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포들의 자리에서 ‘발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심진용 기자 2024. 5. 1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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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안타 중 번트만 6개…두산 조수행이 프로 무대에서 사는 법
두산 조수행은 ‘번트 귀신’이다. 올 시즌 번트 안타만 6개를 성공시켰다. 조수행이 번트를 대고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지난달 주전 좌익수 자리 꿰차
‘빠른 발’ 장점 살리는 게 내 길
“기술만으로 번트 성공 어려워
필요한 건 오히려 자기 확신”

두산 조수행(31)은 13일까지 26안타를 쳤다. 그중 번트 안타가 6개다. 전체 안타의 4분의 1에 가깝다. 아직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번트 안타만큼은 리그에서 단연 1위다. 삼성 김성윤이 3개, LG 박해민·SSG 최지훈 등 7명이 2개씩 기록했다. 박해민과 최지훈은 KBO 역사에 손꼽히는 번트 ‘장인’들이다.

남은 시즌 조수행이 꾸준히 선발 출장하며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번트 안타만 20개를 기록한다. 지난 시즌 자신이 기록한 11개는 물론 2015시즌 박해민(당시 삼성)의 18개, 2017시즌 삼성 강한울의 17개를 넘는다.

조수행은 발 빠른 선수다. 주력만 따지면 KBO 전체에서 한 손에 꼽힌다. 조수행에게 번트는 야구 선수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기술은 일찌감치 통달했다. 조수행은 “대학 때는 훨씬 더 많이 댔다. 안타 중 절반이 아마 번트였던 것 같다”며 “내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 무대에서 기술만으로 번트 안타를 계속 성공시킬 수는 없다. 그가 타석에 서면 언제든 번트를 시도할 수 있다는 걸 나머지 9개 구단 1·3루수가 모두 안다. 당연히 압박 강도가 높다. 조수행은 “만만한 야수가 정말 하나도 없다. 타석에 서면 1루수·3루수가 바로 코앞까지 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오히려 자기 확신이다. 상대 수비를 지나치게 따지다 보면 오히려 번트 파울이 더 나오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지더란 얘기다.

조수행은 2016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높은 순번으로 입단했지만 기회는 적었다. 김재환, 정수빈, 박건우(현 NC), 민병헌(은퇴)으로 이어지는 두산 외야진은 바늘 하나 꽂을 틈이 없었다. 대수비·대주자로 나서는 바람에 지난 시즌(249타석) 데뷔 후 처음으로 200타석을 넘겼다. KBO리그 규정타석은 447타석이다.

올 시즌은 지난달 초부터 주전 좌익수를 꿰찼다. 지난 12일 KT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3안타를 몰아치며 타율도 0.317까지 끌어올렸다. 콘택트 비율이 높아지면서 빠른 발을 살린 안타도 늘었다. 비시즌 기간 타격 자세를 바꿔가며 꾸준히 애쓴 결과가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발끝을 땅에 찍으며 타이밍을 맞추는 토탭(Toe-tab) 타격을 하는 중이다. 타격 자세는 단국대 동기 홍창기(LG)와 닮았다는 말도 나온다. 조수행은 “막 비슷한 것 같지는 않은데, 살짝 느낌은 있는 것 같다”고 웃으며 “창기는 워낙 친하기도 하고, 배울 것도 많은 친구라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다”고 덧붙였다.

조수행이 뛰는 좌익수 포지션은 전통적으로 거포들의 자리다. 팀 선배 김재환이나 롯데 전준우 등이 좌익수로 주로 뛰었다. 통산 4홈런의 조수행이 그들처럼 야구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수행은 꼭 홈런 타자가 아니라도, 자신의 장점을 살려 팀 승리를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기회만 오면 번트를 대고, 내야 땅볼에도 1루까지 전력 질주하고, 틈날 때마다 도루를 시도하고, 어려운 타구에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리는 게 조수행의 야구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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