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김기윤]중동의 ‘묻지마’ 美 불매운동… 전쟁 중 ‘어부지리’ 노리는 토종업체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2024. 5. 1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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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발발 후 반감 커진 美브랜드
9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의 KFC 매장. 점심시간인데도 매장 안이 텅 비었고 직원들이 빈 매장을 청소하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현지 식당 겸 카페 ‘실란트로’ 매장. KFC, 맥도널드 등 미국계 패스트푸드 매장과 달리 이곳에는 손님이 가득했다(아래 사진).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중동전쟁 전과 비교하면 손님이 4분의 1 이하로 줄었어요.” 9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 도심의 맥도널드 매장. 직원 마흐무드 씨(24)는 휑한 내부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손님으로 붐빌 평일 점심때인데도 매장 안에는 단 2명의 고객만 있었다. 밖에서 보면 드나드는 사람이 없고 일부 조명도 꺼져 있어 마치 휴점 중인 듯했다.》





매장 밖에는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문구도 붙어 있었지만 들어오려는 손님을 찾아볼 수 없없다. 마흐무드 씨는 “식당 안에서 식사하려는 고객이 특히 많이 줄었다. 매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포장을 원한다”고 털어놨다.

인근의 또 다른 미국계 패스트푸드 KFC 매장 상황도 비슷했다. 역시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에 직원들은 폐장 직전처럼 테이블 위에 의자를 올려둔 채 물걸레로 바닥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종업원 히샴 씨는 “인근의 단골 고객들도 매장을 찾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 보이콧-투자철회-제재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7개월을 넘겼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이 커지면서 이처럼 중동 곳곳에서 미국 브랜드에 대한 강한 반대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까지 전차를 진입시키며 전면 지상전 가능성을 높이자 미국산 브랜드에 대한 중동 고객의 외면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스라엘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을 보이콧하자”란 아랍어 문구가 적힌 이집트의 온라인 홍보물. 사진 출처 ‘BDS 이집트’ 인스타그램
이 같은 미국, 이스라엘 브랜드에 대한 거부 등을 ‘BDS(Boycott, Divest, Sanction)’라고 한다. 각각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의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다. 불매운동이 비교적 쉬운 미국산 식품, 의류, 화장품 브랜드 등의 명단은 온라인에서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공유되고 있다.

불매운동에 직면한 서구 유명 기업 및 브랜드의 광고를 찍은 유명 연예인 등이 공개 사과하거나 이들이 “나는 팔레스타인 지지자”라고 해명하는 일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4년째 머무는 한 미국 기업 관계자는 “중동은 원래 반미(反美), 반이스라엘 여론이 강한 곳이지만 이 정도로 강하고 오래 이어지는 현상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최근 이집트 유명 축구단 ‘알아흘리’도 홍역을 치렀다. 미국 코카콜라와 후원 계약을 체결했는데 적지 않은 팬들이 “코카콜라와의 계약을 해지하지 않으면 경기를 보지 않겠다”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단은 계약을 해지하진 않았지만 구단 홍보물에 있는 코카콜라 광고 흔적을 지웠다.

카이로의 유명 사립대 아메리칸대 역시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HP, 프랑스 보험사 악사 등과의 산학 협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생들이 유명 서구 대기업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기금을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 행위를 보였다며 “산학 협력 중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다른 나라의 상황도 비슷하다.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 등에 따르면 모로코에서도 미국 스타벅스, 스페인 자라, 스웨덴 H&M 등 서구 유명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오만에서는 최고 종교지도자가 직접 “서구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은 적(適)을 정복하는 성공적 무기”라며 독려하고 있다. 친미 국가로 꼽히는 요르단에서도 이스라엘과 단교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 중동 브랜드는 반사이익

이런 상황을 내심 반기는 기업들도 있다. 9일 카이로 도심의 토종 프랜차이즈 식당 겸 카페 ‘실란트로’를 방문하자 맥도널드, KFC 매장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약 60석 매장에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손님들이 북적였다. 줄을 서서 음식을 포장해 가려는 고객도 많았다.

이곳에서 빈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직장인 하난 씨(26)는 “중동전쟁 전이었다면 맥도널드 등으로 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근처의 다른 토종 브랜드 카페에 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산 브랜드 매장에 갔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큰일이라고 했다.

일부 기업은 손님들의 이런 심리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집트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바주카’는 지난해 10월 이후 코카콜라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 콜라를 주문하면 이집트에서 만든 ‘시나콜라’를 준다. 대부분의 손님 또한 “안 그래도 코카콜라를 마시기 싫었는데 잘됐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피자 프랜차이즈 브랜드 ‘프리모스’는 전쟁 발발 후 포장 용기 겉면에 팔레스타인 지도를 그려 넣으며 재빠르게 기회를 잡고 있다. “(요르단)강부터 (지중해)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울 것”이라는 문구도 담았다. 이 문구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전 세계 곳곳의 친팔레스타인 시위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 ‘마구잡이’ 보이콧 우려

미국 브랜드에 대한 중동의 BDS는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세운 분리 장벽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통치 세력이 되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중동 주요 국가에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전쟁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다만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BDS 대상 기업의 목록, 즉 블랙리스트 게시물의 낮은 신뢰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부정확한 정보가 퍼지면서 마구잡이식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집트에서는 맥도널드 이스라엘 지사가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군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맥도널드 본사가 아닌 맥도널드와 계약을 체결한 이스라엘 현지 법인 ‘알로냘’의 결정이었다.

이에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널드 최고경영자(CEO)는 올 1월 “이스라엘 지사의 결정은 본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랍권의 불매운동은 잘못된 정보에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맥도널드 이집트지사 또한 “우리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는, 이집트 국민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가세했다. 하지만 돌아선 고객들의 마음을 잡는 데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구잡이식 불매운동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서구 브랜드라 해도 직원 대부분은 현지인이며 이들이 중동 주요국에 적지 않은 세금을 낸다는 점을 들어 “어설픈 불매운동의 피해는 중동 각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중동 매체 ‘더뉴아랍’ 역시 “대규모 보이콧으로 중동 각국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아버지가 다국적 기업에서 재직 중이라는 대학생 하이삼 씨(21)는 “100% 이스라엘 제품, 100% 이집트 제품은 없다. 사람들이 국산으로 알고 애용하는 제품도 미국, 이스라엘 자본이 연계됐을 수 있다”며 “불매운동 과열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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