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고집하다가 팀 성적은 주르륵

김영준 기자 2024. 5.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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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스포츠 인사이드]
잉글랜드 프로축구 포리스트그린 사연

맨체스터 시티, 아스널, 리버풀…. 세계 최정상급 축구 클럽이 즐비한 잉글랜드 축구에서 포리스트 그린 로버스(Forest Green Rovers)는 특이한 주목을 받아왔다. 잉글랜드 글로스터셔주 네일스워스를 연고로 하는 이 팀은 프로 등급(1~4부 리그) 마지노선인 EFL 리그 2(4부)에 속해있고 창단 130여 년간 1부(프리미어 리그)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축구 외적인 정책으로 화제를 뿌렸다.

포리스트 그린은 세계 최초로 UN(국제연합)이 인정한 ‘탄소 중립 구단’이다. 친환경 정책을 선언한 뒤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경기장을 가동할 전기를 만들고 잔디엔 화학비료 대신 해초를 뿌린다. 유니폼은 커피 찌꺼기와 플라스틱을 재활용해서 만든다. 현재 5000석 규모 목재 경기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선수단에 제공하는 식단은 물론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파는 음식까지 모두 채식(vegan)이다.‘버섯 고기’로 만든 파이, 샐러드 등을 판매한다.

포리스트 그린의 친환경 정책은 2010년 지역 사업가인 데일 빈스(63)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영국 녹색 에너지 회사 에코트리시티(Ecotricity) 창업자인 빈스는 “지속 가능성 있는 축구 구단을 만들겠다”며 변화를 추진했다. 현지에선 구단의 이런 행보를 ‘또 다른 길(Another Way)’이라 불렀다. 포리스트 그린 홈구장이 위치한 도로명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게리 네빌과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엑토르 베예린 등 유명 인사가 주주로 참여하면서 힘을 받았다. 관중이 늘어났고, 재정 건전성이 높아졌다.

그래픽=김성규

팀 성적도 따라왔다. 세미 프로인 5부 리그에 있던 팀이 2017-2018 시즌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격했다. 사상 처음 4부 리그로 올라섰다. 2021-2022 시즌엔 4부 리그 우승으로 3부까지 진입했다. 빈스 회장은 “2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머무는 팀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꿈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2022-2023 시즌 3부 리그 최하위로 4부로 강등되더니 곧바로 올 시즌 또다시 4부 최하위에 머물렀다. 6년 만에 5부로 돌아가게 됐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이 과정을 다루면서 “포리스트 그린의 ‘또 다른 길’은 (안타깝게도) 축구의 길이 아니었다”면서 “구단 의사 결정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고 전했다. 빈스 회장도 “우리 구단의 인재 영입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핵심은 ‘친환경’에 매달리느라 정작 축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리스트 그린은 2022년 3부 승격 확정 직후 롭 에드워즈 감독과 리치 휴스 단장이 상위 리그 팀인 왓퍼드와 포츠머스로 연달아 이적하면서 시험대에 올랐다. 팀에 성공을 안긴 그들을 대체할 적절한 후임자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지도자에게 팀을 장기적으로 맡겨 상위 리그 진출 초석을 다지는 대신 눈앞 성적에 따라 감독을 갈아치우기 바빴다. 최근 두 시즌 간 포리스트 그린 지휘봉을 잡은 감독만 5명이다. 특히 지도자 자격증만 있고 실제 지도 경험은 없던 현역 선수 트로이 디니를 ‘플레잉 감독’으로 앉혔다가 성적 부진에 선수단과 감독 불화까지 겹쳐 한 달도 안 돼 경질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적 시장 때 영입한 선수들도 연이어 부진했다.

친환경 정책에 대한 내부 반발도 있었다. 특히 선수 몸 상태와 직결된 채식 식단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선수는 훈련이 끝난 뒤 외부 식당에서 피자 등 음식을 포장해 집에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선수단이 원정 경기 때 단체로 치킨과 생선튀김 등을 주문해 먹은 일도 있었다. 일부 팬도 “축구장에 놀러 가서 햄버거 하나 먹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위안점은 로버스가 최근 부진을 겪으면서도 금전적으로 자생력을 키웠다는 점이다. 선수단 연봉이 리그 수준보다 높아 적자를 면치는 못했지만, 지난 한 해 400만파운드(약 68억원) 상업 수익을 거뒀다. 글로벌 대기업이나 도박·암호 화폐 업체 등이 아닌 친환경 기업과 자선단체 후원으로 이룬 성과다. 인구 5000명 수준 작은 마을 연고 구단을 3부 리그까지 올려놓았던 빈스 회장에 대한 팬들 지지도 여전하다. 빈스 회장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다 하겠다(move heaven and earth)”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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