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주만큼 귀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주인공입니다

김한수 기자 2024. 5.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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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인터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월정사 전나무 숲에 서면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국민이 찾아와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산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봄날의 오대산은 공기까지도 초록빛처럼 느껴졌다. 지난주, 월정사 입구 전나무 숲길에서는 이슬비를 맞으면서도 맨발로 걷는 이들이 보였고, 외국인 단체 순례객도 눈에 띄었다. 월정사~상원사 10㎞ ‘선재길’을 걸으려,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참배하려, 월정사의 다양한 수행 프로그램에 참가하고자 오대산을 찾은 이가 작년에만 125만명에 이른다.

정념 스님은 2004년 월정사 주지를 맡은 후 20년간 월정사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그 사이 절 입구에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과 월정사성보박물관, 한강시원지체험관 등 ‘박물관 타운’이 들어섰고 길 맞은편엔 100실 규모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 2018년 문을 열었다. 20년 전 ‘단기출가학교’로 선풍을 일으킨 수행 프로그램은 ‘오대산 선재길 걷기 명상 축제’ ‘세계 청소년 명상 축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와중에는 유튜브 채널을 열어 실시간으로 예불과 기도, 명상 프로그램을 중계하며 구독자 8만명을 넘겼다. 절 앞 시설이 ‘종교 서비스’를 위한 공간이라면, 절 안은 선원(禪院) 네 곳을 중심으로 수행 열기가 뜨겁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문수보살의 성지’를 넘어 ‘명상 치유 문화의 성지’로 변화를 이끄는 정념 스님을 만났다.

20년 전 “이대로면 산사는 化石 된다”

-지금은 ‘천년의 숲길’과 ‘선재길’ 등이 잘 가꿔져 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스님 출가 당시 월정사 모습은 어땠습니까.

“불사(佛事)로 늘 바빴습니다. 월정사는 6·25 때 전각 대부분이 불타는 바람에 제가 출가했을 때(1980년)에도 복원 불사가 계속됐습니다. 기왓장 나르고 밭에서 채소 가꾸고 하는 울력(육체노동)하는 사이사이에 기도, 예불, 독경하며 살았습니다. 바깥의 다른 선원(禪院)에서 안거하고 싶기도 했지만 일손이 달려 붙잡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상원사 주지 시절엔 문 닫았던 선원을 다시 만들고 안거했습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만 당시엔 수행에 대한 간절함이 대단했습니다. ‘이 공부밖엔 없다. 가장 좋은 길이다’라는 간절함이었지요. 간절(懇切)의 절(切) 자 하나에 지극했지요.”

-20년 전 처음 주지를 맡았을 때 ‘농경 사회에서는 10년 면벽(面壁) 수도해도 가르침이 통했지만, 지금 세상에서 10년 면벽하면 바보 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불교가 문화적 화석(化石)이 되어 가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세상은 도시화하고 문명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불교는 농경 사회적 정서와 문화 속에서 정태적, 은둔, 소극 그리고 산중 불교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지요. 그래서 변화의 몸부림을 쳤습니다.”

7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에서 정념스님이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평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그동안 월정사 변화를 보면 ‘종교 서비스’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월정사가 가지고 있는 전통 문화를 어떻게 계승, 창달할 수 있을까, 또 도시 생활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이곳을 찾아 재충전하고 마음을 다스리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런 결과로 ‘천년의 숲길 걷기’ ‘단기 출가 학교’ ‘오대산 문화 축전’ ‘불교대학’ ‘문화대학’을 열고, ‘달마야 놀자’ 등 영화 상영회도 하고, 복지 재단 만들고 문수청소년회를 만들어 청소년 인성 교육도 했습니다. 최대한 이 산중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겠다, 종교와 관계없이 국민에게 열린 사찰을 만들겠다, 산문(山門)을 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년의 숲길·단기 출가 학교 등 개설

-20년 전 단기 출가 학교는 큰 화제가 됐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나요?

“지금까지 57기에 걸쳐 남녀노소 3500여 명이 단기 출가 학교를 거쳤고 그중 350여 명은 실제로 출가했습니다. 단기 출가 학교는 외국인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오는 7월 1일부터는 4주간 국제 단기 출가 학교도 열립니다. 우든피시(Woodenfish) 승가 프로그램과 함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을 비롯해 23국 청년 80여 명이 월정사로 찾아와 한국 불교를 체험합니다.”

‘통합 명상’으로 몸·마음 함께 치유

-AI(인공지능)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마음 공부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불교에서는 사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법안(法眼)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은 지식에 의해 발전했습니다. 지식은 대상을 나누어 분별해 상대적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 결과 현재의 디지털 문명까지 고도로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지만 그 문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나요? 불교의 수행은 상대적 개념으로 분별해서 보던 것을 해체하고 분별 이전에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자리를 깨닫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 공부 수행을 통해 분별하는 마음을 쉬고 이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 자리를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갈등, 시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명상이나 수행이 필요한 것이죠.”

