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기회 경기AI특별자치도’ [전국 프리즘]

김기성 기자 2024. 5. 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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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에서 열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 이름 대국민 보고회에서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새 이름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성 | 수도권데스크

칼럼 제목을 본 독자들의 머릿속이 자못 궁금하다. 여러 가지 뜻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긴 하지만, 황당할 정도로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기만 할 것이다.

이는 최근 경기도 공무원 내부 게시판에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 이름인 ‘평화누리특별자치도’를 비꼬며 올라온 이름이다. 읽기조차 거북한 이 이름은 사실 ‘RE100평화누리 변화북부 기회 봉공 더테크노 경기다회용컵 AI특별자치도’이다. 김동연 경기지사의 역점 시책, 핵심 공약을 한꺼번에 뒤섞어 만든 이름으로 보인다. 낙후된 경기도 북부 시군을 하나로 묶어 특별자치도를 만든 뒤, 재정 지원은 물론 각종 규제를 풀어 지역 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 ‘경기북부특별자치도’다. 김 지사의 포부이자 민선 8기 핵심 공약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주민설명회를 비롯해 정부와 국회에 특별법 제정 촉구, 주민투표 요청 등 총력전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지난 1월18일부터 2월19일까지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 이름 대국민 공모전’도 진행했다. 그 결과, 5만2435건의 새 이름이 제안됐고, 홍보 전문가와 역사학자 등이 심사를 해 10개 후보를 선정했다. 경기도는 지난 1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 이름으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를 뽑았다. 김 지사는 “대구에 사는 91살 어르신이 지어준 이름”이라며 상금 1천만원을 줬다. 우수상(상금 100만원)은 ‘이음특별자치도’와 ‘한백특별자치도’, 장려상(상금 50만원)은 ‘경의특별자치도’, ‘한경특별자치도’, ‘임한특별자치도’가 뽑혔다.

응모자들은 저마다 제안한 이름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지만, 대다수 경기도민은 1천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도의 정체성은 찾아볼 수 없고, 뜻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에선 “북한의 무슨 동네 이름이냐” “왜 경기북부 이름을 대구 노인이 지어주느냐”는 등의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 새 이름 발표 뒤 경기도를 나누는 ‘분도’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도 줄을 잇는다. 첫발도 제대로 떼지 못한 경기북부특별자치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마련한 공모전이 오히려 ‘역풍’을 맞은 모양새다.

경기도의 ‘이름 짓기 논란’은 이뿐만 아니다.

경기도는 지난 9일 도지사 직속의 ‘행정수석’을 정무수석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경기도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 일부개정규칙’을 공포했다. 정무수석(2급)은 경기지사의 정책 결정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따로 행정특보(4급)도 신설해 도정 중점 과제 개발·조정 등 정책 결정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도지사 직속의 전문임기제 공무원은 정책수석(2급)·정무수석(2급)·기회경기수석(3급)·행정특보(4급)·대외협력보좌관(4급)·국제협력특보(4급) 등 모두 6명으로 늘어났다. 도지사 직속 정무수석과 같은 이름의 경제부지사 직속 정무수석(2급)은 ‘협치수석’으로 명칭을 바꾼다. 협치수석은 도의회 협치를 보좌한다고 한다. 몇번을 뜯어봐도 임기제 고위 공무원이 늘어난다는 얘기 이상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이름만 봐서는 그 자리가 왜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이름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어머니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이름을 ‘태명’이라고 한다. 경기도의 북부특별자치도 이름 짓기는 아직 잉태하지도 않은 아이의 태명을 지어 임신을 재촉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행정기구 개편이란 명목으로 이뤄지는 공무원 직위 이름 짓기는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읽힌다.

경기도민청원 누리집에 지난 1일 오른 ‘평화누리자치도(경기분도) 반대 청원’이 4만6천명(14일 오후 현재)을 넘어섰다. 청원은 30일 동안 1만명의 동의를 받으면 경기지사가 직접 답변해야 한다. 18일 국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김 지사의 답이 궁금해진다.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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