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 영화, 가능할까? [2030 세상보기]

2024. 5.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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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달 12일까지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 운영 용역' 사업 입찰을 공고했다.

일단 지금까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산 영화들을 훑어보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이념과 사상이 배제된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자.

완전히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특정 이념과 사상을 배제한 영화를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영화 교육을 하고자 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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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달 12일까지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 운영 용역' 사업 입찰을 공고했다. 젊은 관객을 육성하기 위해 청소년 영화 교육 등을 하는 사업이다. 공고에는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 사상을 배제한 영화 및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전의 사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특정 이념과 사상(그 특정 이념이 어떤 이념인지 특정돼 있지 않으니 사실상 모든 이념이라고 봐야겠다)을 배제한 영화는 무슨 영화일까? 이것을 상상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지금까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산 영화들을 훑어보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이념과 사상이 배제된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자.

‘파묘’는 민족주의 영화로 읽힐 수 있다. 꼭 민족주의로 읽지 않더라도 탈식민주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전두광이 명백히 악의 존재로 표현되는 '서울의 봄'은 한때 패배했던 민주주의에 바치는 애가(哀歌)라고 할 수 있으리라. 또 '기생충'은 명백히 자본주의 체제를 풍자하는 작품이다.

'극한 직업'이나 '범죄도시' 시리즈 같은 오락과 액션에 치중한 작품이 이념과 사상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해당 작품들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즉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체제의 기본 전제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지독한 수준의 무정부주의자가 극한 직업 같은 작품을 본다면, 국가 기구인 경찰이 선과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을 보고 펄펄 뛸지도 모른다.

나는 현대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자본주의 체계라든지, 자유주의라든지에 대해 날카롭게 해부하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자본주의자고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야기에서 정치와 사상을 배제하려 해도 배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세계관에는 특정한 이념과 사상적 함의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고, 모든 이야기는 이러한 인간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표현조차 이미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

사실 나는 저 '특정 이념, 사상'을 띠는 영화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세계관에 도전하는 영화일 것이다. 그런 영화는 우리 사회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도전에 성공한 영화 중에 좋은 영화가 많다.

그런 영화가 사회 불안정을 부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원성이야말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다양한 개인들의 목소리와 관점이 존재할 때 우리 사회의 지평은 더욱 넓어진다. 현실정치에 스스로 복종하는 영화만 존재한다면 대체 우리 문화예술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한국 영화계는 지금까지 아주 잘하고 있다.

완전히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특정 이념과 사상을 배제한 영화를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영화 교육을 하고자 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청소년들을 영화관에 넣어놓고, 영사기로 아무것도 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정말 '미래 관객이 육성'될지는 잘 모르겠다.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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