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 음식값 더받고, 숙박세 과금하고… ‘접대 문화’ 사라지는 일본 [방구석 도쿄통신]

김동현 기자 2024. 5.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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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직원용 응대 의자 설치한 돈키호테
관광객 몰리니 후지산 가려버린 로손
오모테나시 실종… ‘네이버 퇴출 압박’ 라인야후 사태와도 접점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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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자에 앉은 채 손님을 응대하고 있는 일본 도쿄 잡화점 '돈키호테' 아사쿠사점 직원/TV아사히

일본에서 최근 가게 계산대 직원이 ‘앉아서 일해도 되는지’를 두고 때아닌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TV아사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대형 잡화점 체인 ‘돈키호테’ 점포에는 최근 직원이 앉아서 손님을 응대할 수 있게 계산대에 최초로 의자가 설치됐습니다. 도쿄의 가장 오래된 절이자 랜드마크인 ‘센소지’ 인근에 위치한 점포로 하루 5000여 명의 손님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점장은 “하루 8시간을 서서 일하는 직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TV아사히에 설명했습니다.

돈키호테 아사쿠사점 계산대에 의자가 설치된 배경엔 최근 현지 아르바이트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의자 설치 요구’ 시위가 있습니다. 일본 분쿄대 3학년생 모테기 가에데(22)씨가 주도한 이 시위는 조합원 약 350명인 아르바이트 노조 ‘수도권 학생 유니온’ 서명 운동에 2만2000명이 참여하고, 지난해 말 도쿄 최대 번화가 신주쿠에서 거리 좌담회가 열릴 만큼 화제가 됐습니다. 이 노조와 교섭을 벌여 온 현지 대형 수퍼마켓 체인 ‘베이시아’는 결국 일부 점포에 직원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시범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0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거리 좌담회. 일본 분쿄대 3학년생 모테기 가에데(22)씨가 주도한 것으로 수퍼마켓 등 가게에 직원들을 위한 '의자'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주제였다./벤고시닷컴

일본의 식당이나 호텔, 잡화점 등 가게들은 계산대 직원에게 손님한테 인사할 때 허리를 굽히는 각도부터 표정, 응대 멘트, 적절한 말 속도까지 교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과거 일본의 한 호텔에서 일할 때 비슷한 직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는 외부에서 온 손님을 극진히 응대한다는, 이른바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문화로 일본을 관광은 물론 외교 강국으로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일 때 4000만엔(약 3억5000만원)을 들여 접대했단 일화가 오모테나시 문화의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2019년 5월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트위터

그러나 이러한 오모테나시 문화가 최근 관광객 손님을 대하는 방식부터 시작해 눈에 띄게 흐려지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미국·유럽 등 서양에선 직원이 앉은 채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극진한 응대를 평소 중시해 온 일본이기에 이런 변화는 최근 격변한 시대상을 대변한다는 것이죠. 일본의 한 수퍼마켓 체인을 운영했던 고바야시 히사시(57)씨는 “일본인들 사이 ‘오모테나시’ 문화가 ‘이젠 최소한으로도 좋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엔저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급증과 이로 인한 오버투어리즘(관광 공해) 문제까지 가세하며 일본인들의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시선은 갈수록 냉소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불거진 ‘후지산 장막 설치’ 논란입니다.

소셜미디어 인증샷 포토스팟으로 유명한 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 로손 편의점 전경. 편의점 뒤로 후지산이 우뚝 솟아있다./조선일보DB

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마치 당국은 지난달 관내에 있는 편의점 체인 로손 점포 지붕 위로 높이 2.5m, 폭 20m의 가림막을 설치하는 공사에 돌입했습니다. 편의점 앞에서 일본 최고봉 후지산 전경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이곳엔 늘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데요. 이들로 인한 소음과 거리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 아예 아무도 후지산을 볼 수 없게 조치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관광객이 몰리는 편의점 앞에서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등 오히려 특수를 활용할 기회인데 아예 가려버리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평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불만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분출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죠.

