고 버텼다고 한다. 그동안 셋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각자 5살(김경애), 10살(홍연지), 14살(최주희) 때 전통춤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현재 무용 나이들만 합쳐도 121살에 달한다. 무용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했다.
최주희는 “무용수로서 (후회하지 않으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온 만큼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삶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박사이기도 한 홍연지는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발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지도자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경애는 “나이가 들수록 남은 무대가 더 간절하고 소중한 것 같다. 춤출 때 행복한 그 에너지를 관객 분들한테 고스란히 전하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무용단 무용수 홍연지(왼쪽부터), 최주희, 김경애가 ‘일무’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지난해 뉴욕 관객들의 감동을 우리 관객들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연습실로 향하는 세 친구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번 ‘일무’ 공연이 참으로 기대됐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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