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외국인]④한국 생활 29년 할랄마트 사장님, 정착 비결은 “넵, 알겠습니다”

안산=홍다영 기자 2024. 5.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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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출신, 한국 귀화
연 매출 9억원대 마트 사장님 됐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에서 할랄마트를 운영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모하마드 사하아름씨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지난해 말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총 250만7584명. 전체 인구(5132만명)에서 4.89%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이 비율이 5%를 넘어가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올해부터 한국은 ‘다문화·다인종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력이 부족해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지, 다른 국가와 비교해 국내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짚어본다.[편집자 주]

“한국 정착 비결이요? ‘네 알겠습니다’ 아닐까요? 직장에서 100가지 어려운 일을 시켜도 군말없이 묵묵히 하면 결국에는 인정받는 것 같아요.”

방글라데시 출신 모하마드 사하아름(50)씨는 지난 13일 오후 2시쯤 경기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 마을 특구에 있는 할랄(무슬림이 먹어도 되는 음식) 마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하아름씨는 1996년 한국으로 건너와 2004년 귀화했다. 한국에서 29년째 거주하며 공장 직원, 환경미화원으로 일했고 지금은 안산에서 연 매출 8억~9억원대 할랄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할랄 마트에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한 소·양·닭고기와 방글라데시에서 수입한 쌀, 과자, 차(茶) 등이 있었다. 책상에는 계산기와 외상 장부가 있었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다른 직원은 가게를 바쁘게 오가며 택배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사하아름씨는 어떻게 고향에서 3700㎞ 떨어진 한국에서 할랄 마트를 운영하게 됐을까.

◇방글라데시에서 한국 귀화, 공장 직원→공장장→창업→환경미화원→할랄마트 사장님

20대이던 1996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사하아름씨의 첫 직장은 경기 광주시에 있는 한 플라스틱 공장이었다. 주 5일제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주·야간 2교대로 근무하며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공장장으로 승진했다.

사하아름씨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2006년을 꼽았다. 같은 방글라데시 출신 지인이 동업을 제안해 그해 경기 시흥시에 할랄 마트를 냈다. 막상 지인은 ‘손님은 없고 돈만 든다’며 한 달 만에 손을 뗐다. 사하아름씨는 할랄 마트를 계속 운영했다. 무슬림이 많이 사는 곳을 찾아 2014년 안산시 원곡동 외곽, 2021년 원곡동 중심 쪽으로 가게를 옮겼다. 할랄 마트 연 매출은 8억~9억원 수준이다. 그는 “무슬림은 시중에 판매하는 하람(금지된 음식)이 아무리 저렴해도 할랄을 먹어야 한다”며 “페이스북이나 전화로 주문을 받아 전국에 택배로 배송한다”고 말했다. 할랄 식자재는 서울과 수원에 있는 할랄 인증 공장에서 납품을 받는다.

우여곡절도 겪었다. 2014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고 5000만원이 넘는 카드 빚도 쌓였다. 빚을 해결하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시흥시에서 환경미화원으로 ‘투잡’을 뛰었다. 새벽 3~4시쯤 출근해 거리를 청소하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할랄 마트에서 일했다. 미화원 월급 400만원으로 빚을 갚고 장사하며 번 돈은 생활비로 썼다. 그는 “하루 3~4시간씩 자고 일했다”며 “예전에는 미화원들 나이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젊은 친구들도 있고 청소하기 좋아졌다”고 했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에서 할랄마트를 운영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모하마드 사하아름씨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90년대는 말이야… ” 韓 생활 고민하는 외국인 후배에게 조언도

인터뷰 중 용인시에서 장사하는 한국인 남성 손님이 할랄 마트를 찾았다. “방글라데시 쌀 있어요?”, “창고에서 가져가세요.” 나가려던 찰나 손님의 눈길이 구석에 있는 박스에 멈췄다. 매콤하고 짭짤한 할랄 과자가 담겨 있었다. “새로 들어왔어요? 잘나가요?”, “인기 좋아요. 다른 데는 봉지당 4000~5000원인데 우리는 3000원입니다”, “몇 봉지 주세요.” 수완 좋게 몇 분 만에 쌀과 과자를 팔아 몇십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하아름씨의 할랄 마트는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사랑방 역할을 한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이 아플 때 병원에 대신 전화하고, 회사에서 다친 외국인이 산업 재해 처리를 요청할 수 있도록 노무사도 소개시켜준다.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한국 공장장이 괴롭혀서 못해먹겠다”는 하소연도 한다.