일본 홋카이도 니세코초에서 한 관광객이 스키를 타고 있는 모습/니세코유나이티드

일본 당국이 오버투어리즘 해결을 위해 내부 조치가 아닌, ‘싫으면 오지마’란 식의 대응책을 내놓는 건 이뿐만에 그치지 않습니다. 최근 일본 지방 도시들 사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방문세’ 문제가 대표적이죠.

지난 3월 일본 홋카이도 유명 관광지 니세코초는 오는 11월부터 1인당 최고 2000엔(약 1만8000원)의 숙박세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호텔 등 관내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관광객에게 추가 과금한다는 거죠. 지난해 코로나 비상사태 해제 이후 급증한 관광객으로 인한 교통 혼란 문제 등을 이들로부터 걷는 비용으로 충당하겠단 취지입니다.

지역 관광이 활성화되면 소비가 올라 그만큼 징수되는 세금도 늘어난단 점에서 이러한 방문세 도입은 ‘이중과세’에 해당한단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니세코초뿐 아니라 홋카이도 내 다른 지역들, 이 밖에도 미야기·시즈오카·아이치·아오모리현 등 각지에서 방문세 관련 논의가 최근 시작했습니다. 일본 대표 관광지 오사카에선 아예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징수금’을 걷겠단 방안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조차 “외국인에게만 돈을 징수하는 건 차별”이라는 언론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 야마나시현 의회는 지난 3월 후지산 등산객들에게 2000엔씩의 통행료를 걷는 조례를 통과시켰는데, 당시 나가사키 고타로 지사는 ‘과도하다’는 지적에 “라멘 한 그릇 값도 2000엔이다. 후지산의 가치가 그렇게 낮진 않지 않느냐”며 관광객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일본 일부 식당들에선 내·외국인 손님에게 차별된 가격을 받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중 가격’인데요. 지난달 도쿄 시부야에 오픈한 한 해물 요리점은 외국인 손님일 경우 ‘90분 무한리필’ 값을 1000엔씩 올려받고 있습니다. ‘일본 해물 요리와 무한리필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설명하는 부담을 충당하려는 것’이란 설명이죠.

지난달 일본 도쿄 시부야에 오픈한 해문 요리 전문점 '다마테바코(玉手箱)'. 이 가게는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각각 다른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일본어를 못하면 1000엔이 추가로 과금된다./r.gnavi.co.jp

일본 재류 자격이 있어도 직원 판단에 따라 일본어가 능통하지 않으면 추가 비용이 가해진다고 합니다. 도쿄 내 다른 식당에서도 외국인에겐 ‘착석료’를 추가로 과금하는 등 비슷한 제도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사타키 요시히로 조사이국제대 관광학 교수는 “개인 점포의 조치는 자유지만 겉모습과 하는 말만으로 (사람을) 판단해 요금을 달리하는 건 (차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츠노 다케시 긴키대 정보학연구소 소장도 “‘공정’이란 일본의 미덕과 신뢰감을 무너뜨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외국인이 붐비는 음식점이 늘어날수록 현지 주민이 얻을 경제 효과도 늘어난다”며, “더구나 인구 감소 문제를 고려하면 50년,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외국인은 안 와도 된다’는 발상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처럼 갈수록 옅어지는 일본의 ‘오모테나시’ 문화는 최근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일본 정부로부터 불거진 ‘라인야후 사태’와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5월 15일 서른여덟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변화하는 일본의 ‘오모테나시’ 문화와 이를 대변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36~37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대행천국 일본… 부모 간병·장례도 대신해준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5/01/M224BNFUVRD2TLLT3ZVKABTINQ/

한국인도 가담… 시신 불태워 유기한 日 ‘어둠의 알바’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5/08/CDTDXX5WGBCHVLJEP2KDCITHUY/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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