정념 스님. /이태경 기자

-이른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사람이 늘어갑니다.

“디지털 문명은 소통과 불통의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SNS 등을 통해 ‘디지털 스킨십’이 강화되는 것 같지만 대면 소통은 줄었지요. ‘연결 속의 분절화’라고 할까요. 사람은 만나서 정을 나누며 교감해야 하는데 단절되다 보니 우울감, 공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제도 종교는 쇠퇴하면서 그들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지요. 탈종교화, 제도 종교의 쇠퇴는 세계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종교색, 편견을 배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이 명상입니다. 월정사는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민 보살’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

-월정사 명상 프로그램은 어떤 점에서 다른지요.

“저희는 ‘통합 명상’을 추구합니다. 한마디로 몸과 마음을 함께 건강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가 명상을 필수 코스로 함께합니다(유튜브에는 정념 스님이 직접 요가를 시연하는 동영상이 게시돼 있다). 현대인들은 육체노동은 사라지고 정신노동이 과도해서 정신 병리적 문제가 생깁니다.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곳에서 명상을 통해 탐진치(貪瞋癡)의 불꽃이 일어나는 생활 현장에서 수행하고 살아갈 힘을 기르는 것이지요. 명상을 통해 자기 혼자 마음의 평온을 찾는 데서 나아가 일상에서 수행하며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전환을 통해 기후 위기나 평화 문제를 실천할 수 있는 ‘시민 보살’로 거듭나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월정사 정념 스님. /이태경 기자

-코로나 팬데믹 4년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는 우리에게 큰 법문을 해줬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힘들게 했지요. 세계 어디라도 코로나가 남아있으면 다시 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요. 나와 네가 둘이 아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는 연기(緣起)적 실상을 보여줬습니다. 지구 공동체라는 말이 실감나지요. 코로나 사태는 기후변화 위기 등 환경 문제도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정치적 생각이 다르면 함께 식사도 하기 싫다는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로 갈등이 심합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잘못’이라고 단정하는 태도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차이는 각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자기만의 색안경을 낍니다. 디지털 세상은 유튜브만 해도 알고리즘으로 자꾸 한쪽으로 유도해 안경 색깔을 더 진하게 만듭니다. 명상은 ‘내 안경으로 세상을 규정할 수 없구나’ 하는 점을 스스로 깨닫고 안경 색을 옅게 만들거나 아예 안경을 벗게 만들어 줍니다.”

-부처님이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존재를 올바르게 자각하고 자기를 해방하고 세상을 해방하고 영원한 행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지요? 흔히 부처님 혼자 존귀하다는 뜻으로 오해하는데요, 이 말씀은 모든 존재가 각각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한 생명의 가치는 온 우주와 등가(等價), 즉 가치가 같다는 뜻이지요. 내가 온 우주와 똑같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또한 나뿐 아니라 만물이 똑같이 존귀하다고 생각해보세요. 서로 존중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가르침을 전해주기 위해 부처님은 오셨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살아가는 국민들을 위해 힘이 될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상만사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1년 변화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제 입하(立夏) 절기가 지나고 대서(大暑)가 지나면 또 입추(立秋)가 올 것입니다. 극즉필반(極卽必反)의 이치입니다. 우리 삶도 사회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미래가 어두워 보일지라도 새로운 희망의 기운은 도래해 있는 법입니다.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자기 스스로 충실한 삶을 살아갈 때 세상과 우리의 삶에 희망의 빛이 열려 올 것입니다. (벽에 걸린 ‘부유만덕·富有萬德’ 편액을 가리키며) 부처님이 깨달은 후에 한 말씀입니다. 본래 부(富)는 만덕이 장엄돼 있는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부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다 갖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다 갖춰져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눈을 열어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월정사(평창)=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월정사

월정사의 눈 내리는 밤 풍경. /월정사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 율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 자장 율사는 당나라 유학 중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후 귀국해 오대산의 중대(中臺)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해 적멸보궁을 조성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오대산 사고(史庫)가 만들어져 실록과 의궤를 보관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한암(1876~1951) 스님과 탄허(1913~1983) 스님이 머물렀다. 한암 스님은 서울 봉은사 조실이던 1925년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鶴)이 될지언정, 봄날에 재잘거리는 앵무새는 되고 싶지 않다”며 오대산 상원사로 와서 1951년 입적 때까지 절을 떠나지 않았다. 유불선(儒佛仙)에 정통한 대강백(大講伯) 탄허 스님은 방대한 화엄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경전 연구를 이끌었다. 현재 조계종 제4교구(敎區) 본사(本寺)이다.

☞정념 스님

경남 고성 출신으로 만화 희찬 스님을 은사로 1980년 월정사로 출가했다. 2004년부터 월정사 주지를 연임하며 상원사 청량선원과 월정사 만월선원을 복원·개원했다. 상원사 주지 시절부터 안거(여름·겨울 3개월간의 집중 수행 기간)에 참여하며 방선(放禪) 등 쉬는 시간에 주지 소임을 보고 있다. 올해 1월 6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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