사하아름씨는 후배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성공할 마음이 있으면 일부터 열심히 하고 주변에서 욕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합니다. 가끔 텃세를 부리는 공장장이 일부러 불가능한 일을 100가지씩 시킬 때가 있어요. 일단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30~50가지라도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에 공장장이 진짜 나쁜 사람이면 공장장이 좋아하는 담배 한 갑, 음료수 한 캔씩 갖다주라고 해요. 그러면 결국 마음을 좋게 바꿉니다.”

종교 갈등을 피할 조언도 해줬다. “기도해야 하는데 공장에서 기도할 시간을 안 준다고 아쉬워하는 무슬림이 가끔 있어요. 그러면 인정부터 받으라고 말해요. 일터에서 예쁘게 보이면 흔쾌히 기도 시간을 줍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던 1990년대에는 지금처럼 할랄 음식도 없고 주변에 교류할 무슬림도 없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깨달은 것은, 참지 못하면 한국에서 일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지난 13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 마을 특구 거리. /홍다영 기자

◇은행 직원도 외국인…114개국에서 왔지만 다 같은 주민

이날 오후 찾은 안산 다문화 특구 거리는 마치 해외 같은 분위기였다. 양·염소고기를 판매하는 정육점, 통신사 대리점, 미용실, 약국은 한글 대신 중국어·러시아어·태국어 간판을 걸고 있었다. ‘임금 체불 노무사 자문’, ‘못 받은 돈 포기하지 마세요. 업계 최고 노하우! 착수비 없음. 무료 상담’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특구 인근 건물과 지하차도에서 휘날렸다.

다문화 특구 과일 가게에서는 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두리안을 5만~7만원대에 판매하고 있었다. 과일 가게 직원은 “한국말은 조금 서툴다”며 “칼로 손질해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몇몇 시중은행은 이곳에서 외국인 특화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은행은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외국인 직원 10여 명을 고용해 현지어로 서비스했다. 공장에서 일하느라 평일에 은행에 올 수 없는 외국인을 위해 일요일에도 영업하는데, 한 달에 4000명쯤 방문한다고 한다.

공장이 많은 안산시에는 올해 3월 기준 중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114개국에서 온 외국인 9만7000명이 체류하고 있다. 안산시 인구(62만7000명) 중 15%가 외국인인 셈이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원곡동 일대는 2009년 다문화 마을 특구로 지정됐다. 안산시는 2008년 외국인 주민센터 문을 열었고 2016년 다문화 지원본부, 2019년 외국인 주민 지원본부로 조직을 개편했다. 임금 체불과 산업 재해 등 외국인 근로자가 겪는 부당한 처우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문화 가족 자녀의 정서 안정, 학습·취업도 지원한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 사하아름씨는 “방글라데시 출신 부부가 100쌍이 넘는데 자녀들이 대부분 방글라데시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전통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외국인 학교나 아랍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하아름씨는 한국 정부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단계적 비자 전환 제도를 꼽았다. 외국인 근로자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뒤 숙련기능인력(E-7-4) 비자로 전환하고, 이후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초청할 수 있는 지역특화형(F-2-R) 비자로 바꿀 수 있다. 한 기업에서 오래 일하며 한국어 능력을 쌓으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비자를 주는 제도다.

사하아름씨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한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기술을 배우는 분들이 많다”며 “비자를 바꿔주면서 한 회사에 고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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